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테레즈라캥' 곽다인, "이제야 살아있는 것 같아"
[인터뷰] '테레즈라캥' 곽다인, "이제야 살아있는 것 같아"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2.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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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테레즈 라캥>기 지난 9월 개막해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 중이다. 

<테레즈 라캥>은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지 못한 채 억눌려져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테레즈’가 ‘로랑’이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제작사 한다프로덕션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솔직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원초적인 죄의식이 불러일으킨 번민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모습이 2022년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낯선 강렬함을 안길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본지는 이번 시즌 테레즈 라캥의 남편이자 라캥 부인의 아들 카미유 역을 맡은 배우 곽다인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으로 공연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반갑다. 인사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곽다인  안녕하세요. 저는 연기하고 노래하는 배우 곽다인이라고 합니다. 감사한 기회들로 2년째 대학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배우라는 직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곽다인  어릴 때부터 뮤지컬을 되게 좋아했었어요. 사실 지금 처음 밝히는 건데 아버지가 서울시 뮤지컬단에 오래 계셨었고 정년퇴임까지 하셨었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제일 많이 접했던 게 뮤지컬이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기 전부터 그냥 자연스럽게 뮤지컬을 접했고, 배우에 대한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이 지나고 부모님에게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고 말을 했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연극이나 영화 그리고 다른 예술 분야도 많이 접하고 관심을 가졌었는데, 졸업을 했을 때 나는 뭘 해야 할까, 뭘 하게 될까란 고민을 한참 하다 보니 뮤지컬로 마음이 좁혀지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운이 좋게 작업을 하게 됐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Q.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작업을 시작한 걸까.

곽다인  데뷔 아닌 데뷔는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리딩 공연을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올려서 그때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함께했었어요. 그리고 그 뒤로 학교를 다니면서 대학로 무대를 경험할 수 있었고 졸업은 올해 했습니다.(웃음) 

Q.  그럼 <전설의 리틀 농구단>에 나오는 '다인' 역이 곽다인이었던걸까.

곽다인  네, 맞아요. 정말 좋은 기회로 참여를 할 수 있었고, 제가 군대를 갔다 오는 사이 디벨롭을 거쳐 대학로 무대로 오게 됐고 성공한 작품이 됐죠. 뜻깊은 작품입니다.

Q.  학교에서 연극 작품들도 많이 했었나.

곽다인  학교를 다니면서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도 많이 했었어요. 완전한 상업 프로덕션은 아니었지만 학교 친구들이랑 꾸려서 나온 팀으로 두산아트랩이나 남산 드라마 센터에서 공연을 올리기도 했었습니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이번 작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곽다인  일단 감사하게도 컴퍼니 측에서 먼저 연락을 해주셨었어요. 카미유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었고 대본과 노래를 받아봤었죠. 보고 들어봤는데 너무 재미있겠다 싶었었고 개인적으로 제가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하게 됐습니다. 참여를 결정하고 나서 동명의 영화 <테레즈 라캥>을 봤었고,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박쥐>를 찾아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 미팅을 하는데 대표님이 생각보다 키가 크다고 하셔서 "괜찮습니다. 저 허약해요!"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Q.  영화를 챙겨 봤던걸까. 

곽다인  <박쥐>를 한 번 정도 더 봤었어요. 보긴 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큰 틀에서만 테레즈 라캥과 같은 플롯일 뿐 다른 인물들과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다 보니까 오히려 저한테는 독이 될 것 같더라고요. 여기에 더 매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작품에서 바라는 카미유를 연기하기 위해서 자세하게 파고들거나 하진 않았었던 것 같아요. 그냥 이 인물을 이렇게 그려낼 수 있구나만 확인한 정도랄까요. 

Q.  대본 리딩 부터 시작해볼까. 어떤 분위기였나.

곽다인  아무래도 같이 공연을 하는 선배님들, 형과 누나들이 아는 사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처음 만나는 분들이 많아서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 있었어요. 첫 리딩 때 진짜 분위기가 싸늘했었죠. 그런데 그 이후로 친해지면서 오히려 더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같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들만의 테레즈 라캥을 만나고 찾아나갔어요. 저는 대본을 볼 때 이상한 신념일 수도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성질, 잘하는 것들을 먼저 선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대본이나 작품에서 그려지고 비치는 캐릭터에 특성도 중요하죠. 그래서 이번 작품을 맡고 나서 작품 속 인물인 카미유와 실제의 저 곽다인과 비슷한 지점들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장면 별로 컷을 나누고 인물의 특성이 드러나는 장면들을 또 나눴었죠. 그다음에 흐름을 따라 깎아내는 작업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어느 공간에 살아있을 법한 인물을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게 제 개인적인, 작품을 함에 있어서 제가 목표로 하는 지점이거든요. 그렇게 리딩 과정부터 본 공연까지 준비했었습니다.

Q.  본인이 바라본 카미유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곽다인  몸은 컸지만 정신은 크지 않은 인물이죠. 알아야 할 걸 제때 알지 못했고, 배워야 할 걸 제때 배우지 못했어요. 그래서 자기 혼자 집안 한구석에서 만들어낸 좁고 비틀린 세계로 세상을 바라보죠. 일반적으로 누구나 소중하게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뭔지 모르고,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계속해서 되짚고 자해하고 떠올리는 인물이라고 봤습니다.

사진 ⓒ 조나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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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테레즈 라캥이 이들의 집안에 속한 구성품 혹은 쳇바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미유도 어떻게 보면 라캥 부인이 만든 쳇바퀴 속 부속품이라고 생각하나.

곽다인  자신이 어딘가에 속한 혹은 쳇바퀴 굴레 안에 박혀있는 부속품이라고 떠올리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그 스스로는 깨닫고 있었을 것 같았어요. 엄마와 이 집이 주는 억압 속에서 그 스스로 계속해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떠올리고 있고 나는 역시 부족한 인물이구나, 부족한 사람이구나를 되뇌죠.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자신과 같은 인물인 테레즈 라캥에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어찌 보면 그 또한 그녀에게 억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죠. 그 모든 게 아이러니하게 이어져있다고 봤어요.

Q.  카미유는 엄마 라캥 부인을 어떤 존재로 봤을까. 

곽다인  처음 연습을 시작했을 때 엄마가 주는 어떤 억압과 한정된 공간 속에 삶을 가두고 제한시키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세상을 비틀리게 됐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본 공연에 오면서 보니 엄마가 보내는 모멘트들은 어떤 억압이라기보다는 사랑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비틀려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누군가는 그게 억압이 될 수 있겠구나, 그게 또 다른 비틀림을 유발하게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진 ⓒ 조나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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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카미유가 극 중에서 처음 등장할 때와 이후 점차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일 때가 있는데, 왜 그의 감정들은 폭주하게 되는 걸까.

곽다인  아무래도 소설이나 영화와는 다르게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의 특성상 인물들의 삶의 하이라이트를 중점으로 다루잖아요. 따지고 보면 사실 카미유는 태어나고 난 이후 계속해서 약한 몸으로 인한 콤플렉스를 겪어왔어요. 그런 가운데 파리에 오게 됐고 처음으로 집 밖 생활을 시작하면서 취직도 하게 됐죠. 테레즈와도 결혼이란 걸 하게 됐고 그런 경험과 생활을 하면서 그 스스로 책임감이라는 걸 깨달아요. 그런 가운데 친구인 로랑을 만나게 된 거죠. 그 친구를 제가 제 손으로 부르죠. 그가 집으로 오고 나서 모든 게 변하기 시작해요. 약한 몸에 대한 콤플렉스가 떠오르기도 하죠. 왜냐하면 로랑이 가진 기질도 기질인데 그가 가진 어떤 신체적 우월함이라는게 그 스스로를 더 옥죈달까요. 그리고 사실 공연마다 조금씩 다른데 저는 로랑과 테레즈의 불륜을 알아챌 때도 있고 끝내 모르는 상황인 날도 있거든요. 

Q.  어떤 순간에 눈치를 채는 걸까, 아니면 끝내 모를 때는 어떤 상황일 때 그런가.

곽다인  우선 처음 시작은 원작과 대본에 충실했었어요. 연습 때도 원작에 가깝게 모르는 쪽으로 생각하고 연습을 계속했었죠. 그런데 무대에 오르고 공연이 계속 진행되는 과정에서 로랑 역을 맡은 형님들의 연기에 따라서 저도 조금씩 다르게 반응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일단 정민 배우님의 로랑 같은 경우에는 정말 형님이 가지고 계시는 그 호방함과 좋은 사람이라는 걸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드러나요. 그래서 사실 정민 배우님의 로랑과 만날 때면 어떤 두 사람의 불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게 만들죠. 형님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 그대로 캐릭터에도 묻어와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 정말 특별한 날 빼고는 모르고 지나가요. 정원 배우님 같은 경우에는 미묘하게 오가는 정적, 그리고 그 가운데 이들 사이 오가는 눈빛들이 있거든요. 그 모습들을 지나칠 때마다 조금씩 어떤 의심이 되긴 하지만, 정원 형님의 로랑은 저(카미유)한테 너무나 따뜻하고 친절한 친구이기 때문에 의심한 것 자체를 미안해할 정도로 아니겠지 하면서 넘어가요. 마지막으로 동현 로랑의 경우에는 사실 다른 두 배우님들에 비해서 꽤나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달까요. 저도 바로 느낄 정도로 욕망을 드러내는 것 같았어요. 집이란 장소, 공간에 대한 욕망이나 아내인 테레즈에 대한 어떤 욕망을 드러내죠. 그래서 사실 중간중간 기싸움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가끔 무대 위에서 바로바로 느낄 때도 있죠. 뭐냐면 위에서 자고 있는데 어느 순간 문이 크게 닫히는 날이 있거든요. 그럼 가끔 "오늘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겠다"라며 일어나고 싶은 마음을 먹을 때도 있어요.(웃음)

Q.  본지는 카미유의 죽음이 극의 1막, 그가 돌아오는 게 극의 2막처럼 느껴졌다.

곽다인  저는 작품 속에서 카미유가 주체적인 인물이 되는 걸 피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우리 작품의 제목이 <테레즈 라캥>이 아니라 <테레즈 라캥:카미유의 저주>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후반부엔 그저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이는 인물로서 그려내려 했죠. 그나마 그가 이제 관찰자란 지점에서 벗어날 때가 있는데 후반부에 왈츠 장면 때예요,. 흰 셔츠를 입고 무대 위에 올라오는 순간 그동안 그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던 인물들이 그를 바라보기 시작하죠. 그 스스로도 그때는 이제 자신의 콤플렉스와 집안의 압박, 바닥까지 내려간 자존심,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자유로움을 찾은 카미유가 나풀나풀 거리면서 떠돌아다니죠. 테레즈와 로랑을 죄책감에 허덕이면서 기괴한 모습의 카미유를 하나둘 바라보고 있고, 저 또한 그런 모습으로 그들이 바라보길 바랐고 그런 상상을 하면서 그 장면을 꾸몄어요. 

사진 ⓒ 조나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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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카미유는 왜 로랑을 집으로 초대하게 된 걸까.

곽다인  원작에는 서사가 드러나있는데 어릴 적 베르농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파리로 오게 됐죠. 카미유는 그 과정에서 테레즈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고 파리에 오게 되면서 취직을 하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철도청에 면접을 보러 갔었고 처음 출근을 하게 되죠. 그때 옛 친구인 로랑을 만나게 된 거예요. 로랑과 이야기를 나눈 카미유는 그가 파리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파리에서 어디 발붙일 곳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그를 집으로 초대했죠. 어머니도 그를 알고 있었기에 친구를 초대한 거였어요. 그리고 그 자신조차, 카미유 자신조차도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거죠. 그게 파극으로 이어질 건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죠.

Q.  만약 로랑이 오지 않았다면, 이들은 평탄한 삶을 살았을까?

곽다인  아뇨.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테레즈라는 인물이 가진 에너지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좁고 눅눅한 파리의 한 잡화점 그리고 그 잡화점과 연결된 집이라는 한정된 공감에서 그녀는 어떤 계기나 방식으로든 튀어나가지 않았을까, 또 다른 변곡점들이 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어찌 됐던 이 비극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카미유가 그의 손으로 비극의 시작이 되는 로랑을 데려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면 안 되는 것 같다.

곽다인  맞아요. 물론 그는 친구를 초대했지만 말이죠.

Q.  어떻게 보면 카미유는 테레즈에게 자신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어라는 걸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서 초대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곽다인  "나 이런 친구가 있어, 이 친구가 내 친구야"라는 거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키도 크고 멋있고, 그림도 잘 그리는 친구가 있어 자랑하면서 있지도 않은 어떤 위신을 세우는 듯한 느낌도 들 것 같고요. 

Q.  그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결국 그게 그 자신(카미유)의 콤플렉스, 스스로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곽다인  내가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자괴감이 더 자기 스스로의 목을 조르게 됐어요. 

Q.  그 과정에서 엄마의 존재 또한 카미유를 옥죄고 있었던 것 같다, 카미유에겐 약을 먹으라거나 어떤 행동에 대한 지적들을 하지만 로랑에겐 친절하게 대하고 있지 않나.

곽다인  대사 속에서 드러나요. "엄마는 내가 늘 로랑 같은 아들이 되길 바랐어"라고요. 그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카미유는 이겨내고 개척하려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내고 더욱더 반항하려는 모습을 보여요. 테레즈한테 집착하기 시작하고요.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공연 중엔 카미유가 어떤 죽음의 형태를 취하는데, 만약 그가 살아있고 뒤늦게 집에 돌아온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곽다인  돌아왔는데 로랑과 테레즈가 쓰러져 있는 걸까요? 

Q.  극에서 두 사람이 쓰러지고 엄마가 그 가운데 휠체어에 앉아있는 상태다.

곽다인  그의 정신은 다시 한번 무너지지 않을까요? 다시금 엄청난 트라우마와 착란에 휩싸여 파리를 며칠 동안 배회하다가 그렇게 그가 부르짖던 베르농으로 혼자 돌아가 식음을 전폐하다 쓰러져 죽었을 것 같아요.

Q.  그럼 그들이 죽기 전에 돌아온다면 좀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두 사람이 서로의 욕망과 속마음을 다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 도착했다면

곽다인  일단 로랑과 대화를 할 것 같아요. 그에게 그냥 떠나달라고 이야기를 하겠죠. 그가 떠난다면 남아있는 집과 엄마, 테레즈는 저 스스로 떠안고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을 것 같아요. 

Q.  로랑 역의 동현 배우와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함께하게 됐는데, 전작과 다른 모습들이 보인 게 있을까

곽다인  사실 전 작품이 끝나기 전에 이번 작품을 시작했었거든요. 그래서 공연장 위에서 동현 형은 혁명을 주도하고, 아프고 힘든 이들의 불편함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아래로 내려오면 집과 테레즈에 대한 욕망에 휩싸여서 저를 죽이려고 하는 인물로 변했죠. 같이 공연을 하면서 혁명을 외치다가도 그의 욕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어서 재밌는 지점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옆에서 바라보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하는 배우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었고, 사실 정말 노래를 하다가 웃음이 터질 뻔했던 적도 있어요. 어제는 서로 죽이고 싸웠는데 오늘은 서로 대의를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위해서 같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웃음)

테레즈 役 최연우, 카미유 役 곽다인
테레즈 役 최연우, 카미유 役 곽다인

Q.  테레즈 역할에 세 배우는 각자 어떤 느낌이 나는 테레즈일까. 

곽다인  일단 소연 테레즈는 기질적으로 가슴에 불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아요. 소연 테레즈는 그걸 계속해서 억눌러왔었고, 그게 터져 나갈 때 카미유로서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달까요. 그런데 관객의 입장, 혹은 제 삼자의 눈으로 봤을 때 엄청난 짜릿함으로 오기도 하더라고요. 거대한 에너지가 발산될 때 그런 매력이 있는 테레즈였습니다.

이어서 연우 테레즈 같은 경우에는 이미지적으로는 시든 꽃들이 가득한 꽃밭 정원 같았어요.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집이나 한정된 공간, 한정된 상황 속에서 힘을 잃고 시들어버린 거죠. 그런데 그게 로랑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다시금 힘을 얻고, 색을 얻어 가면서 피어나요. 카미유는 어느 순간 그걸 발견하고 그의 꽃밭이 다시 살아나는 걸 보면서 허탈감과 박탈감에 묻히게 되죠.

마지막으로 선민 테레즈 같은 경우에는 시니컬함이 있달까요? 얼음 같아요. 어떤 커다란 잔에 얼음이 가득 차서 잘그락잘그락 거리는 그런 느낌의 테레즈예요. 되게 차갑고 냉소적인데 그만큼 또 솔직하고 투명하죠. 그래서 사실 다른 두 테레즈보다는 숨기지 않고 모든 걸 드러내는 것 같은 되게 솔직한 테레즈였었어요.

Q.  로랑들은 어떤가.

곽다인  앞서 조금씩 언급을 했지만, 일단 형님들이 연기하는 로랑은 어떤 기술적인 스킬도 그렇고 피지컬이나 성격이 다 너무 다르고, 그 모습들이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요. 호쾌한 한량의 모습이라거나 그저 친한 형님이라거나 그래서 그냥 무대 위로, 집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성향이 딱 드러나는 것 같아요. 집안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죠. 정민 형님의 로랑은 그 피지컬에서 오는 압박감이 있어요. 그래서 같이 있으면 저를 더 작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고요. 정원 로랑 같은 경우에는 사실 들어오자마자 바뀌는 게 있거든요. 정말 정원 로랑은 테레즈를 처음 보는 그 순간 바로 이 사람이 내 사랑이다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 어떤 절절함이 저 개인적으로 보이고 느껴지죠. 물론 그럼에도 카미유로서는 '아니겠지? 내가 잘 못 느끼는 거겠지?' 하면서 자기의 감정을 부정하죠. 그래서 처음에는 그가 송곳니를 드러낼 때 반응을 했었는데, 계속 공연을 하면서부터는 제가 저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상황들을 만들고 있어요. 매회 다른 상황을 만들며 연기하고 있습니다.

라캥부인 役 이혜경, 카미유 役 곽다인

 

Q.  어머니, 라캥 부인들은 어떤가.

곽다인  혜경 어머니는 정말 두 아들의 어머니신데, 거기서 오는 진짜 엄마의 손길이 있어요. 저는 객석까지 그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자연스러운 손길이나 대사들이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게 더 저를 옥죄어 오기도 하고요. 그게 저를 옥죄려고 한 게 아닌 진짜 사랑이라는 걸 느끼지만 그게 더 저를 괴롭힌 달랄까요. 진영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엄하고, 차가워요. 그런 억압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카미유와 테레즈가 왜 이렇게 됐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는 엄마인 것 같습니다.

Q.  휠체어에 앉아있지만 이 집이라는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곽다인  이 사람이 왜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냥 앉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지만 온 집안을 지배하고 있죠. 엄마와 집이 사실 동일시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사랑과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억압하고 지배하죠. 그래서 카미유가 떠나고 엄마가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테레즈와 로랑은 집 밖으로 소풍조차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그들만의 소풍을 즐기려 했던 것처럼 그곳이 빠져나갈 수 없는 어떤 감옥이 된 거라고 봤어요.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곽다인  정민 형님이 피지컬이 엄청 크시거든요. 그래서 다른 카미유들은 한 번씩 초반에 장난치는 장면에서 원래는 간지럽히는 정도로만 하는 장면인데 번쩍 들어 올려서 흔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형이랑 저랑 키는 별로 차이가 안 나니까 저는 안 들겠지 하고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저를 들어 올리셨던 때가 있어요. 그때 앞쪽에 앉아계셨던 관객분들은 보셨을 수도 있지만 저는 얼굴이 사색이 됐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여자 탈의실, 선민 테레즈 옷이 담겨있는 옷장이 잠긴 적이 있어요. 그래서 연우 테레즈의 옷을 입고 나올 뻔한 스페셜 한 날이 있었는데 다행히(?) 문을 부숴서 그날 공연을 무사히 올린 날이 있습니다. 저는 사실 그날 공연이 안 올라갈 줄 알았었거든요. 아니면 올라가더라도 다른 테레즈의 옷을 입고 올라가는 거였었죠. 테레즈 세 명의 옷이 다 다르거든요. 

로랑 役 정민, 카미유 役 곽다인

Q.  최근 공연을 하면서 좋아하는 대사, 울림 있게 다가온 대사가 있다면?

곽다인  작품의 마지막에 테레즈가 죽기 전에 말하는 "이제야 살아있는 것 같아"라는 말이요. 이 집안에서 계속해서 죽은 듯이 살아왔던 테레즈가 처음으로 살아있다고 느낀다는 말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더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 문장 자체의 울림도 있고, 지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더 다가왔죠. 

Q.  이어서 좋아하는 장면은?

곽다인  작품 속에서 꼭 봐야 하는 장면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왈츠요. 네 명의 인물이 다 등장하고 시간과 공간이 변하는 걸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라서 제일 좋아해요. 아름다운 춤과 테레즈와 로랑이 느끼는 불안감, 엄마가 느끼는 그리움, 그들 모두 느끼는 두려움 속에서 제가 등장하면서 느껴지는 저만의 쾌감이 있어요. 그 모든 게 다 느껴지는 장면이라 제일 좋아하고 그리고 또 무대에서 유일하게 춤을 출 수 있는 장면이라서 제일 행복한 시간입니다. 춤을 잘 추지는 못하지만 무대에서 몸을 크게 크게 움직이면 오는 어떤 자유로움이 있어요. 그래서 다른 생각이 나 주변에 큰 신경을 쓰지 않게 돼서 좋아합니다.

Q.  춤을 잘 추는 편일까.

곽다인  잘 추지는 못하지만 좋아합니다.(웃음) 

Q.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곽다인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억눌러가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옳은 선택을 하진 못해요.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나 본능에 따라서 솔직하게 움직이고 행동하고 감정을 표출하죠. 그런 모습들이 누군가에겐 대리 만족이나 카타르시스로 느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서늘해지는 가을에 정말 잘 어울리는 공연이니까 극장을 찾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우 개인적으로는 <붉은 정원>이란 작품을 할 때에 사실 제가 배우 1인분의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물론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제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어요. 그 이후로 열심히 공연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고 어느 한 쪽으로 쏠리거나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도 저에겐 그런 작품이 되길 바라고 저 스스로도 더 성장할 수 있는 공연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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