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광장]출자회사 할인의 위험성
[월요광장]출자회사 할인의 위험성
  • 한국증권신문
  • 승인 200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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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증권연구원 빈기범 연구위원


올해 6월 30일 종가 기준으로 삼성물산 시가총액은 약 2조1000억원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약 72조원. 삼성물산은 약 4%의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시가로 약 2조9000억원에 해당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시가 2조9000억원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하는 삼성물산의 시가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2조1000억원 밖에 안 되니 말이다. 이런 해괴한 현상이 실제로 주식시장에서 발생한다.
이 같은 현상을 ‘출자회사 할인(parent company discount)’ 또는 ‘출자회사 퍼즐(parent company puzzle)’이라고 부른다. 이는 출자회사 시가가 피출자회사에 대한 소유지분의 가치에도 못 미치는 현상이다. 경제학에서도 이를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퍼즐로 불리운다.


출자회사 할인 현상이 지속되면 해당 출자회사는 경영권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출자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한다면 피출자회사 지분을 매각하여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출자회사 할인은 말 그대로 출자회사의 주가가 저평가 되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출자회사 경영권 인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영권 인수를 위한 주식 매집 비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내내 삼성물산이 헤르메스라는 영국계 연기금 펀드의 경영권 위협에 시달려 왔던 것도 출자회사 할인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물산의 출자회사 할인 현상은 근래에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그러던 중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지분을 대량 매입하면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물산에 대한 경영권 위협은 곧 삼성그룹 경영권에 대한 위협과 마찬가지였다.
출자회사 할인과 관련해 경영권 분쟁이 실제로 발생했던 회사가 바로 SK㈜이다.


SK㈜는 실제로 소버린이라는 모나코계 소규모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겨줄 뻔했다. 소버린은 SK글로벌 회계부정사건 여파로 SK그룹의 지주회사격 계열사인 SK㈜ 주가가 폭락했던 시기 단기간에 14.99%의 대량 지분을 매집하여 SK㈜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당시 SK㈜ 시가총액은 SK텔레콤에 대해 보유한 지분 가치의 약 25% 정도 수준에 불과했다. 극심한 출자회사 할인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SK㈜도 이미 출자회사 할인의 상황이 지속되어 오던 중이지만, 그 할인 정도는 그 당시가 가장 심했다.
이후 소버린은 SK그룹 회장 퇴진을 요구하며 SK측과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또한 공공연히 SK㈜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SK㈜는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 SKC, SK네트웍스에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SK㈜ 경영권 인수는 곧 이들 주요 계열사뿐만 아니라 사실상 SK그룹 전체 경영권 인수인 셈이다. 국내 재계 4위 기업집단인 SK그룹이 외국계 소규모 펀드인 소버린에게 꼼짝없이 경영권을 내어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출자회사 할인은 외부로부터의 경영권 공격 유인을 자극한다. 더군다나 국내 대규모기업집단(재벌그룹)내 소유지배구조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계열사간 출자가 보편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소유지배구조상 핵심적 위치에 놓인 계열사에 관련된 리스크가 쉽게 그룹 전체 리스크로 확대된다. 계열사간 출자는 충분하지 않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 경영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경영권 공격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SK그룹은 국내 다른 기업집단에 비해 계열사간 출자의 복잡성이 가장 심하다. 여기에 덧붙여 지주회사격 계열사인 SK㈜가 출자회사 할인과 관련해 허점을 드러냈고, 이를 소버린이 감지했던 것이다. 소버린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투자자가 그런 기회를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자회사 할인은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원인이 파악된다면 출자회사 퍼즐로 불리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출자회사 할인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출자회사 할인이 발생한 기업은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즉, 출자 지분의 가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 해결에 힘써야 한다.


아울러 복잡하게 얽힌 계열사간 출자 구조하에서 지주회사격 계열사 등에 대해서만이라도 지배대주주(총수)가 충분한 지분을 보유하는 것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한편 출자회사 할인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예상될 경우, 즉각적으로 그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투자주체가 있다면, 출자회사 할인이 발생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매수주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외국인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따라서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닌 주체, 예를 들어 사모투자전문회사(PEF) 등을 조속히 정착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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