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이 부른 두 형제의 공멸
경영권 분쟁이 부른 두 형제의 공멸
  • 최수아 기자
  • 승인 2012.05.22
  • 호수 8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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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쩐의 전쟁’ 6 - 금호③

“감히 내 밥그릇에 탐을 내?”
재산을 둘러싼 재벌가의 법정 싸움은 재계의 단골메뉴다. 삼성, 현대, 두산, 금호, 한진, 롯데 등 ‘쩐의 전쟁’을 거치지 않은 로열패밀리는 없을 정도. ‘형제의 난’ ‘모자의 난’ ‘숙부의 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일감을 몰아주며 진한 우애(?)를 나누다가도 자신의 밥그릇에 손끝하나라도 스치기라도 하면 그 순간부터 애증의 관계로 변모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영권 세습을 위한 재벌가의 통과의례라도 한다. 이에 [한국증권]은 유난히 ‘피’보다 진한 재벌가의 치열했던 ‘쩐의 전쟁’의 내막을 다시금 재구성해본다. 그 여섯 번째 주인공은 ‘형제 경영’의 전형적인 폐단을 보여준 금호가의 마지막 이야기다.

2011년 4월 12일, 검찰의 금호석유화학 압수수색은 박찬구 회장이 공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가 포착되면서 급작스레 이뤄졌다.

검찰은 금호석유화학이 하청업체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과다하게 지급한 다음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금호산업 주식을 팔아 100억원대의 손실을 피했다는 정보를 입수, 본사로 수사관 20여명을 보내 회계장부와 회계파일이 담긴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당시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회장의 복귀 이후 자동차와 타이어 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 중이었다. 더욱이 워크아웃 중인 계열사들과 출자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의지를 피력, 금호그룹과의 완벽한 독립수순 절차를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룹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자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회장쪽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룹 분리 절차를 진행하면서 박삼구 회장측과 상의도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독단적으로 계열분리 신청서를 제출한 것에 진노해 비자금 정보를 흘린 것 아니냐는 추측이었다. 

박찬구 회장은 압수수색 다음날 “죄지은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란 의미심장한 발언도 서슴없이 표출, 박삼구 회장을 향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제보자는 금호석유화학 전 협력사 직원으로 드러났다. 금호석유화학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면서 이전 협력사들을 정리한 것이 발단이라면 발단이었다. 정리된 협력사 직원 중 한명이 앙심을 품고 비자금 관련 정보를 흘렸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회장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6월 3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에 첫 소환되는 자리에서 금호아시아나도 사건에 연계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검찰이 금호석유화학 비자금 관련 조사 중 박삼구 회장의 것으로 보이는 10여개 가량의 차명계좌를 발견, 자금이 오간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던 터라 박찬구 회장의 발언에 어느정도 무게가 실리면서 비자금 의혹의 칼끝이 박삼구 회장으로 옮겨 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대두됐다.

그리고 결국 동생이 형을 검찰에 고발하는 '막장'까지 치닫는다.

박찬구 회장이 박삼구 회장과 박삼구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회장(당시 전무)을 사기 및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 이른바 ‘공멸작전’으로 형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

박찬구 회장은 비자금 수사와는 무관하게 대한통운 인수과정서 금호알앤씨(옛 금호렌터카)의 재무상황이 나빠져 회사가 파산에 이른 문제의 책임을 따지려는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상 혼자서만은 당하고 있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확인시켜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계열사도 아닌 협력업체에 있는 비자금 계좌를 검찰이 손에 넣은 것 자체가 박삼구 회장측의 제보 없이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2006년 6월 대우건설 매각 당시 자신은 의사결정 라인에서 배제돼 있었고, 박삼구 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지분을 팔았는데 본인만 수사 받는 게 억울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충분했다.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재소환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2011년 6월 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혼자는 안 당해”… 동생이 형 고발

그렇게 두 사람의 갈등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반목이 깊어졌고, 그런 만큼 두 사람의 계열분리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11월 30일, 박삼구 회장과 박세창 부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보유지분을 전량 처분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박찬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유화학으로 사실상 계열분리에 성공한다. 남은 건 박찬구 회장측이 아시아나항공 지분 처분하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12월 1일, 검찰이 느닷없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각과 회사 자금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박찬구 회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 풀릴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갈등에 예기치 못한 제동이 걸린다.

더욱이 박삼구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받아 ‘형제의 난’은 또 다시 새드엔딩을 향해 달려갔다.

검찰의 갑작스런 구속 영장 청구를 둘러싸고 박찬구 회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검찰수사에 성실히 임한데다 출국금지 조치가 풀려 이명박 대통령 해외순방에도 동행해 왔던터라 딱히 문제될 만한 요지가 없었다. 법조계 또한 이례적이란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영장실질검사에서 기각,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박찬구 회장은 또다시 의혹의 시선을 박삼구 회장에게로 보냈다. ‘회사 흔들기’로 판단하고 대응전략 마련에 나섰다.

현재 박찬구 회장은 형과의 완전 결별을 앞두고 금호가 색깔 벗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자적인 기업이미지의 CI를 제작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 고유의 빨간색 날개 로고를 모두 제거했다. 자체 사보도 발행, 전략경영본부 기능을 대신할 회장 부속실도 신설했다. 오는 9월에는 금호아시아나 본관을 떠나 중구 수표동 시그니쳐타워로 본사도 이전한다. 뿐만 아니라 사재와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회사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입,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경영권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박삼구 회장도 워크아웃에 들어간 그룹을 온전히 되찾기 위한 주주의 지위 회복에 주력 중이다. 지난 6일 금호아시아나재단 등에 제3자 배정방식으로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 계열분리의 9부 능선을 넘었다. 박찬구 회장이 그동안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아시아나항공 보유지분을 매각하겠다고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큰 변수가 없는 이상 두 형제의 ‘불편한 동거’는 곧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쪼개진 형제애는 금호가에 가장 불행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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