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골로 간 예술가들’
[신간] ‘산골로 간 예술가들’
  • 한국증권신문 기자
  • 승인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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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에서 인생을 보내는 예술가들의 비움 혹은 채움

많은 사람들이 도시라는 갑갑한 새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도시라는 정글에서 일상적으로 전개되는 난리블루스와 아귀다툼의 와중에서 벗어나 또 다른 삶을 이어가고픈 마음.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공통적인 감정일 것이다. 인간 역시 자연이니 자연으로의 귀환은 자못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신명나게 혹은 고독하게

그동안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많은 이들과 만나온 자연주의 에세이스트 박원식은 이 책 산골로 간 예술가들에서 산골을 떠돌며 이골 저골에 박혀 사는 예술인들을 찾아간다. 예술가란 기질적으로 보헤미안이기 십상인 종족 아닌가. 그들은 속세의 규율이나 관습에 사로잡히지 않는 활보로 자유로운 삶을 도모한다. 그래서 자연 속에 둥지를 틀고 창작과 생활을 병행하는 예술가들의 사유와 일상엔 특유의 개성이 서려 있다.

20년 가까이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고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산에 푹 빠져 살았던 저자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주목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세상은 그럴싸한 욕망들이 날뛰는 난장이지만 대체로 재미가 없다. 그러나 예술은 재미있다. 삶이 재미없는 건 빤한 수족관처럼 너무도 범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범속을 거부하는 도발이거나 반항이지 않던가. 별것 아닌 것을 별것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작품을 생산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생각엔, 흥미롭거나 가상한 대목이 즐비하다. 게다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산골에서 자유롭게 활보한다. 그들은 속세의 노예가 아니다. 세간의 지루한 규율이나 억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그래서 그들의 다큐에는 들여다볼 만한 일종의 절경이 서려 있으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쾌미가 있다.”

자연과 인간, 조화로운 공존

이 책에는 총 25명의 작가, 화가, 도예가, 판화가, 목수, 금속공예가 등이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에 가담해 삶을 실험하거나 변신을 꾀한다. 저자 박원식은 자연이 예술과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구라는 이 혼란스런 행성에서 삶의 단서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산골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통해 힌트를 얻는다.

경주 남산 기슭에 사는 한국화가 박대성은 한국전쟁 와중에 팔 하나를 잃었다. 타고난 가난 속에서 외팔로 밥을 벌기엔 그나마 붓이 방책이라는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일곱 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불편이라는 고생 속으로 자청해 들어가는 것이 곧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길이라고 확언한다.

한 달 생활비 달랑 10만 원으로 산속에서 처자와 함께 무사하고 유쾌하게 생활한 유기농펑크포크의 창시자이자 슈퍼백수이자 떠돌이 뮤지션사이의 행장에는 자본 중심의 광기어린 세태에 통쾌한 펀치를 날리는 어떤 급진성이 존재한다. 그는 돈 없이도 시골에서 팔자가 늘어질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고 그러한 자신의 일상을 대중들에게 노래로 이야기한다.

어느 TV 프로그램에 책이 선정되어 하루아침에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유용주는 지쳤거나 거칠어진 정신에 휴식을 부여하고, 정색을 하고 착실히 눌러앉아 시를 쓰기 위해 5년 전 산골 고향집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쓰고 읽고, 쓰고 읽고를 반복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온종일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새벽 네 시면 책상 앞에 앉는다. 음주 삼매경으로 도락을 구가하고 시를 맹렬하게 돋우는 그의 행각엔 사뭇 풍류적인 기상이 서려 있다.

작가 박범신이 자해공갈단이라는 별명을 붙일 만큼 열렬한 술꾼에 속하는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은 숨을 앗아갈 듯 급박하게 덮쳐오는 창작의 고통과 고독을 토로한다. 그리고 자연을 주재하는 궁극의 존재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왜 이토록 슬픈가요? 하는 투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지른다.

결국 위로가 되는 건 자연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제 나름의 고유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다. 현실이 부과하는 강압에서 놓여날 수 있는 대안 찾기를 일삼아 하는 부류들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지향에 따라 구도(求道), 자유를, 창작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그들의 내면에 웅크린 주성분이 고독이건 자유정신이건, ‘넌 그러냐? 난 이렇다하는 식의 드높은 자존감으로 뭉뚱그려진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해탈한 브라만은 아니다. 오늘도 치열하게 삶과 맞장 뜨는, 도정에 서 있는 나그네일 뿐이다.

저자 박원식은 이 책을 통해 소유에 대한 추구와 예찬이 극성을 부리는 세태에서 당신은 과연 자연스럽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가지면 가질수록 고파지는 공복감을 자연과의 긴밀한 접촉으로 채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산다는 일은 하루하루가 실로 힘들고 어려운 곡예일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을 교사나 동행으로 삼아 삶을 궁구하는 예술가들의 성과물은, 물신이라는 주님에게 길들여진 욕망 기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삶의 대안과 상상력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들은 자연에서 어떤 황금 뉴스를 듣는가? 조용한 숲에서 민감한 마음을 열어 어떤 묵시를 얻는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인 자신을, 자연의 어떤 힘에 고무되어 변화와 변신의 지평으로 휘몰아 가는가?

몸과 정신에 자연이 함께할 경우, 우리의 삶은 더 치열해질 수 있다. 인간 자체가 이미 자연이라는 것을, 삶이라는 장르 자체가 이미 자연이자 예술이라는 것을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산촌 생활자들의 일상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저자 박원식/ 출판사 창해/ 페이지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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