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징어게임', K-생존경쟁 세계관 연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K-생존경쟁 세계관 연다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1.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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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은 오징어 모양을 이루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도형이 그려진 그림 위에서 공격자와 수비자가 대치하는 놀이로 한국의 경제 성장이 궤도에 오르던 7·80년대 골목길을 주름잡았던 추억의 놀이다. 동시에 어린아이들이 즐겨하던 게임 중 "가장 몸을 많이 쓰는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놀이”였다. 만약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의 놀이가 어른이 된 우리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목숨을 빼앗아간다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그 답이 있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오징어 게임>은 장르를 넘나드는 스토리와 깊은 주제 의식을 담은 연출로 인정받아온 황동혁 감독의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만화를 탐독하던 30대에 극한 게임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그는 한국인이라면 어린 시절 경험해봤을 추억의 놀이와 어른이 되어 무한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포착해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다.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시절의 추억들이 가장 끔찍한 현실로 바뀌는 아이러니"를 담아낸 이 장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9년 대본을 완성했지만 파격적인 소재와 표현 방식, 영화로 풀어내기엔 방대했던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를 만나 풍성하고 깊이 있는 9개의 에피소드로 완성되었다. "도전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물질적, 정신적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밝힌 그는 길이와 형식, 내용에 제약을 두지 않고 본인이 그린 세계를 거침없이 풀어나갔다. 독창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의 게임과 참가자들이 빚어내는 숨 막히는 스릴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황동혁 감독이 그린 "<오징어 게임>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우회적으로 그린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다. 잘먹고 잘살기 위해 만들어진 자본주의가 극단적이고 경쟁적으로 변질되면서 인간의 본질과 인간성을 훼손시키고 공격하는 아이러니에 주목한 그는 어린 시절 추억을 활용해 더욱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냈다. 사회에서 벼랑 끝에 몰려 서바이벌에 참가한 이들은 거액의 우승상금을 향해 돌진한다. 함께 참가한 경쟁자들에 대한 배려를 찾기란 쉽지 않다. 타인은 물론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규합과 배신, 화합과 갈등이 난무하고, 모든 참가자들은 큰 변화를 겪는다.

"<오징어 게임> 안의 사람들은 지금 뉴스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게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황동혁 감독의 말처럼 현실에서도, 게임 안에서도 극심한 경쟁과 좌절을 겪는 참가자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투를 벌이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경쟁 사회 안에서 극한에 내몰린 참가자들이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잘살고 있는 것일까.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시청자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참가자들을 보며 자문하게 된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도둑들>의 뽀빠이, <암살>의 염석진, <신과함께> 시리즈의 염라대왕까지 선 굵은 연기로 4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대한민국 대표 배우 이정재가 벼랑 끝에 몰린 기훈으로 파격 변신한다. 실직, 이혼, 도박, 사채까지 전전하며 가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던 기훈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인물이다. “밝고 천진한 외형과 삶에 대한 무거운 고통을 지닌 내면을 동시에 표현하려 했다”는 이정재는 살기 위해선 타인을 해쳐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놓인 기훈의 혼란부터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까지 생생하게 그려내며 몰입감을 더한다. 황동혁 감독은 “기훈이 게임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잘 살려주었다"라며 갈등하고, 동요하고, 변화하는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한 이정재의 열연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육룡이 나르샤], [푸른 바다의 전설], [슬기로운 감빵생활], <사냥의 시간> 등 연극 무대에서 쌓은 내공으로 TV와 스크린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장시킨 박해수가 냉철함을 잃지 않는 상우로 분했다. 증권회사 투자팀장으로 승승장구하다 잘못된 선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은 상우는 456억 원이 걸린 게임에서 어린 시절 함께 자란 기훈과 마주하게 된다. 타고난 머리로 앞으로 이어질 게임을 예측하며 전략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상우의 냉정한 모습은 다른 참가자들의 죽음에 쉽게 동요하는 기훈과 대비를 이룬다. 황동혁 감독은 “박해수의 얼굴은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말로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를 완성한 박해수에 대한 기대를 상승시켰다. 

“다양한 컬러와 오브제에 캐릭터의 심리를 담으려 했다”는 채경선 미술감독은 캐릭터들의 손이 닿는 소품부터 색상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설계해 나갔다. 작품의 상징이자 오징어 게임을 형상화한 동그라미, 세모, 네모 도형을 작품의 로고와 관리자들의 계급을 상징하는 가면, 참가자들이 받은 명함, 게임에 쓰인 대도구와 참가자들의 대기 공간에 새겨진 픽토그램까지 곳곳에 숨겨놓았다. 높낮이가 다른 세트의 구조도 작품에 내포된 상징을 표현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456억 원이 든 돼지저금통은 신을 상징하는 가장 높은 곳에 배치해 참가자들이 언제나 우러러보고 열망할 수 있도록 했다.

고공 혹은 평지에서 진행되는 각종 게임장의 높이 구현은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차별받고 때론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는 현실을 투영해 "현실 세상과 게임의 세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과감한 색의 사용도 예사롭지 않다. “456명의 참가자가 운동회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처럼 보이길 원했다는 황동혁 감독은 참가자들의 의상을 초록색 체육복으로 통일했다. 반면 게임을 운영하며 탈락자를 처리하는 관리자들은 초록색과 보색 관계를 이루는 분홍색 의상을 입혀 두 집단의 상반된 위치를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담아냈다. 특

히 분홍색은 참가자들이 게임장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복도 등에서도 사용되며 이들에게 위태로움과 두려움을 주는 색으로 작용한다. 참가자들이 다음 게임을 기다리는 대기 장소는 하얀색으로 설정,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미지의 상태에서 오는 공포심을 극대화했다. 색상부터 작은 오브제까지 “미술팀이 숨겨 놓은 암호”들이 보는 이들에게 색다른 해석과 발견의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기보다 다양한 실험”을 하고자 했던 황동혁 감독의 도전은 음악으로도 이어졌다. <옥자>, <기생충> 등 영화음악을 비롯해 대중음악, 국악, 연극, 뮤지컬까지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며 한계 없는 스펙트럼을 선보여온 정재일 음악감독은 현재와 과거,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오징어 게임>의 선율을 그려낼 적임자였다.

그는 “추억과 클리셰, 키치적인 요소가 뒤섞인” 음악으로 <오징어 게임>의 독특한 감성을 끌어올렸다. 참가자들이 게임을 할 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리코더, 소고 등 학창 시절에 사용하는 추억의 악기로 구성했다. 황동혁 감독이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이래서 천재라고 하는구나”라고 감탄한 이 음악은 작품의 동화적인 공간과 기막히게 어우러지며 참가자들이 놓인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그려낸다.

[장학퀴즈]의 시그널 송으로 친숙한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과 경양식집에서 즐겨 듣던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플라이 투 더 문’까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친숙하고 아름다운 음악들이 거친 현실과의 충돌을 일으키며 아이러니와 긴장을 유발한다. 또한 정재일 음악감독은 매화 다이내믹하게 변화하는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으로 인해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완성했다. 아름다웠다가 슬펐다가 친숙했다 낯설게 변주되는 음악은 예측할 수 없게 흘러가는 이야기와 캐릭터의 변화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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