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모럴해저드의 '극치'…출장간다며 독서실로?
한국도로공사, 모럴해저드의 '극치'…출장간다며 독서실로?
  • 한상설 기자
  • 승인 2022.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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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감사서 승진시험 준비로 무단결근 6명 적발 …강급·정직 처분
직장내 괴롭힘 성행…중장비학원과 짜고 자격증 부정수급 드러나
기강해이 올해 국감 '도마'…과감한 개혁 때 도로공사 바로 설 듯

최근 한국도로공사 일부 직원이 승진시험 준비를 위해 현장을 간다며 사실은 독서실로 직행하는가 하면 무단결근을 한 사실이 자체 감사 결과 밝혀졌다. 근무시간에 일은 하지 않고 딴 짓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져 과연 공기업 도로공사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지에 의문이 생긴다.

도로공사의 모럴해저드 사례는 이 말고도 수없이 많다. 도로공사는 올해 4월 120억 상당의 CCTV를 검수도 하지 않고 도입해 제품이 모두 불량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비슷한 시기에  도로공사 직원들이 중장비학원에 수강료 수십만원을 주고 허위로 건설기계 조종사 이수증을 발급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직장갑질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도로공사의 모럴해저드는 이처럼 이미 위험수위에 올라있다. 과감한 내부개혁을 단행하지 않고서는 기강해이와 부정 및 비리 의혹은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서 올해 국감에서 여야의원들은 도로공사의 모럴해저드 문제를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추궁해 방만경영을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도로공사 감사실에서 제출받은 지난 2월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직장이탈 금지 위반’으로 강급·정직 처분을 받은 직원은 6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A씨(4급)는 지난해 11월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출근하지 않고, 집 근처 독서실에서 승진시험을 준비했다. 휴대전화로 ‘모바일오피스’ 시스템만 켜놓고 ‘정체예상구간 현장점검’ 핑계를 대고 독서실로 향한 사례도 빈번한 사실이 적발됐다. 그는 근태처리를 변경하면서 결재권이 없는 다른 부서 차장인 배우자에게 결재를 올리기도 했다. A씨는 ‘8일 무단결근’과 ‘3일 근무지 이탈’로 직급이 강등되는 징계조치를 받았다.

경북 김천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본사.(사진=뉴시스)
경북 김천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본사.(사진=뉴시스)

같은 본부 소속인 B씨(4급)도 승진시험 준비 과정에서 ‘14일 무단결근’과 ‘2일 근무지 이탈’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출근 기록이 없는 이유에 “자차가 아닌 배우자의 차량과 택시를 이용해 출근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사무실에 들러 업무를 본 뒤 3층 창고에서 승진시험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로공사 감사실은 B씨가 거짓말을 한 사실을 밝혀냈다. 감사실은 “창고에는 보고서가 바닥에 겹겹이 쌓여 있어 승진시험 준비를 했다는 주장은 상식적이지 않다”며 그의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직급을 강등시켰다.

이들은 관리자의 묵인이나 방조아래 근무시간에 승진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의 상급자인 C씨는 (2급)는 팀 사무실에서 차장들에게 “(승진시험) 수험생들의 회식 참여와 야근을 배제하고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업무 전반적으로 도움을 주라”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C씨는 B씨가 근무시간에 승진시험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제지하지 않아 정직 처분을 받았다. 또 A씨의 상급자인 D씨(2급)도 A씨가 특별한 사유 없이 공무 외출을 2주일이나 신청했는데도 이를 승인했다며 감봉 징계를 받았다.

도로공사와 자회사 직원들의 멋대로 근무행태는 지난 4월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에서도 확인됐다. 이들은 감사보고서에서 작년 말과 최근 내부감사를 벌여 직장이탈 금지, 직장내 괴롭힘 금지, 품위유지 위반 사례 등을 확인해 징계 처분했다고 밝혔다.

알리오를 보면 도로공사의 다른 본부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문제도 불거져 상당수 직원이 징계처분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해 7월 E씨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불특정 직원의 업무방식 등을 비방하는 글이 올라오자 이를 본인이라고 여겼다. 그는 내부에서 자신을 비방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트레스가 커지자 정확한 근거 없이 같은 본부 후배직원들을 게시자로 지목해 여러 차례에 걸쳐 막말과 욕설 등을 쏟아냈다.

자회사인 도로공사서비스에서는 지역 영업소 직원 39명이 상위 지역센터 담당자에게 명품가방 등을 선물한 사실이 확인됐다. 올해 2월 고속도로 지역 영업소에서 근무하는 대리 F씨는 상위 영업센터에서 미납심사 업무 등을 하는 주임 G씨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는 이유로 같이 근무하는 직원 39명으로부터 최대 10만원씩을 거뒀다. 앞서 진행했던 임금 차액소송에서 많은 소송금을 받을 수 있게 G씨가 도움을 줬다는 이유였다. 이들은 383만원을 모아 백화점에서 339만원 상당의 명품가방을 구입해 선물했다.

G씨는 해당 직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밴드)에 잘 쓰겠다고 인사했다가 나흘 뒤 이를 환불하고 돌려줬다. 해당 사실은 금품으로 감사 표시를 억지로 강요받았다는 내부 제보를 통해 밝혀졌다.

지난 5월엔 도로공사 직원 142명이 중장비 학원에 수강료 수십만 원을 주고 허위로 건설기계 조종사 이수증을 발급받았다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범죄에 가담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당시 강원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발표에 따르면 도로공사 직원들이 건설기계 조종면허 교육 이수증을 허위로 발급받아 자격증 수당을 부정 수급했다.

중장비 학원을 운영하던 학원장 A씨와 B씨는 도로공사 직원 142명으로부터 수강료 20만∼50만원을 받고 소형건설기계 조종사 면허취득 교육을 이수한 것처럼 출결 시스템을 조작해 이수증을 허위로 내줬다. 도로공사 직원들은 이를 관공서에 제출해 면허증을 발급받은 뒤 회사로부터 자격증 수당을 타냈다. A씨와 B씨는 각각 약 4800만원과 2900만원의 이득을 챙겼고, 도로공사 직원들은 자격증 1개당 매달 3만원의 수당을 부정하게 받았다.

이에 앞서 지난 4월에는 도로공사가 120억 상당의 CCTV를 검수도 하지 않고 도입해 불량으로 드러났다. 당시 MBC는 지난해 고속도로와 국도 400여 곳에 대대적으로 설치한 신형 CCTV가 불량이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도로공사가 국내 신기술이 적용됐다며 120억원을 들여 설치한 A사의 신형 CCTV가 정상 작동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도로공사가 측은 “서류만 보고 의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A사가 제조했다는 CCTV가 실은 중국산 저가 제품이라는 지적이 나오며, 해당 사업 수주를 놓고 특혜 시비와 내부 직원 유착설 등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10여 차례의 입찰을 통해 A사가 제조한 CCTV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도로공사 입찰에 참여한 A사는 10여 차례 모두 ‘지명경쟁’ 또는 ‘수의계약’ 형식으로 낙찰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도로공사에서는 이처럼 탐욕과 부도덕한 사건이 끊일새 없다. 급여수준이 높은 ‘철밥통’인데 반해 기강해이에 대한 감시와 감독은 느슨한 탓이다. 도로공사에 과감한 메스를 가하지 않으면 도로공사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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