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지장이 있어도 괜찮을까?... 청소년극 '지장이 있다'
[공연리뷰] 지장이 있어도 괜찮을까?... 청소년극 '지장이 있다'
  • 피터 ksdaily 칼럼리스트
  • 승인 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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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런 지장(일하는데 거치적거리거나 방해가 되는 장애)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나이와 성별에 무관하게 지장은 불쑥 불쑥 모두를 덮친다. 한 개가 해결되면, 또 다른 한 개가 새롭게 등장하여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렇다. 세상은 녹록하지 않다.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인생 속 지장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알려줄 나만의 길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장들의 공격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수많은 지장과 어떻게 맞서나가야하는 것일까.

어른들이 보기에는 세상 아무 걱정 없을 나이인 고마진과 백연이가 있다. 닮은 듯 닮지 않은 이 둘의 대화는 친구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연이는 마진이에게 어떤 아이를 아주 열심히 설명한다. 연이를 너무나 좋아하는 마진이는 연이의 이야기 속 그 아이가 정확히 누구인지도 모르고, 크게 관심이 있지도 않다. 다만 연이의 관심이 자신에게로 향하기를 바랄뿐이다. 걔는 이상하다며, 너 같은 애가 걔 옆에 있으면 나쁘게 물들거라고 알지도 못하는 아이를 욕하는 마진이. 연이가 열심히 설명한 그 아이는 바로 연이 자신이었음을 마진이가 알리 없다. 점점 자신을 멀리하는 연이를 보며 마음의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마진이에게, 멀리서 빙글빙글 돌고만 있던 지장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이유도 모른채 단짝을 잃어버릴 위기에 놓인 마진이는 이제 어떻게 이 지장을 없애고, 연이와의 우정을 되찾을 것인가.

청소년극 <지장이 있다>는 살아가면서 종종 내뱉는 문장, “이러면 지장이 생기는데..”라는 말 속 지장을 무대 한가운데 등장시킨다. 그것도 하필이면 세상에서 친구가 가장 중요한 그 즈음, 중2 마진이에게. 마진이는 멀어진 연이를 애타게 찾고 싶어하지만,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 갑자기 등장한 해일이와 대화를 하며 연이의 마음 속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 지장만 점점 더 달라붙을 뿐이다. 그때, 이야기의 시작 즈음 관객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며 한쪽 무대를 지키고 있던 달이 마진이를 지키러 우주의 질서를 깨는 모험을 감수한 채 체육 선생님으로 변신하여 등장한다.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지장의 존재로 힘겨워하는 마진이에게, 달이 찾아와 적극적인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마진이에게는 끝까지 조금 특이한 체육선생님일뿐이지만, 그가 초월적 존재라는 것을 관객은 알고 있다. 10대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른들이 도와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으며, 그들의 세계를 완벽히 이해하며 그 안에 들어가는 것 역시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 마진이만의 달 역시 모습까지 바꾸어 마진이 앞에 나타났지만, 마법을 부리고 또 부려도 지장을 떼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진이의 지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어른이자 달의 행동은 상당히 믿음직스럽다. 각종 다양한 지장으로 한창 힘들 그때의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온 마음과 최선을 다해 손을 내미는 것이 옳은 것이기에. 

그리고 어느 순간, 달의 도움이 아닌 마진이 스스로 외치는 주문으로 지장은 사라진다. 나도 모르게 “오!”라는 감탄을 내뱉었지만, 무대 위 마진이가 꺼낸 말은 상상할 수 없었던 문장들이었다. 

 

이렇게 없애면 어떡해요! 유언도 하고! 송사도 해야지!  

마진이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함께 했던 지장에게 깜짝 놀랄만한 인정을 베풀며, 어른들도 쉽게 갖지 못하는 배려와 용기로 지장과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도 마음 쓰여 눈물을 흘리며 속상해하는 마진이 앞에, 지장은 언제 사라졌냐는 듯 또 다시 나타난다. 그렇게 마진이는 지장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면서도 자신의 인생 속에서 함께 하기를 스스로 선택하며, 지장을 옆에 둔채 연이와 해일이에게 솔직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다가간다.

어떻게 무슨 수로 지장을 깡그리 없애며 살아갈 수 있을까.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는 더 커지고, 최선을 다해도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지장은 항상 존재하며, 알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또 튀어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장을 옆에 두기로 선택한 마진이가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모습, 자신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용기있게 고백하며 부모님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연이, 그리고 축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축구선수를 포기할 결심을 실행하는 해일이까지. 청소년극 <지장이 있다>가 펼쳐놓은 무대 위 셋을 보며 결심한다. 그래, 지장이 있어도 '어쩌면' 괜찮겠구나. 지장과 함께 있는 그 모든 순간들에,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갈 수 있겠구나를 배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삶 여기저기에 찰싹 붙어 있는 지장을 해결할 현실적 방법에 대해서 생각한다. 지장을 해결하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안내와 도움을 멈춘 채, 10대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과 맑음을 바탕으로 더 나은 자신을 구축해나가는 세 명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만을 해서는 안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유명한 아프리카 속담처럼, 어른들은 끊임없이 아이들의 옆에서 손을 내밀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들이 힘들 때마다 마법을 부려주는 달이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채, 멈춰있으면 안된다. 그들의 고민들을 가볍게 생각하고 등을 돌려서는 안되며, 그때는 모두 다 그런 시기를 보냈다며 함부로 쉽게 던져서도 안된다. 지장이 있어도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들의 꿈을 향한 솔직하고 다정한 욕심들을 놓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마진이, 연이, 해일이, 모두에게 각각 하나씩 있을 달, 그리고 지장.

괜찮아, 너는 잘 하고 있어-라는 위로조차 마음에 닿지 않는 어떤 순간에, 청소년극 <지장이 있다> 속 다섯 인물이 온 마음 다해 이 세상 모두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우리는 잘 지나가고 있는 거야.

 

 

 


 

 

청소년극 <지장이 있다>
2021.12.16 ~ 2021.12.22
미미지아트센터 눈빛극장

해일 役 이하영
마진 役 정인지
지장 役 박수진
연이 役 김수정
김달 役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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