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정치인 로비 리스트’문건 작성 논란
전경련, ‘정치인 로비 리스트’문건 작성 논란
  • 최재영 기자
  • 승인 2011.0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국회 로비뿐인가?”

전국경제인연합회(허창수 회장)가 발칵 뒤집혔다. 나쁘다 못해 범죄 집단에서나 볼 수 있는 부도덕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재벌 이익에 반하는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여야 중진의원에게 로비를 해야 한다는 문건이 폭로됐다.

이 문건에는 국회 청문회나 국정감사 증인 채택 요구에 총수 대신 CEO를 대신 보낸다는 방침을 담겨 있었다. 최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장기외유와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 등 탈법적인 사례가 확산되면서 국회에서 재벌의 규제 입법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른 대응방안으로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회 환원 발표 이틀 만에 번복…교과서 기업인서술 제안

“전경련 해체해야”강경론…정병철 상근부회 월권행위 지적

<매일경제>가 5일 보도한 문건에 따르면 전경련이 지난달 10일 사회본부(본부장 엄치성 상무보)주관으로 회원사 간담회를 열고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GS 등 주요 그룹별로 접촉할 정치인을 할당 해 로비를 벌이자고 제안했다.

전경련은 재벌이익에 반하는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만든 문건‘대기업 정책 동향 및 대응방안’에서 여야 지도부와 지식경제위, 환경노동위, 국토해양위, 기획재정위 등 주요 상임위원회 간부 등에 대한 로비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른 구체적인 기업과 로비 대상이 적혀 있었다.

전경련이 국회에 로비관리에 들어간 이유는 대기업 규제를 위한 법률이 입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회가 청문회를 열어 현재 노사분규 중인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을 비롯해 일감 밀어주기 혐의가 드러난 현대, SK 등에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한 전략차원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이용섭(기재위 간사) 민주당 대변인, 우제창(정무위 간사)민주당 의원을 배정했다.

현대차그룹은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홍영표(환경노동위 간사)의원을 할당했다.

LG그룹은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김영환(지식경제위원장), 김성조(기획재정위원장) 의원을, SK그룹은 강길부(기획재정 간사), 김성순(환경노동위원장), 이성헌(정무위 간사)의원을, 롯데그룹은 부산출신인 조경태(지식경제위 간사), 허태열(정무위원장) 의원을, GS는 김재경(지식경제위 간사), 이범관(환경노동위 간사)의원을 배정했다.

전경련은 의원 전원과 백용호 대통령실 정책실장, 김효재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비서관 등을 담당했다.

구체적인 로비 방향은 의원 개별 면담과 후원금, 출판기념회, 지역구사업(1사1촌, 보육시설 등) 및 행사후원을 통해 지원하고 국회의원들이 지역민원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 도움을 주라고 제안했다.

이 문건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대기업 정책에 관한 관련 동향을 분석했다. MB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마켓 프렌들리’(친시장)으로 변모에 논리적 대응을 자제하고 국민에게 진정성을 담아 감성적 접근하고 호소하라고 적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 적합업종사업 이양을 비롯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과 하도급 문제 해결, 서민경제 활성화 방안 제시 등 선제적 조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근 전 국민이 관심이 쏠린 한진중공업 사태에 관련 대응책도 나왔다. 국회 청문회나 국정감사 증인 채택 요구에 대기업 총수는 원칙적으로 불참하고 대신 해당 기업 CEO를 내보낸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와 관련 전경련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간담회에서 전경련 실무자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 같은 의견을 개진했다. 그룹 참석자(상무급)들이 ‘기업 자체적으로 판단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여 그렇게 하자는 합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전경련의 문건이 폭로된 뒤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 반재벌 정서가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곤혹스런 입장이다.

실제 국민들 사이에선 전경련에 대한 선입견이 좋지 않다. 전경련이 반재벌 정서를 부추기는 장본인이라고 보고 있다.

일반인들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사업인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납품단가 후려치기, 하도급 문제, 일감 몰아주기 등 탈법적인 사례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이 대기업에 정부에 대한 논리적 대응을 자제하고 국민에게 진정성을 담아 감성적 접근에 호소하라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반응이다.

시민 이모(남, 51)씨는 “전경련은 범죄 집단이나 다름없다. 입법기관인 국회를 대상으로 로비를 하고, 재벌 총수의 청문회 참석을 회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범법행위나 다름없다”면서 “전경련의 모델이 됐던 일본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은 지난해부터 정경유착 온상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정치헌금 고리를 끊으면서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전경련은 아직도 구태를 못 벗어나 정경유착을 꿈꾸고 있다. 차라리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정병철 상근 부회장 독선 문제 부상

지난 3일, 전경련은 ‘사회 환원’차원에서 대기업이 공동으로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거나 방안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갔다.

하지만 잉크도 마르기 전인 5일 사회공헌 사업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져 폐기했고 재계에서 공동을 추진한 적도 없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다. 그것도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이틀 만에 ‘사회 환원’발표를 뒤집은 것이다. 이것도 재계가 곤란해질 것으로 우려한 끝에 회의조차 안했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이밖에도 전경련은 도를 넘은 행위를 했다.

지난 1일 교과서를 편찬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사편찬위원회에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을 서술해 달라는 ‘건의문’을 보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교과서까지 친 재벌을 만들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트위터에서도 ‘친 재벌정서 퍼뜨리는 전경련’이라며 맹비난이 쏟아졌다.

전경련은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재벌 사이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다. 대다수 재벌 총수들은 전경련 회장 자리를 외면하기 일쑤였다. 실제 전경련 회장 일부가 법망에 올라 도덕성에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전경련은 제자리를 못 찾고 있다.

일각에선 전경련이 무슨 대단한 권력인 것처럼 행동하고, 몇몇 사무국 간부가 사조직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흘러나왔다. 그 배경에 정병철 상근부회장의 소통 부족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한다.

매일경제는 7월 25일에 대기업 임원의 말을 빌려 “상근부회장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소통, 즉 언론과 소통라는 것인데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니 과연 전경련 ‘넘버2’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상근부회장이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 공동대표, 한국광고주협회회장까지 맡아 ‘감투’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집중호우로 수재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포럼에 참석한 정 부회장은 부인까지 대동해 골프를 즐겨 구설수에 올랐다.

대기업의 한 간부는 “재계와 전경련에 큰 갈등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며 “그룹사 회장들이 ‘일처리를 어떻게 한 것이냐’며 크게 다그치고 있다고 들었다. 아마 기회가 된다면 전경련을 탈퇴하고 싶은 그룹사들도 꽤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도 전경련과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민 대부분이 반기업 정서인데 총선과 대선이 내년 코 앞인데 전경련과 입 맞추기는 쉽지 않을 듯 싶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허창수 GS회장에 리더십 부재와 정병철 부회장에 독단적 행동에 대한 지적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