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암 원 보살 - 인물초대석
천신암 원 보살 - 인물초대석
  • 박진호
  • 승인 2010.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늘의 뜻 받아 무속인이 된 독립운동가 후손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하늘의 뜻을 받아 무속인으로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있다. 천신암 원 보살이 그 주인공이다. 독립유공자 후손 자격으로 중국 하얼빈에서 한국으로 건너 온 그녀가 무속인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인터뷰를 통해 풀어낸 ‘살아온 삶’은 생각보다 굴곡이 컸다. 평탄하게 살아온 한 여인이 무속인이 되기까지의 삶의 노정을 들여다 보았다. 신병(神病), 그리고 굴곡진 삶 독립운동가인 원제룡 선생의 손녀인 원 보살(010-4939-8836)은 5년 전쯤 유공자 후손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고향을 등지고 낯선 한국 땅에 새롭게 둥지를 트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한국에 온 이듬해부터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았다. 바로 신병의 시작이었다. “그 전부터 평소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곤 했었어요. 누군가가 나타나는 꿈을 꾼 적도 많았었어요. 그래서 설마 신병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가보다 생각했죠.” 그러던 중 그녀는 연이어 사고를 겪게 된다. 대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교통사고로 허리굴절, 자동차 사고 등 생사고락을 넘나들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장애 5급 판정까지 받았다. 마음과 몸이 지쳐갈 무렵, 주변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된다. 그나마 의지하고 망가진 그녀를 고쳐 줄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다녔다. 안수기도도 열심히 받았다. 그런데 또 한 번의 사고가 일어났다. 안수기도를 받고 오던 중 버스에서 발을 헛디뎌 머리를 크게 다친 것이다. 그 이후 그녀는 밤바다 동네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정신이상자라고 낙인이 찍혔다. 특히 한 겨울엔 맨발로 돌아다니다가 새벽에 들어오곤 했다. 점점 몸은 망가져만 갔고, 결국 위를 잘라내고, 쓸개도 드러내야 했다. “한 달간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정신병원은 물론 좋다는 약과 병원은 다 다녔어요. 하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죠. 결국 방에서만 누워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전생과 과거, 현재, 미래가 슬로우 비디오처럼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믿었던 그녀에겐 충격이었다. “한번은 병문안 온 친구와 같이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오른쪽 가슴에 무언가 시커멓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라고 권했죠. 얼떨결에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결과, 갑상선암 초기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지금은 수술하고 완치가 됐습니다.” 이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소문을 듣고 친구와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찾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점사를 볼 때마다 어디 하나 아픈 곳이 없었다. 그녀는 결국 우여곡절 끝에 신 내림을 받아 무속인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후 현재 스승님을 만나 무속인으로 보다 더 깊이 있는 무속 신앙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현재의 스승님을 만난 것도 우연의 일치였다. 당시 그녀가 스승의 집 근처를 몇날 며칠을 맴돌았다고 한다. 아마 무속인이 될 운명이었나 보다. 죽을 때까지 무속인으로 살고파 원 보살은 무속인이라는 삶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꾼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오감을 열고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이제는 그가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이자 목표가 됐다. “죽을 때까지 무속인으로 살 생각이에요.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인생의 고민을 나누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싶은 분들이 저를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하는 카운슬러가 되고 싶습니다.” 요즘 그녀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이다. 그녀의 용험함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탓에 거짓말 조금 보태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그녀를 찾는 사람들의 사연들도 저마다 가지각색이다. 40대 중반의 한 여인은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며 바람난 남편을 잡아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떼를 쓰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가게를 개업했다며 장사가 잘 될 수 있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이처럼 그녀를 찾는 사람들은 인생사와 직결된 사연을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원 보살은 항상 성심을 다해 이들의 점사를 보아 준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거쳐 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녀의 용험함에 놀라움과 함께 항상 감사를 전한다. 원 보살은 국내는 물론 멀리 중국까지도 입소문이 퍼지면서 중국 출장도 자주 다녀오는 탓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라고. 실제로 그녀는 1년에 20여 차례 중국을 다녀온다. 중국 현지의 기업과 호텔 사장 등 상당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을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은 중국 하얼빈에 위치한 중국 회사에서 연락을 받고 굿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그 회사는 터가 안 좋았어요. 귀신터였더라구요. 중국 굴지 회사였는데 하는 사업마다 계속해서 망하다보니 회장님이 저희를 불러 굿을 해달라고 해서 가보니 밑바닥부터 귀신이 쓰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굿을 통해 액을 풀어주었죠. 그 회사는 지금은 잘나가고 있어요. 얼마 전 회장님과 통화를 했는데 올 하반기에는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소비자 반응이 좋다고 하면서 감사의 뜻을 전하더군요. 가슴 한켠이 뿌듯해지더군요.” 원 보살은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중국교포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중국교포들을 위한 상담방 개설을 준비 중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녀는 상담방을 통해 나오는 수익금의 일부를 보태서 한국에서 정착하기 어려운 교포들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일들을 꾸준히 할 생각이다. 그녀는 또 어려운 보살들과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무속타운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현재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차곡차곡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고. 실현 가능성에 대해 묻자 그녀는 “신령님만이 아는 것이니 만큼 기다리고 있어요”라면서 자신을 이끈 운명의 신 앞에서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종남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