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 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95화 - 한밤중 누드화실
[과학추리 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95화 - 한밤중 누드화실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2.0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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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님의 긴급 호출입니다.”

“전무님이라뇨? 한국 바이오 컴퍼니에는 전무가 없는데...”

“제가 근무하는 정보기관입니다. 팀장을 우리는 전무님이라고 부르거든요.”

“음, 일종의 위장이군. 그러면 유성우 씨는 아직 그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는 말인가요?”

“예.”

“아니 사표내고 한국 바이오에 본부장으로 온 것 아닌가요?”

“아, 그렇군요. 저는 선생님은 눈치를 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안 드렸어요.”

“그럼 위장 취업을 했다는 말인가?”

나는 속았다는 생각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럼 한국 바이오 컴퍼니라는 회사가 정부로부터 주목 받아야 할 중대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인가?”

“우선 살인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데 해결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경찰이나 검찰에서 해결 할 일이지.”

“맞아요. 정보기관이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기관은 아니지요. 그러나 정보 당국에서는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저의 전공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저를 투입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는 또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었다.

도대체 한국 바이오라는 조그만 제약 회사가 왜 정부의 주목을 받는다는 말인가?

변하진 사장은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곽정 형사도 내막을 알고 있는 것일까?

한영지가 여주로 나온 뮤지컬은 성공리에 끝났다.

내가 이유 없이 싫어하는 바리톤 함정휴의 인기가 대단했다.

커튼콜을 다섯 번이나 받아 낸 인기였다.

공연이 끝나고 옆 홀에서 간단한 쫑파티가 열렸다.

한영지가 파티에 함께 가자고 했으나 나는 여러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 싫어서 사양하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지루해서 공연장 뒤에 있는 소공원 윤동주 벤치로 갔다.

공원 불빛 아래 앉아서 모바일을 켜고 인터넷에 연재 중인 내 소설을 다시 읽었다.

“선생님!”

내가 한창 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리뷰를 읽고 있을 때 갑자기 한영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옆으로 돌아보자 한영지가 두 팔을 벌리고 웃으며 서 있었다.

“아니, 쫑파티가 벌써 끝났어?”

한영지는 내 곁으로 와서 벤치에 앉아 팔짱을 꼈다.

“엄마가 사라지는 바람에 기분 잡쳐서 그냥 나와버렸어요.”

“엄마가 왜 사라져?”

“같이 왔던 변 사장이랑 둘이서 없어졌어요.”

“영지는 내버려 두고 둘이 가버렸단 말이야?”

영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갔는데?”

“남녀가 밤중에 가는 곳이 어디겠어요?”

“어디야? 미술관?”

“ㅋㅋㅋ, 비슷해요.”

“엄마 화실로 갔구나.”

“예. 곧 끝내야 하는 스케치 때문에 틈날 때 끝내야 한대요. 변 사장이 늘 바쁘니까 모델 설 틈이 나지 않는대요.”

“변 사장이 누드모델 자원했다는 그 작품?”

“예. 다음 주까지 워싱턴서 열리는 살롱 전에 보내야 한대요.”

“한밤중 누드 남성 앞에 붓을 들고 선 여류 화가라... 그림 좋겠는데.”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영지도 따라 웃었다.

한쪽만 생기는 볼우물이 귀여웠다.

“우리도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한잔 어때요?”

“콜.”

우리는 일어서서 세종로 거리로 나갔다.

한영지가 나한테 슬그머니 팔짱을 끼었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청진동에 주꾸미와 소주 파는 집 있어요. 가난한 연극쟁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한번 가 보실래요?”

“좋아.”

나는 가난한 소설가나 시인들과 자주 어울리기 때문에 그런 곳의 분위기에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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