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죽어가는 러시아 시장서 철수여부 '딜레마'
현대차, 죽어가는 러시아 시장서 철수여부 '딜레마'
  • 한상설 기자
  • 승인 2022.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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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짐을 싸면 천문학적 투자금 날려…전쟁후 시장회복에도 대비해야
외교적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단은 공장 장기 폐쇄로 가닥?

현대차가 막대한 투자액을 날리고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전까지 투자한 금액을 포기하고 철수하면 그만이지만 외교적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훌훌털고 봇짐을 쌀 수 없는 상황이다. .

현대차는 이에 따라 완전 철수보다는 러시아 공장을 장기폐쇄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뾰쪽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러시아 시장에서 지난달 기약 없는 철수를 결정한 일본 도요타나 닛산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도요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러시아에서 자동차 생산을 완전히 멈추고 판매망을 거둬들였다. 닛산도 생산설비 등을 러시아 국영 자동차개발연구소에 넘겼다.

러시아에 진출한 세계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은 완전히 철수하거나 공장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프랑스 르노는 지난 5월 현지 자동차 기업 아브토바즈의 지분 68%를 전부 처분했다. 독일의 폭스바겐은 러시아 공장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포드, GM나 독일 자동차 회사인 벤츠와 BMW도 현지 공장의 생산을 이미 중단한 상태다.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조립 라인에서 차량이 생산되고 있다. (사진=현대차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조립 라인에서 차량이 생산되고 있다. (사진=현대차

그러나 현대차는 투자규모가 워낙커 완전철수는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지난 201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연간 생산량 23만대 규모)을 준공한 이후 최근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020년에 연 10만대 규모의 옛 GM공장을 인수해 생산설비를 확충하기도 했다.

현대의 러시아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현대위아는 2019년 러시아에 엔진공장을 착공해 지난해 말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 37만7614대를 판매해 현지 브랜드 ‘라다’에 이어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러시아 시장이 비교적 밝은 편이어서 투자가 마무리되면 큰 이익을 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면서 현대차의 러시아 시장에서 부푼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잃을 게 너무 많은 현대차로선 철수를 결단하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 후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어두운 전망으로 매력을 잃었다. 현대차의 러시아 생산법인(HMMR)은 올해 1~9월 3만7036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이는 전년의 판매대수의 10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인 1월(1만7649대)과 2월(1만7402대)에 팔렸다. 3월에 러시아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판매량은 급감했다.

현지 딜러들이 간간히 재고 물량을 팔다가 8월 이후로 판매량이 제로(0)다. 매출은 없는데 인건비, 전기료, 세금 등 생산 설비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빠져나가고 있다.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부품가격마저 치솟았다.러시아 공장은 돈 먹은 하마로 전락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비롯된 복잡한 국제정서와 서방국가의 러시아 혐오 정서도 철수여부 결정에 여간 부담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시장에 대한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들의 눈총을 사 미국과 유럽시장 판매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 투자 전문가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확대된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 정서)는 전쟁이 끝나도 그 흔적을 오래 남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한국을 직접 지목해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시 양국관계가 파탄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한반도를 흔들 신냉전 기류가 형성되면서 현대차는 양국간의 첨예한 갈등기류에서 철수를 결단할 수 없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양국 간의 외교 마찰이 첨예한 상황에서 현대차의 철수는 외교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클럽 회의에서 3시간여에 걸쳐 국제정세를 논하면서 이례적으로 한국을 직접 거론하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그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며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면 양국 관계는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 사실이 없다고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즉각 반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살상무기나 이런 것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사실이 없다"며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주권의 문제"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한 자동차 전문매체는 지난 17일(현지시간) “현대차가 러시아 공장을 장기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공장에 있던 차량 약 1500대를 공장 밖으로 반출했고 조만간 인원 감축 등을 포함한 후속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러시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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