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나의 꿈은 '생각 중'
"나의 연인 J에게" - 나의 꿈은 '생각 중'
  • 김충교
  • 승인 2011.0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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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 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저희 집 주방 냉장고에는 동그란 표가 붙어 있습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걸어 놓은 카드입니다.

시간표처럼 생긴 카드에는 여러 가지 항목의 문답식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은 우리 가족입니다.

나의 취미는 게임과 운동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선수는 박지성입니다.

아마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만든 소품이겠지요.

그런데 눈에 띄는 항목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생각 중’입니다.

처음 본 순간 실소를 금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으면 아직 ‘생각 중’ 일까요.

이런저런 꿈들 중에서 한 가지를 정하기가 곤란했을 겁니다.

버리기 아까운 꿈들 때문에 고민스러운 거지요.

어린 시절의 꿈은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움직이거든요.

움직이는 마음을 다잡기에 아이는 나이가 아직 어립니다.

그래도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아이가 무척 부럽더군요.

물론 우리 아이가 갖고 있는 지금 당장의 바람은 압니다.

숙제나 공부가 없었으면 할 겁니다.

내키는 대로 친구들과 뛰어놀고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싶겠지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되고 싶은 모델이 있으니 딜레마 일 겁니다.

엄마나 아빠는 이렇게 말하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알아야 한다.

되고 싶은 사람이 되려면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 공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남들 보다 빼어나게 잘하진 못하더라도 뒤처지진 말아야 한다.

그럴듯해 보여도 어딘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부모가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겠지요.

그래도 아이의 문답에서 한 가지 건진 것은 있습니다.

누군가가 만약 제게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고 치자구요.

평소 같으면 “꿈...”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을 겁니다.

아니면 “이게 뭔 소리”하면서 상대를 같잖다는 듯이 쳐다봤을 겁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물으면 심플하게 “생각 중”이라고 대답하면 되니까요.

그렇다고 어른들은 꿈이 없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를 악물고 인내하며 노력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지요.

물론 아이들의 그것과 빛깔은 다를 겁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은 색이 바랐을 테니까요.

생활의 안정과 경제성을 따지는 쪽으로 윤색이 되었겠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무색투명한 꿈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도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 후배로부터 한 장의 사진을 받았습니다.

휴대폰으로 전송돼 온 사진에는 웬 목수가 나무를 다듬고 있더군요.

목수는 바로 그 후배였습니다.

아직 장이의 냄새는 풍기지 못했지만 얼추 폼은 갖췄더군요.

폼 잡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친구입니다.

그는 한때 ‘때 꺼리’를 찾아오라는 저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길거리를 배회하기도 했지요.

부족한 취재를 글발로 메우려는 잔꾀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마감시간에 쫓기며 자판기를 두드리던 소리엔 조바심이 가득했습니다.

빨리 끝내고 주막으로 달려가고 싶었던 겁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나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래도 그는 의식과 능력을 겸비한 기자였습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목수가 되고 싶다고.

꼭 목수가 될 거라고.

그때는 그저 하는 말인가 했습니다.

실제로 그 후 그 후배는 나무를 다루는 목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갔거든요.

정치권 인사의 참모로 변신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구요.

기대도 있었습니다.

바른 생각을 가졌고 상식이 있었거든요.

그는 주연은 아니지만 주연에게 영향을 미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사실 주연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조연이거든요.

참모는 조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저는 후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일신의 안위와 이익 보다는 세상을 먼저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가 세상이라는 집을 짓는 목수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뼈대를 만들고 다듬는 일을 하는 것이니까요.

겉만 번드르르 한 집을 뜯어내고 새로 세우는 겁니다.

불안하게 박혀있는 기둥도 바로 잡고 서까래도 손보는 일이죠.

행세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완장을 차고 거드름을 피운다는 비난도 없었습니다.

목수 일에 충실했다는 얘기지요.

그럼에도 그 후배는 당시에도 만날 때마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목수가 되고 싶다고.

꼭 목수가 될 거라고.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부실하게 지어진 세상이라는 집을 고치는 일이.

유혹도 있었을 겁니다.

세상을 대패질 하는 힘든 꿈을 접고 쉬운 길을 가고 싶었을 테니까요.

저간의 사정은 묻지 말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그가 진정한 장인이 되기 위해 발을 담갔습니다.

진짜 목수가 되기 위해 수련을 시작했다는군요.

나이 사십이 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그래서 고민합니다.

과연 나의 꿈은 언제까지 ‘생각 중’으로 놔둘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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