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경 문화 귀재(鬼才)인터뷰] 아티스트 성병희, 지극히 낯선 순간들을 기억나는 냄새들로 무장 한다.
[강희경 문화 귀재(鬼才)인터뷰] 아티스트 성병희, 지극히 낯선 순간들을 기억나는 냄새들로 무장 한다.
  • 어승룡 기자
  • 승인 2022.0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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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보았던 영화가 생각 났다. 우리에게 ‘무민’이라는 캐릭터로 알려진 동화작가 ‘토베 얀손(Tove Jansson)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의 앵글이 작업중인 주인공 그림을 클로즈업 하고, 어떤 그림을 왜 그리냐고 묻는 친구에게 주인공은 “시작하는 사람” 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엔딩 . . 영화의 끝을 시작으로 끝내다니! 참 멋지다고 생각 했다. 유명한 조각가 아버지 뒤를 이어 가길 원했다면 조금은 수월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작업을 위해 또 다른 시작을 하였다. 세상의 모든 시작에는 과정이 있고 눈에 보이는 결과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모든 삶은 어느 시점에 완료되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이고 미래로 이어진다. 그런 아주 사소하고 단편적이지만 놓치기 아쉬운 것들을 다시 소환해 닿을 수 없는 너의 모든 ‘나’에 관한 아티스트 성병희 (Byunghee Sung)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 본다.

 

[BLACK] 달콤한 무관심 속에 부드럽지만

깨지기 쉬운 경계의 긴장감은

낮과 밤의 주파수 사이에서 머뭇거렸다.

모든 몸부림을 덮어버리려는 듯

검은 현세의 쾌락 또한 끊는다.

 

화이트케이 갤러리에서 열렸던 <삶-죽음–서커스> 개인전

Life – Death - Circus

'삶-죽음–서커스' 라는 제목으로 얼마전 화이트케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마쳤다. 삶과 죽음, 참 심오하다. 우리와 가장 가깝고 당연히 맞닿아 있음에도 가장 와 닿지 않는 주제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외줄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애써 버티는 서커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나온 나의 이야기들이다. 누구나 삶은 유한하지만 그 과정을 겪으면서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늘 위협하고 매일 동행하는 것 같은 삶이 두려웠고 진정한 자유를 잃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작가가 되기로 하였고 작가가 되었다. 마치 거미가 자신이 짓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위태롭지만 거미줄을 치는 순간 공간을 지배하게 된다. 그런 모든 위협에서 스스로 자유를 찾아 가는 존재인 나는 삶을 온전히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개인의 고통과 사회의 부조리들이 서로 연결되어 불안과 고통, 아픔도 서로 맞물려 결국에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일과 일상, 둘 사이의 균형

“안다는 것과 이해 한다는 것은 ‘바뀐다’는 뜻이다.”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고 작업하고 무엇이라도 배웠다면 어제의 나와는 달라진 새로운 ‘나’ 인 것이다. 그것이 일과 일상 둘 사이에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간에 작은 깨달음으로 성장하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어제와 달라지는 나를 만들어 갈 수는 있을 것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특별한 경계없이 나는 매일 쉼없이 작업한다.

청춘의 덫

넉넉치 않은 집안 형편임에도 부모님의 지원으로 미술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대학 생활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그리고 싶었던 것과는 상관없이  스며들어야 했고 이용당해 줘야만 하는 현실에서 적당히 원하면서 잘 쓰고 그릴 수가 없었다.  미래를 장담해 주지 않는 가혹한 빛의 혼란스러움은 마치 화려하지만 어두운 인공조명처럼 더욱 숨 막히게 만들었다. 아무도 구원해주지 않았다. 길은 보이지 않았고 햇빛은 늘 나를 외면 하는 것만 같았다. 힘들게 대학을 졸업 하고 ‘30살 이후의 삶은 내게 수치다’ 라고 외치면서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처 하던 중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이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강박적 아름다움에서 풀려 나오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꽃이 시들 듯 사랑도 시들어 갔다. 그 후로 3년 . .

[WHITE] 절박하게 찾아 드는 아늑함에서 ‘

아름답지만 짧은 여행’에서 돌아 왔다.

갖은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처한 비극적인 현실,

현실적인 비극의 하얀 거짓말

그러나 너무나 소중했던 무위의 마음은

유한하게 또 무한한 사랑처럼 날아 들었다.

 

책임져야 할 그 무엇

누구나 평범하게 살고 있을 때는 이혼을 한다거나 배우자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등등의 일들이 자신에게는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혼자가 되었고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나처럼 외로움을 많이 타고 어울리기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개인의 숙제라며 더한 짐을 얹어 주었다. 아이를 양육 하는 거 외에는 다른 거에 일체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다. 당시 그림을 그리는 것 조차도 . . 열심히 일을 했다. 우려와 달리 폭풍 성장 이라고 했던가, 아들은 아주 잘 자라 주었고 가장 큰 후원자이면서 때로는 내 작업에 독설도 서슴지 않는 최고의 선생님으로 말이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프로젝트였던  ‘아들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 

그릴 수 밖에 없는 명분

기억력, 집중력, 정리 정돈 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기분을 이해 할 수 있는 능력 등 여러 인지 능력이 보통 사람의 절반도 안 되는 우리와 조금은 다른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근육의 발달이 느리고 시지각 능력도 부족해 동작도 둔하고 손가락 사용도 쉽지 않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유연성 조차 없는 다양한 양상에 다소 당황했지만 기본적으로 관찰력이 뛰어 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려낸다. 하지만 그들도 독립된 한 인간이고 부모도 아이와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런 그들도 대단했지만 부모님들의 긍정적 마인드, 유한한 시간 그리고 무한한 사랑은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상황들을 잘 견뎌내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뭐지? 뭐였지?” 하는 의문과 함께 내 삶에 편견이나 의식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내게 누군가 그랬다. ‘누구에게나 이 정도 힘든 사연은 다 있는 것 아니었냐고! 왜 엄살이지?’ 물론 살아 온 형태가 다르기에 그 말에 다 공감 할 수는 없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아이와 살기 위해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명분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들과 지금 이 순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준 부모님께도 감사하다.  

잊혀지지 않는,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성병희씨, 요즘 작업 해요?” 아니요. “왜요?” 아기가 이제 막 3개월밖에 안되었어요. “그럼 아기라도 그려요! 그림 그려요. 전시 하면 꼭 연락하고요!” 내성적이면서 시니컬하고 한 고집에 외골수로 세상에 중심은 나라고 나는 내 그림을 그린다 하는 열정적인 시기가 있었다. 그 때 만났던 선생님이다. 당시로서는 크고 좋은 공간에서 전시를 하였다. 물론 성과도 좋았다. 그리고 15년이 지나서야 진짜 첫 개인전을 하였다. 전시하면 연락하라고 하였으니 고민 끝에 연락을 드렸다. 무척 기뻐 하셨고 정말 오셨다. 바람이 지나간 자국 마냥 세월속에 빛 바랜 한세기가 퇴적되며 또 한 시절이 침식되는 시간을 비껴 갈 수 없는 듯 내 시간만큼 선생님도 세월의 주인이 되셨다. 지금도 왕성하게 작업하시고 활동하시는 가끔씩 문득문득 생각나는 선생님. 그 때도 감사했지만 마음 곳간(庫間)에 간직해 두겠습니다. 고맙습니다.  

 

[BLUE] 무력한 회색의 大地(대지)위에

푸른 하늘의 아리아

 

유독 공기는 맑고 날씨는 차가우며 하늘은 파랬다. 저 파란 하늘 너머 어딘가에 은하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낮 푸른 하늘 저 편에 보이진 않지만 별의 길은 어김없이 빛을 내고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별을 보기엔 너무 밝을 뿐이다. 갑작스런 남동생의 죽음은 나를 깊은 상실감에 빠지게 했다. 이제는 어쩌지도 못하는 고립된 자아이고 상처일 뿐이다. 세상과 이토록 철저히 단절된 적이 없었을 만큼 나를 떠나간 ‘추억’이며 내 마음안에 커다란 공중(空中)을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 무심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 파란 인과적 고통안에서 나는 독백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슬픔은 남는 자의 몫이기에 가까운 사람을 잃어 본 사람만이 안다”고 . . 잘 지내지?  

 

[RED] 한바탕 울고 났더니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

나른한 몸의 노곤함은 죽은 듯 빠져 드는 내일을 위한

깊은 잠과 같은 붉은 희망으로 보게 된다. 

 

지금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쯤 끝이 날까 하는 기약도 딱히 없다. 처음 겪어 보는 상황들은 모든 것을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리고 모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아 가고 있다. 내가 정말 두려운 것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적응하고 그 상황에 적절히 편해지는 내 마음이다. 전쟁과도 같은 이 시간들이 지나 가고 모두가 편한 마음으로 자유를 찾고 싶을 뿐이다. 그런 나는 집에 칩거하며 작업만 했다. 최근 일년 가까이 공들인 작업을 마쳤다.

내 작업의 진짜 이야기

불편하다, 불안하다, 고통스럽다, 아프다, 무섭다, 이상하다, 온갖 편하지 않은 수식어들이 따라  붙는다. 보통 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들과 나는 매일 조우한다. 나의 내면적 우울함이 형상으로 떠 올라 빨간 피와 살, 뼈, 신체내부장기, 충혈된 커다란 눈과 산소호흡기 그리고 타투(문신)의 메시지들은 또 다른 상황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개인적이고 고립된 소재이다. 나의 내면적 우울과 고통이 다른 이들에게 일반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통의 정도는 가늠하지는 못하나 이해 할 수는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삶에 애정이 깊었던 것만큼 잇따르는 외로움과 고독은 클 수 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나’에서 ‘사람들 속에서의 상대적이고 객관적인 나’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친밀감’이라고 포장된 그림자와 같은 인간의 모든 감정의 갈등과 대립, 그것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이나 이별 등의 과정도 필수적으로 겪게 되는 것만 같았다. 흔히들 말하기를 내 그림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섬세하다. 작은 점 하나에도 나의 마음이 실려 있다. 내가, 사회가, 우리 모두가 겪는 아픔과 고통, 고뇌의 소중한 붉은 기억들을 치유하고 싶다. 그리고 숨기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려? 무엇을 그리는 가는 그 다음이야!

이런 저런 고민에 사로 잡힐 이유가 없다. 그림이 곧 나고 어디에서부터 나의 생각이 그림과 연결이 되고 왜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점점 사유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계속 그렸다.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무게감이 좋았다. 돈과 명예 모든 물리적인 요인과 상관 없이 그리는 자체도 좋았지만 끝도 없이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폭풍 같은 전율이 느껴 질 때마다 그 절절함을 그저 ‘덜어 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전혀 의도치 않은 필연적인 운명처럼 덤덤하게 나를 놓치지 않을 뿐이다.

덜어 내는 것

언제까지 어떤 작업을 할 지에 대해서 많이들 물어 온다. 한결 같은 나의 대답은 ‘몰라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싶다. 어떤 작가든지 작품에 본인의 자화상이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책을 읽고 많은 공부를 하고 의도해서 작업을 했던 것이 아니다. 이성이 발동해 감성과 오감이 우연한 기회에 나왔을 뿐이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내게 타투가 그랬다. 타투를 처음 보았을 때 멍든 것처럼 보였다. 새파랗게 보이면서 그 안에 적혀 있는 글자와 내용들이 눈에 들어 왔다. 알 수 없는 미적 끌림도 있지만 지울 수 없는 흔적과 같은 인생의 이정표로 그 사람의 삶이 표면 밖으로 나오게 되면 저런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것들을 덜어 내고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 채우려면 목구멍까지 숨 차오르는 물을 퍼 내기에도 너무 바쁘다. 내게 그림은 ‘덜어 내는 것’인데 초반에 덜어 내지 않으면 절절함을 잃어 버린다. 때로는 더하는 것보다 뺄 때 아름다워 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내게 타협이란 없다. 퍼 내자.  

마지막으로 아껴 두었던 삶의 모든 붉은 희망을 본다

다른 이들이 외면하고 숨기고 싶어하는 지극히 낯선 순간들을 익숙한 냄새들로 무장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우리가 놀래 자빠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아들에게 아빠의 부재로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의 근원에서 벗어나 잘 키웠고 잘 자라 주었다. 나는 여자로 태어났고 엄마가 되었고 여자라는 삶을 남편이 아닌 오로지 애정을 갖고 바라 보아야만 하는 아들을 통해서 보았기에 여자로써 겪는 어려움 또한 무엇인지도 안다.  하지만 리얼리즘이 아닌 세상 구석구석까지 드러난 생채기들을 꼼꼼하게 표현하게 되면서 작업의  미학적인 서식(書式)을 담고 싶었다. 바라 볼 것이 많아지고 표현 하고 싶은 감정들이 밖으로 뿜어져 나와 충혈 된 아이의 눈도 커지게 되었다. 언제나 작업의 마무리는 붉은 색이 선연한 피를 뿌리는 것으로 오히려 내게는 마음의 거침이 없는 평온함이다. 예쁜 빨간색을 찾기 위해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붉은색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이완된 편안한 감정들로 고요하게 작업에 집중 할 것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서커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 나의 생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이게 살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은 공간과 주제에 맞게 발표를 해 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2012년 작품부터 2021년 신작까지 변화된 내 모습과 일치하는 집약된 전시로 의미가 컸다. 내 작업의 연대기로 블랙, 화이트, 블루, 레드를 총망라했고 설치 작품과 타투에 이르는 하이라이트로 한정된 포지셔닝이 아닌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조금은 확장된 영역으로 말이다.     

아티스트 성병희, Byunghee Sung

가까이 다가설수록, 가까이서 볼수록 끝도 없는 듯 깊어지는 검은 공간의 스릴과 옅어 지는 하얀 공간의 서스펜스 사이에서 없는 듯 있는 듯한 푸른 경계는 붉은 어둠을 더욱 짙어 지게 하는게 아닌가 싶다. 아티스트 성병희(Byunghee Sung)의 작품은 눈이 아닌 귀로 듣는 듯 매우 극적이다. 비장할 정도로 역동적이고 세심하다. 내 삶을 드라마틱하게 살고 싶어 지게 만드는 것을 보면 오히려 삶의 대해서 깊고 절실한 허기마저 느꼈다. 그녀가 느꼈던 심리적인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고 고통과 고뇌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다소 당황했으나 여전히 솔직한 표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의 솔직한 내면 세계에 대한 표현은 계속 도전해야 하는 과제인 듯 하지만 직설적이고 날 것의 이야기들은 하나도 거슬리거나 마음을 흐리지 않았다. 진솔한 자신만의 생각들을 전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와 휴먼으로서 앞으로의 작업의 행보가 계속해서 궁금해 질 것만 같다. 너무도 멋진 작가님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쁘다.   

성병희 작가 프로필 (사진출처 김춘호 작가)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11번째 개인전
50여차례 단체전

 

 Interview. 강희경 문화칼럼니스트

 

사람들 마음속에 전리(電離)처럼 찾아 들어 갈 한마디를 찾는 여정이다.

이야기하는 순간 순간에 가슴을 울리는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보석을 찾은 듯한 행복함 마저 든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생’ 이라는 연극을 하는 주인공이다.

강희경은 루씨드 문화예술협동조합 에서 희곡대본을 쓰는 작가이고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mail hkkang9001@y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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