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실록소설 10] 대호(大虎) 김종서
[이상우 실록소설 10] 대호(大虎) 김종서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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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은 기매의 집 이방 저방에 윤이(潤伊)를 데리고 다니면서 하고 싶은 짓을 다했다. 
그동안 좌군부에 갔던 구중수가 윤이의 어미 종을 데리고 왔다. 별채에서 딸을 기다리고 있던 어미 종 쌍가메는 이제 팔자를 고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해가 뉘엿해질 무렵에야 양녕이 윤이의 어미를 불렀다.
“딸 하나는 정말 잘 낳았네. 앞으로 내 수하들이 보살펴줄 터이니 아무 염려 말거라.”
“마마만 믿겠습니다.”
쌍가메는 양녕의 발치에 큰절을 했다.

기매의 도움을 받아 급한 대로 윤이와 한바탕 놀고 난 양녕대군은 해가 떨어지자 윤이 모녀를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마, 어디로 행차하시렵니까?”
기매의 집 대문을 나온 구중서와 이오방이 윤이와 양녕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대궐로 간다.”
“예?”
구중수와 이오방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밤중에 경비가 엄중하기 이를 데 없는 대궐에 여인 두 명을 어떻게 데리고 들어간단 말인가.
“머리를 좀 짜 내보아라. 대궐에 데리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을 것 아닌가?”
양녕이 뒷짐을 지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했다.
“저하, 하지만 야밤중에 여자가 어떻게 대궐 문을 통과합니까?”
잔꾀를 잘 내기로 이름난 이오방 조차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여자를 데리고 간대?”
양녕은 여전히 빙글빙글 웃었다.
“아이쿠, 그거군요. 머리가 이렇게 안 돌아가다니!”
이오방이 자기 머리를 주먹으로 탁 치면서 말했다.
“빨리 들어가서 남자 옷으로 갈아입자.”
이오방이 윤이 모녀를 데리고 다시 기매네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양녕대군 일행은 자신들의 기이한 행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김종서는 나흘 동안 파말마를 달려 한성 궁궐에 도착했다. 세종 임금이 한성에 도달하는 즉시 궁으로 들어오라고 명했기 때문이었다.
김종서는 경복궁으로 들어가 승정원에 들렀다. 좌대언 원숙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정언, 먼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주상 전하께서 우정언을 사헌부 지평(持平)으로 교지를 내리셨네. 중요한 임무를 주실 것 같으니 알현하게나.”
사헌부 지평이면 정5품 벼슬이었다. 지금보다 한 계급이 높은 자리였다. 더구나 사헌부는 관원들의 비위를 적발하고 탄핵하는 서릿발 날리는 부처였다.
김종서는 잔뜩 긴장한 채 바닥에 끌리는 활을 메고 편전으로 들어갔다.
“사헌부 지평 김종서 대령이옵니다.”
“김 지평, 아직도 활은 메고 다니는구려. 그래 경원서 오는 길에 활을 쏠만한 짐승은 만나지 못하였소?”
세종 임금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변방 경원에는 짐승이 더러 있었습니다만 미처 활을 쏘지 못했습니다.”
김종서는 호군 송희미와 그 수하들을 염두에 두고 여쭈었으나 임금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내가 지평을 급히 부른 것은 양녕 형님 때문이오.”
김종서는 양녕대군이 또 무슨 해괴한 일을 저질렀을 것이리라고 짐작하고 어명을 기다렸다.
“형님이 야밤에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만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여자 둘을 남장으로 변복시켜 궁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고 하오.”
“어찌 그런 일이....”
“이 일이 궐내뿐 아니라 도당에까지 소문이 퍼져 모이기만 하면 수군댄다고 하니 과인이 참으로 못마땅하오. 김 지평이 은밀하게 이 사단의 전말을 자세히 조사하고 대책을 세워주어야겠다. 종실의 웃어른에 관한 일이니 아무 관원에게나 시킬 수 없지 않겠소. 그래서 그대를 부른 것이니 어김없이 처리해주기를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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