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란에 주당 20만원 무너진 현대차, 오트론 있었다면?
'반도체' 대란에 주당 20만원 무너진 현대차, 오트론 있었다면?
  • 서종열 기자
  • 승인 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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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명예회장, 지난 2012년 차량용 반도체 개발 위해 '오트론' 설립
신기술 개발 및 양산 통해 꾸준히 성장했지만, 내부거래 비중 높아 논란
내년 적용 예정인 개정공정거래법 부담에 현대오토에버와 결국 합병
현대오트론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12년 차량용 반도체 자립을 위해 설립한 현대오트론은 지난 3월 현대오토에버에 합병됐다. ⓒ 현대차
현대오트론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12년 차량용 반도체 자립을 위해 설립한 현대오트론은 지난 3월 현대오토에버에 합병됐다. ⓒ 현대차

"신차를 계약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요?"

반도체 부족현상으로 현대자동차의 생산라인들이 멈춰서면서 정몽구 명예회장의 선견지명이 주목받고 있다. 정 명예회장이 과거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해 현대오트론을 설립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오트론은 현재 현대차그룹 계열사 목록에 없는 회사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3월 현대오트론을 해체해 현대모비스와 현대오토에버 등으로 흡수합병시켰기 때문이다. 

 

◆ 2005년 콘티넨탈로 합작사로 출발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본격젹으로 경영전면에 나섰던 지난 2005년 차량용 반도체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글로벌 자동차부품회사인 콘티넨탈과 2005년 10월 '카네스'란 합작사를 설립했다. 

이후 현대차는 2012년 4월 그룹 내 차량용 반도체 및 부품 연구인력을 통합해 현대오트론을 출범시켰다. 차량용 반도체를 비롯해 차량용 전문 부품들을 직접 개발하겠다는 정 명예회장의 의지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인력 스카웃을 놓고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대차가 본격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인력 스카웃에 나서자, 삼성전자를 비롯한 LG전자 등 반도체 주력회사들이 인력보호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대로 2015년 삼성전자가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자동차 전장사업에 나선 후에는 현대차그룹 내 연구인력들이 스카웃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우애곡절이 있었지만, 정 명예회장의 선견지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현대오트론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면서 양산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오트론은 2013년 소형차량용 통합엔진 제어기를 비롯해 하이브리드용 제어기를 양산했고, 2015년에는 1세대 파워트레인 전원 반도체도 개발했다. 또한 2017년에는 현대차가 자랑하는 GDI엔진에 사용되는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완료했으며, 차량 내 종합제어장비인 ECU용 칩을 양산하기도 했다. 

 

◆ 발목잡은 내부거래, 결국 분할 후 해체 

그 결과 현대오트론은 빠른 시간 내에 덩치키우기에 성공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오트론은 2013년 6443억원을 시작으로 2014년 5911억원, 2015년 5884억원, 2016년 6947억원, 2017년 6588억원, 2018년 7424억원, 2019년 8598억원, 2020년 5394억원의 매출액(포괄손익계산서 기준)을 기록했다. 그룹 내 물량을 전담하면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해온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 내 일감을 받는 현대오트론의 성장방식은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오트론의 내부거래 비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오트론은 매출액 대비 그룹 내 내부거래 물량이 무려 9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결국 지난 3월 현대오트론과 내부거래 비중이 높았던 현대엠엔소프트를 모두 현대오토에버에 합병했기 때문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오트론의 합병과 관련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지배구조 개선 가능성도 제기되기도 했다. 현대오트론과 현대엠엔소프트를 합병해 덩치를 불리게 된 현대오토에버의 개인 최대주주가 바로 정의선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오토에버 지분 7.33%를 보유 중이다. 합병 전 기준으로는 9%가 넘는 지분을 보유했지만, 지난 3월 합병 과정에서 신주가 발행되면서 정 부회장의 지분이 일부분 희석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나치게 높은 내부거래 비중에 내년부터 적용되는 개정공정거래법 부담 등이 결국 현대오트론의 합병의 단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몽구 명예회장이 꿈꿨던 반도체 자립 계획이 결국은 무산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 반도체 대란에 재조명 받는 MK의 선견지명

이렇게 사라진 현대오트론이 다시 재조명받는 이유는 현대오트론 합병 이후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반도체 대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부 차량용 반도체 재료 및 완제품의 수급율이 낮아지면서 자동차 제조에 사용되는 반도체가 품귀현상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국내 공장라인들을 순차적으로 멈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들로부터 주문이 들어와도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차량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반도체 개발업체인 엔비디아와 손을 잡고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섰다. ⓒ 현대차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7년 글로벌 반도체 개발업체인 엔비디아와 손을 잡고 인공지능(AI)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섰다. ⓒ 현대차

제조업계에서는 이에 현대오트론을 통해 반도체 자립을 꿈꿨던 정몽구 명예회장의 선견지명을 주목하고 있다. 현대오트론이 존속했다고 해서 반도체 품귀현상이 사라지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차량용 반도체 사업부문이라는 또 하나의 날개가 현대차그룹에 장착될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자립을 꿈꿨던 정몽구 명예회장의 혜안도 주목할만 하지만,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도 아버지가 추진했던 사업이었던 만큼 합병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특별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고, 개정된 공정거래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현대오트론의 합병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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