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빈곤의 시대,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
[낚시]빈곤의 시대,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
  • 박수진 기자
  • 승인 2011.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 가을의 암울한 전망

올해 바다루어는 초현실적인 상황에 직면했었다. 몇 개의 태풍이 지나가고 맞이하는 가을 바다였다. 늦봄부터 남해동부권의 바다를 점령한 살오징어 대풍은 3년 전 무늬오징어 호황과 오버랩 되면서 지난 2년 간 부진했던 바다루어낚시 최고의 인기어종 무늬오징어 대군의 귀환을 예감케 했다. 뿐 만 아니라 최악의 바다상황이라는 적조마저 올 여름에는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아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의 설렘은 커져만 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막상 맞이한 가을은 이해할 수 없는 흐름으로 이렇다 할 조황 없이 흘러가고 있다.

며칠 전 참으로 오랜만에 지인과 에깅을 하기 위해 가까운 바다로 나섰다. 올해 처음으로 꺼낸 에깅대와 에기를 들고 포인트에 섰을 때의 그 감개무량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느 때라도 마찬가지지만 첫 캐스팅을 하기 직전 꾼의 마음은 ‘던지면 나온다’는 무모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빈 바늘로 돌아오는 에기의 횟수가 쌓여가고 캐스팅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면, 마음은 점점 암울한 ‘황’의 예감에 묻혀 간다.

“입질 좀 있나요?”

저 멀리서 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늬오징어는 이제 지구를 떠난 건지도 몰라요”

시답잖은 농담과 함께 우리는 채비를 접고 고단한 철수길에 올랐다. 그렇게 올해 첫 에깅출조를 마무리 하면서 문득 나는 ‘이것이 올해(처음이자)마지막 에깅은 아닐까“’하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복잡한 심정을 웅얼조로 뇌까리고 있는 내 마음을 옆에 있던 지인이 읽었는지 무표정하게 라디오를 들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몇 년 전에 오징어가 무더기로 나왔던 그 때요. 그 때가 정말 절묘하게 오징어가 많이 나오는 해가 아니었을까요? 그것 때문에 바다루어가 발전했는데, 우리는 맨 처음 본 그 달콤한 대박의 기억으로, 사실은 요 몇 년 간의 흉작이 원래의 무늬오징어 자원인걸 몰랐던 거죠”

예리한 지적이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바다는 변하고 꾼들은 발전한다

물론 바다 전역이 흉흉한 기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시야를 넓혀 통영으로, 여수로, 서해로, 동해로 가 보면 분명 호황을 누리고 있는 곳은 많다. 또 발 빠른 꾼들은 고기가 잘 나온다는 곳으로 이동하여 최고의 시즌이 주는 달콤한 결실을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구태여 고기 안 나오는 곳에서 과거의 기억에 매달려 작은 조황이라도 남겨 보고자 하는 것은 애초 바다루어낚시를 시작하면서 꼭 만들어 보고 싶었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바다루어낚시를 시작하면서 다른 낚시와는 달리 생활낚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생활낚시란, ‘가까운 곳에서, 평일에도 부담 없이, 맛있는 고기를, 손쉽게 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간은 그것을 손수 실천 해 왔다. 나의 글은 생활낚시를 저변에 둔 동네낚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함께 낚시를 하고, 모델이 되어주고, 기꺼이 무모한 도전에 동참해 준 ‘동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활동하는 네이버 루어낚시 동호회 ‘네버랜드’는 바로 부산권 동네낚시 라는 모토로 빠르게 유명해진 곳이다. 그러나 올해, 긴 겨울의 어한기와 태풍이 몰아치는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맞이한 수확의 가을에도 이렇다 할 조황이 없자 동지들은 하나 둘 씩 떠났다.

누구는 고기를 찾아 섬으로 원정낚시를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낚싯배를 탔으며, 또 누구는 직접 선장이 되어 배를 몰기도 했다. 색다른 취향의 사람들은 카약을 사서 낚싯대를 실었다. 낚시의 다양성은 늘어났지만 공감대는 적어졌다. 조황란은 풍요로워졌지만 댓글의 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새로운 트렌드에 동참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되면서 단순히 조황에 열광하는 이들과 새로 등장한 낚시방식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늘어났다. 반면, 지금까지 정해진 필드에서 순수하게 동네낚시를 즐기던 이들에게서 다소 의기소침 한 분위기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러한 낚시방식의 차이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바다루어낚시를 처음 접하는 입문자들에게 다분히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양극화’의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일찍이 루어낚시가 대중화 된 민물로어, 즉 배스낚시에 있어서도 보팅과 워킹으로 나누어지자 워킹족들은 상대적으로 ‘비루하다’는 식으로 자조 섞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물론 취향의 차이와 낚시를 대하는 적극성의 차이가 만들어낸 선택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카약이나 선상낚시, 혹은 원정낚시가 바다루어낚시의 ‘대세’로 자리 잡게 진행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보트를 사고, 원정을 가야 하는 분위기라면 어느 누가 기백만원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낚시를 ‘취미’로 삼으려 하겠는가.

고기잡이보다 즐거운 건 낚시

우리는 너무 수월하게 바다루어낚시를 시작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감성돔 한 마리를 낚는데 몇 년씩 거릴 수도 있는 찌낚시, 월척 한 마리도 못 잡고 십 수 년을 다닐 수도 있는 민물낚시, 런커를 잡기 위해 몇 대의 낚싯대를 들고 다녀야 하는 민물루어. 처음 맞닥뜨린 바다루어낚시의 시작이 때마침 초절정의 호황이었기에 볼락, 무늬오징어, 부시리, 삼치, 농어, 광어, 참돔 등의 기라성 같은 대상어를 수월하게 낚을 수 있었다. ‘별거 아니잖아’라고 느꼈고, 점점 어려워지는 시즌이 벌써 3년째다. 다 알아버린 줄만 알았는데, 어려운 시기가 되자 너무 빨리 드러난 밑천이 부끄러워진다.

“이럴 바에야 그냥 다시 찌낚시 하는 게 낫겠어요”

동네낚시터에서 루어로 고기 낚는 게 점점 힘들어져 어제 밤길을 달려 거제도에서 낚시를 하고 온 한 에깅꾼의 말이다. 루어낚시라는 건 원래 어려운 것이 아니었나? 먹이도 아니고 플라스틱 가짜 미끼로 고기를 속이는 건데.

“그래도 아직 안 해 본 게 많잖아요. 고기 따라서 멀리 나가다가는 원양어선 타고 조업해야 할지도 몰라요. 가까운 곳에서도 안 해본 낚시, 못 담가 본 장소가 많은데 지금까지 너무 우리 지역에서 보면 10%도 안 되고 그나마 청사포처럼 매일 가는 곳 빼 놓고는 대부분 어쩌다 한 번씩 가는데 정확한 조황이 나올 리가 있습니까? 이렇게 어려운 낚시를 해 봐야 고기 귀한 것도 알고, 한 마리를 낚아도 즐거움이 더 크지 않겠어요?”

남 들으라고 한 말이 나에게 더 이로웠다. 그래, 아직 다녀 볼 곳은 많다 접어놓은 웨이더를 다시 입고 부지런히 걸어야겠다. 아직 시즌은 끝나지 않았다.

<자료제공: 월간낚시 21>

www.fishingnews.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