연금개혁, 프랑스가 부러운 두 가지 이유
연금개혁, 프랑스가 부러운 두 가지 이유
  • 이원두 언론인·칼럼리스트
  • 승인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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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금개혁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실질적인 뒷걸음을 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는 개혁반대 데모로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관광명소인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개선문이 문을 닫을 정도다. 그런 프랑스가 오히려 부러운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생명보다 국가 장래를 위한 연금개혁에 모든 것을 건 결단력과 용기다. 거기에 필요하다면 의회를 건너뛸 수 있는 입법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헌법 조항(제49조 3항)도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고 절박할 정도로 부러운 것은 국민의 반 마크롱 데모가 연금개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 과정에서 의회를 무시한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한 데 대한 반발이란 점이다.

만약 우리 헌법에도 프랑스와 같은 조항이 있다면 어떻게 운용되고 있을까? 최근 이른바 ‘검수완박’에 대해 우리 헌재는 ‘과정은 잘 못 되었으나 결과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프랑스 국민이 절차적 흠결을 지적하면서 전국적으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과 딴판이다. 이런 점에서 비록 선진국 대열에 합류는 했으나 그 성숙도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민주주의 제도와 그 운용의 성숙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헌법재판소만이 아니다. 모든 정치적 행정적 행위에서 하나같이 미숙성이 노출되고 있음을 본다. 이 미숙성은 따지고 보면 미래를 보지 못하는 짧은 견식과 정파적인 집단 이기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보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최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자문위)는 구체적 개혁안을 내지 못한 채 원칙만 담은 보고서를 연금특위에 제출했다. 작년 11월에 출범, 올 1월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던 것을 두 달이나 늦추었으나 끝내 구체적인 안은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연금특위 역시 다음 달로 활동이 끝남으로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자문위가 구체적인 안에 합의를 도출 못 한 것은 출범 당초 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16명으로 구성된 자문위는 복지 전문가와 경제 공공정책 전문가로 양분되었기 때문이다. 복지적 시각과 연금시스템 건전성을 중시하는 두 그룹이 진지한 토론을 심도 있게 진행했더라도 접점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 정파적 이해가 작용했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수밖에 없다.

연금개혁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은 기금이 고갈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현행대로라면 2040년에 정점을 찍은 뒤 기금은 해마다 줄어들어 2055년 또는 2057년이면 바닥이 난다. 따라서 현행 42% 수준인 소득대체율(평균소득 대비 수령 연금 비율)을 낮출 것인가, 올릴 것인가도 문제이지만  9%인 보험요율(소득대비 연금납부액)을 얼마나 올릴 것이며, 수령 나이는 얼마로 할 것이냐 등등 어느 하나 민감하지 않은 문제가 없다. 국회가 자문위를 앞세우고 뒤로 숨은 이유의 하나다. 오는 10월 정부(보건복지부)가 개혁안을 마련하여 국회에 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개혁안은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5년 단위로 재정계산을 하여 종합운영계획을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제도를 원용하여 근본적인 개혁안을 마련한다면 그 이상 좋을 수 없으나 내년 4월의 총선을 비롯하여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가 뒤를 잇는 상황에서 표를 잃을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설령 정부가 근본적인 개혁안을 내놓더라도 입법부를 지배하는 거대 야당이 순순히 받아드리지 않을 공산이 크다. 연금개혁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 대해 딴지를 거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기본 방침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가장 효과적인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의 방패막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개혁은 거대 야당의 ‘정책적 꽃놀이 패’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 여당은 이 꽃놀이패에 대항수단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연금개혁에 관한 한 우리는 결코 프랑스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수준의 정치지도자는 감히 바랄 수도 없는 꿈이며 필요하면 의회를 건너뛰고서라도 법을 만들 수 있는 조항을 삽입하는 개헌 역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성숙한 선진국’ 프랑스가 더욱 부러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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