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터뷰] '무인도탈출기' 박란주, "네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하면 돼"
[더인터뷰] '무인도탈출기' 박란주, "네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하면 돼"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1.0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 시대, 웃음을 전하고 싶은 배우 박란주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 위기를 기회로 '위로' 전한다

<삼포가는 길>(1973년ㆍ황석영 著)<고래사냥>(1983년ㆍ최인호 著)에 이은 <무인도 탈출기>(윤상원 연출)가 2001년 살아가는 이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는 갓 서른을 넘긴 취업 준비생 봉수와 동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수아가 연극 공모전 상금 500만 원을 타기 위해 지하 단칸방에서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무대에 펼쳐내는 작품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청춘에게 "꿈을 꾸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를 한마디를 건네고 있는 작품이다. 

MZ세대인 창작진과 배우들이 뭉쳐 만든 뮤지컬인 만큼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이 한번쯤은 해본 고민인 행복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인도 탈출기>는 지난 5월 18일 개막해 순항하고 있다.

본지는 올해 두 번째 시즌에 처음 참여하게 된 뮤지컬 배우 박란주를 만났다. 그가 그리고 있는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는 어떤 작품일까. 작품 속에서 다 그려내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다음 인터뷰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으로 공연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는 어떻게 참여했나.

박란주  작년 12월, 6개월 전에 연출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그런데 사실은 지난 시즌에 참여했던 승현 배우님이 추천을 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작년에 길 가다가 만날 때마다 저한테 "네가 하면 좋을 것 같은 공연이 있다"면서 이 작품을 말했었거든요.(웃음) 아 그리고 재영 배우님도 볼 때마다 나중에 하게 되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고도 말했었죠. 그래서 이 공연을 찾아봤는데 이미 이 작품을 하고 있는 지애 배우랑 이휴 배우가 만들고 연기하고 있는 수아라는 인물이 너무 잘 어울려서 저랑은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이들이 그리고 있는 인물은 뭔가 통통 튀고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그러지는 못했거든요. 물론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연출님이나 다른 배우들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해야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와서 일단 대본을 보고 음악도 들어보라고 해서 받았거든요. 일단 보니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에 마음이 많이 갔던 것 같아요. 약간 슴슴한? 슴슴한 맛, 제가 슴슴한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이런 슴슴한 이야기를 잘 해내는 게 진짜 어렵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해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에겐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했던 작품입니다.

Q.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수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박란주  제가 처음 봤었던 대본에서는 수아라는 인물이 갈피가 안 잡혔어요. 그래서 이 역할을 내가 하게 되면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될까라는 고민을 엄청 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냥 쭉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작품 속에서 다른 두 역할은 비와 바람을 헤쳐나가는데, 수아에게는 그런 풍파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분명히 친구도 이 작품 속에서, 그리고 두 명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또 다른 이야기, 등장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그 부분들에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지점들에서 수아라는 인물이 성장해 나갈 수 있게끔 만들었죠.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인물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Q.  어떤 포인트들이 있었을까

박란주  일단 동현이와 처음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SF수아를 만드는 이야기까지 포함되거든요. 봉수가 무인도를 점점 찾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반짝반짝' 거리면서, 옛날의 자기의 꿈을 찾아가는 봉수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고 옆에서 그걸 바라보고 글로 적고 있는 동현의 모습이 있었어요. 막막했던 바다 혹은 사막에서 어떻게 보면 이런 지점들을 체크하면서 시야가 넓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이후의 지점들이라고 한다면, 수아의 로또 이야기, 무인도에 수아가 들어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죠. 사실 처음에 수아에겐 이곳이 그냥 봉수와 동현의 지하 방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들이 말하고 있는 '봉수 아일랜드'를 느끼기 시작하죠. 봉수와 같이 다니면서 달콤한 향기가 맡고,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봉수봉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지막에 하게 되는 순간까지의 지점들이 있어요. 그런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수아가 성장하게 되고 자기 안에 있던, 그동안 내가 인정하지 않았던, 말할 수 없었던, 말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는 순간까지.

그럼으로써 수아는 어른이 되요. 그동안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성장하지 못했던 친구가 이제 꿈 혹은 목표가 생기고 그렇기에 오히려 이제 먼저 봉수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성장하게 되죠. 많은 굴곡들이 생기면서 확실히 캐릭터도 변한 것 같아요.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수아라는 인물, 28살, 아르바이트생, 어떻게 보면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청년. 그에게는 꿈이나 포부는 없었을까

박란주  네. 사실 배우마다 가지고 가는 전사의 방향이 달라요. 일단 제가 생각하는 수아는,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꿈이라는 걸 이루지 못하면 좌절을 하잖아요. 분명히 그런 순간들을 맛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 대본상에 수아를 추측해나가면 아버지를 일찍 여의게 된 인물이거든요. 저는 수아에게 형제도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수아는 어릴 때부터 가장으로서 어떤 부담감을 짊어지고 살아왔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감히 꿈이라는 걸 꿀 여유도 없었고 꿈이라는 걸 생각해 봤을 때, 수아는 "그럼 생계는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을 거였죠. 그래서 친구들이 놀러 간다고 했을 때 나도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의 나는 갈 수 없었어요. 그런 좌절들을 어릴 때부터 맛보았고, 경험했고 좌절하다 보니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계속 가두게 됐죠. 그런 상황이 올때마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잖아"라면서 속이고 있지 않나 싶었어요.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고도 계속 일을 해가다 보니 어느 순간 꿈이 없다는 게 되게 당연한 거고,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죠. 슬프다는 느낌도 안 받아요. 그냥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게 익숙하고 수아에게는 그게 이제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Q.  그렇게 살았기 때문일까. 동현이라는 인물이 눈에 띈 게

박란주  어떻게 보면 그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바로 알아봤던 거죠. 왜냐하면 행색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뭔가 명확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아닌데 눈이 가요. 보통의 사람들은 수아가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에 와서 전화를 하면서 물건을 사 가고 누군가는 점심을 먹기도 하고, 정해진 시간에 담배를 사러 와서 담배를 피고 일을 하러 가고 다들 명확한 목적이 있는 사람들만 봐왔었거든요. 편의점에 오는 사람들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빠른 편의를 위해 들렀다가 가는 반면, 동현이는 뭔가 계속 하염없이 앉아도 있다가, 어느 순간 보면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또 일을 하다가 보면 막 꽃을 바라보고 있어요. 일을 하다가도 계속 눈이 갔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은 예측할 수 있는데 동현이는 전혀 예측이 안돼요. 그래서 더 시선이 집중되는 거죠. 수아는 분명 동현은 어떤 아티스트가 아닐까 문뜩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계속 뭘 적으니까. 이게 가사를 쓰는 건지, 시를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뭔가를 보고, 만져보고 글을 쓰고 있으니까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거죠.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동현에 신경이 쏠렸을 것 같아요. 계속 눈이 가고 기다려지는 거죠. 통성명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혼자 반가웠을 것 같았어요. 그를 바라보는 게 어떻게 보면 수아의 삶의 변화가 된 거죠. 더 큰 변화는 그래도 매일 오면서 커피라도 하나사 먹었던 동현이 아무것도 사 먹지 않았을 때부터였어요. 돈이 없나, 돈이 없구나 하는 게 바로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먼저 수아가 먼저 말을 걸게 됐죠. "물 한잔 드릴까요?"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죠. 그래서 마침 지금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이 있는데 이거 혹시 드실래요?라고 어떤 호의? 나만의 반가움? 등에서 베풂을 실천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말했는데 또 동현은 너무 반갑게 "어,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줘서 말동무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수아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궁금한 건 못 물어봤어요.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되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눴죠. 한두 마디 나누다 보니 나보다 오빠인 걸 알게 됐고, 어느 날은 퇴근해서 집에 가다가 만나게 됐죠. 그는 아래층에서 살고 있다 그러고 오히려 그래서 더 안심이 되는? 나 혼자 사는 게 되게 무서웠는데 어떻게 보면 내가 도움을 청할 곳이 생겼다는 느낌인 거죠. 우리 작품의 시작인 이제 이 이후에 시작해요.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편의점에 나오던 사람이 한동안 안 나타난 거죠. 그래서 수아는 혼자 걱정하고 "이 사람 혹시 죽은 거 아냐?", "굶어 죽을 수도 있나?" 하면서 생각하죠. 그러다가 집 앞에서 봉수를 만나는데 이 사람이 동현이랑 친구고 또 같이 산다고 하는 걸 듣고 "그래도 혼자 사는 건 아닌가 보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죠. 수아는 봉수에게 동현이 괜찮냐고 물어보려다가 말아요. 오해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냥 이걸 명분 삼아서 잘 지내고 있는지 한번 가서 볼까라고 생각하고 아래층 집으로 향하죠. 사실 봉수나 동현에게 어떤 이성에 대한 호기심보다 그냥 궁금증, 호기심, 걱정 등에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궁금했던 이야기를 다 들은 것 같다.

박란주  사실 관객분들도 어떻게 보면 궁금하셨을 것 같아요.(웃음) 대체 수아가 왜 갑자기 이들의 이야기에 끼어들게 됐을까가 작품 속에서는 다 드러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나 다른 두 배우가 수아라는 역할을 맡고 나서 제일 고민했고 걱정했던 부분이었어요. 수아가 동현이를 이성적으로 좋아해서 찾아가는 걸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사실 앞뒤 상황이 없이 무작정 들이닥치다 보니까 그게 어떤 호의나 호기심으로 했던 행동과는 거리가 먼,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최대한 그런 이성의 호기심을 떨쳐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그 이후에 수아가 동현과 대화를 하면서, 어떻게 보면 스토리텔링, 또 다른 의미에선 배우로서의 탤런트가 있다고도 보였다. 몰랐다고는 하지만 어떤 꿈을 꾸긴 했었던 걸까

박란주  꿈이라기보다는 어떤 동경이 있었을 것 같아요. 편의점에서 TV를 보면서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직업 자체에 매력을 자기도 모르게 느낀 게 아닐까 싶어요. 어떤 기술을 배운다기보다는 그냥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연기하는 게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랄까요. 그래서 동현이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저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고, 동경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을 했을 때 수아는 사실 어렸을 때 학교를 다닐 때 누구누구 일어나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읽어봐라 했을 때 참 자신 있게 또는 수월하게 읽어나갔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동현이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게 됐을 때 되게 이상하면서도 뭔가 뇌리에 팍하고 박힌 듯한 느낌을 받은 거죠. 

Q.  동현에게 받은 짧은 이야기를 공모전에 제출한 이유가 있을까

박란주  사실 일단 수아는 그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만약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동현이가 이제 글을 그만 쓸 것 같다는 어떤 예감이 들었던 거죠. 수아가 생각하기에 동현이는 너무나도 대단한 작가가 될 수 있고,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인데 그렇게 이 사람이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에 불안감 혹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는 뭔가를 할 수 없지만, 이런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포기하는 걸 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에게 어떤 자신감을 심어 주고 싶었고, 일단 되던 안되던 그걸 제출한다는 것에서 뭔가 삶의 변화가 생길 거라고 분명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이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리를 해서 제출을 했죠.
 
Q.  본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박란주  저라면 사실 제가 감히 그걸 제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의 창작물인데, 그렇게 봤을 때 사실 수아가 되게 무례한 행동을 하긴 했어요. 그런데 수아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아무런 필터가 거치지 않고, "이건 무조건 해야 돼!" 하면서 실행에 옮긴 거죠. 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냥 옆에서 "이런 게 있다네?"라면서 말만 하는 정도일 것 같아요. 제가 먼저 그런 말을 꺼내면 불쾌해 할 수도 있잖아요. "아주 그냥 날 개똥으로 보네"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그냥 옆에서 조심히 이야기를 꺼내거나 그 참가 서류 같은 걸 몰래 문틈으로 종이를 넣고 도망가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한 거 아닌 것처럼... (웃음)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수아에게 봉수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박란주  사실 되게 평범하게 그냥 이상한 사람이요.(웃음) 사실 남들한테 피해 주는 일은 하나도 안 하는데 그냥 이상해요. 그냥 편의점에 와서 초콜릿만 사 가거든요. 되게 좋아하나 보다. 피해 주지도 않고 그냥 매일 보는 어떻게 보면 되게 반가운 손님 중에 한 사람? 그리고 그가 같은 집 위층과 아래층에서 사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됐고 동현과 친구 사이란 것도 알게 됐죠. 둘 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그냥 반가운 사이 정도죠. 관심이 있다는 거요? 저는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봉수는 저한테 더 잘 보이려고 편의점 주변, 파라솔 테이블 같은데 쓰레기가 있으면 알아서 치워주고, 주변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으면 같이 와서 치워주거나 버려줬거든요.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쓰는 걸 봤기 때문에 호감이 있구나라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수아는 호감이라는 걸 못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해요. 그냥 바른 청년이다, 되게 올바른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느낀 적도 있어요.(웃음)

Q.  사실 그 뒤에 먼저 밥 먹자고 이야기하는 부분 때문에, 본지는 수아가 호감이 있구나라고 느꼈다

박란주  사실 그 장면이 저는 동현과 봉수가 같이 살고 있는 걸 알고, 우리가 이웃사촌이라는 걸 아니까 "우리(수아-동현-봉수) 같이 밥 한 번 먹을까요?"라는 느낌인 거였죠. 그런데 사실 그 장면은 봉수의 어떤 환상이 곁들여졌다고 생각해요. 주체가 봉수의 이야기였고, 봉수의 입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가 원하는 "우리(수아-봉수) 같이 밥 먹어요"로 생각한 거죠. 그렇게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게끔 연출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하긴 하는데, 저는 호감보다 호의에 가까운 겁니다.

Q.  실제로 복권에 당첨되어 본 적은? 

박란주  있어요. 있는데 저는 운이 되게 없어요. 제일 최대 상금이 5천 원이에요. 요새는 그것도 잘 안되더라고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 때는 그래도 가끔 5천 원은 됐었는데, 그때는 5천 원의 귀함을 몰랐었죠. 이거 무조건 본전인데 왜 안 사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되고 싶어서 그런가 5천 원도 안되는 걸 확인할 때마다 여러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봉수 아일랜드에서 수아는 나가는 걸 왜 고민했을까

박란주  사실 수아는 고민을 많이 안 해요. 그냥 수아는 봉수 아일랜드에서 봉수를 만나고 새로운 걸 배우는 단계고 성장하는 단계지 그곳에서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거든요. 이들과의 대화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묶고 있던 밧줄을 하나둘 풀어나가서, 매일 밤 조금 더 편하게 잠들 수 있겠다 정도의 마음이었거든요. 사실 봉수가 가지고 있는 마음, 그의 세상과는 다르게 수아에겐 그저 좋은 여행지, 그리고 그 여행 이후에 내 집, 내 방, 내 침대에서 개운하고 편안한 잠을 취하는 게 더 기쁘거든요. 그래서 봉수 아일랜드가 좋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 이상을 취하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 과정을 통해서 수아는 어떻게 보면 그제서야 자신의 알을 깨지 않았을까, 우물 속에서 벽을 타고 올라가 우물 밖을 살펴보고 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수아에게 고민은 그런 거였을 것 같아요. 우물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처럼 또 다른 알, 다른 우물에 들어가려고 하는 봉수의 모습에 고민. 그가 바라고 있는 편안함, 그가 바라는 안락함은 사회에서 멀어지고 숨으면서 얻는 거거든요. 

Q.  그 갈등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겪게 되는 고민이 아닐까 싶었다. 모든 이들이 언젠가 다들 선택에 기로에 놓이게 된다.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날 것인가

박란주  맞아요. 저도 그렇고 다들 그런 고민 한 번씩 했을 것 같아요. 

Q.  동현 역에 세 명의 배우가 있는데

박란주  제가 고민을 해봤는데 일단 박영수 배우님은 되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아요. 정말 호기심도 많고 자유롭고 어디로 튈지 예상이 가지 않는 그런 동현이거든요. 그냥 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 캐릭터에 그냥 다 녹아들어 가 있어요. 그리고 안재영 배우님은 되게 슬라임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네, 그냥 사람 자체가 슬라임 같은 형태가 있는데 몸도 되게 잘 쓰시고, 또 그 슬라임이라는 게 되게 힐링이 되잖아요. 제가 오빠를 막 주물럭주물럭하면서 힐링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슬라임이라는 게 그런 어떤 질감 같은 거에서 만지고 있다 보면 힐링이 되잖아요. 그냥 그래요. 공연을 하고 있다 보면 오빠가 막 슬라임 텐션으로 흐느적 흐느적거리면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오는 어떤 편안함과 안정감, 재미가 막 느껴지거든요. 아무래도 초연부터 해왔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박건 배우님은 사실 되게 오래전부터 연극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보니 되게 안정감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해먹 같은 동현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되게 좋은 해먹있잖아요. 사실 해먹이라는게 중심을 잘 못 잡으면 그냥 확 엎어지는데, 중심이 맞으면 거기서 오는 묘한 안정감이 있어요. 오빠랑 같이 공연을 하고 있다 보면 되게 순간순간 딱딱 맞추는 긴장감이 있다가도 어느 순간은 되게 평온하게 이어가게 되거든요. 여러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동현이지 않나 싶어요. 

Q.  이어서 봉수도 이야기해보자면

박란주  봉수는 나이로 표현해볼게요. 일단 박정원 배우님은 되게 동생 같아요. 되게 동생같은 봉수라서 되게 내가 오히려 챙겨줘야 되고,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될 것 같은 봉수죠. 그리고 강찬 배우님은 진짜 친구 같아요. 동갑이기도 하고 약간 야물딱진 부분들이 있거든요. 다른 두 배우님이랑은 조금 다르게 자기 스스로 잘 챙겨가는 부분들이 있고 되게 야물딱지고 똑 부러진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조금 더 텐션이 편안하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김동준 배우님은 뭔가 물리적으로 커서 그런지 다 큰 어른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오히려 제일 오빠 같은 분위기가 나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그 누구보다 저를 누나로 생각하겠지만요. 사실 동준이랑은 공연을 많이 못 해보기도 했고, 그래서 만나게 되면 서로 조금 더 긴장하고 무대에 올라가서 좀 더 예의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서로 더 잘하려고 하다 보니까 베이직한 모습, 합에 맞춰진 모습에 더 가까운 연기를 하고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지고 조금 더 오빠같이 느낀 게 아닐까 싶어요.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란주  얼마 전에 레전드가 있었죠. 강찬 배우가 수아에게 어떤 고백을 하려고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거든요. 그 장면에서 갑자기 성대모사를 하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오는 나문희 선생님, 이순재 선생님, 박해미 선생님 역할을 1인 3역으로 막 혼자 그 장면을 다 재연했어요. 그냥 저희도 뒤집어지고 객석도 뒤집어졌죠. 그러고선 다음씬 넘어갈 때 재영 오빠가 또 "문희는 배고파요"라면서 또 한 번 난리가 났었던.... 그래서 그날 공연 끝날 때까지 성대모사한 걸로 서로 계속 놀리면서 공연을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수아는 텍스트에 엄청 충실한 인물이라서 거의 정해진 이야기 틀대로 가야 해요. 그런데 동현이랑 봉수는 정해진 텍스트에서 벗어나도 그게 오히려 이들의 친분, 친구 사이라는 걸 드러내니까 어떻게 보면 본래의 이야기에서 잠깐 벗어나있다가 들어와도 큰 문제는 없었죠. 

Q.  사실 남자들 간의 이야기라는 게, 두서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박란주  그래서 공연을 보시는 관객분들이 되게 공감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공연을 하면서 어떤 글을 봤거든요. 거기서 남자친구들끼리 카페를 갔는데 한 명은 아메리카노, 다른 한 명은 카페라테를 시킨 거예요. 그런데 아메리카노가 두 잔이 나왔어요. 이때 어떡하실 거예요? 그런데 그 글에서 남자 친구들은 "바꿔달라 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먹어, 자식아"라고 말한다고 하더라고요. 

Q.  그것조차 많이 순화가 된 것 같다... 이어서 최근 울림이 있다 하는 대사나 넘버가 있다면?

박란주  정확한 워딩이 기억은 안 나는데 마지막에 동현이 수아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수아가 동현이한테 오빠가 이야기의 결말을 정해달라고 말하는데, "그때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거고 이게 우리의 결말이야. 넌 네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하면 돼"라고 답하거든요. 이 말이 계속 와닿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이렇게 끝날 수 있다는 거,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법이 있느냐는 말인 것 같아서요. 이 대사가 어떻게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빗대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는 성공한 삶을 살고, 누군 실패한 삶을 사는가에 대해서. 사실 그런 건 없는 거잖아요. 돈이 있으면 좋겠지만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반면, 누군가는 주변의 선망을 얻고 있더라도 실패한 삶,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처럼요. 이 작품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 스스로서 그리고 배우 박란주로서요. 자기 인생을 빗대어 바라봤을 때 어떤 정의를 내리고, 정답 혹은 오답이라고 체크를 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을 기점으로 수아에 입장에서도 뭔가 머리를 혹은 가슴에 있는 종이 크게 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았어요. 뭔가 '땡~'하고 크게 울림이 있었던 거죠. 수아는 사실 거기까지 더 깊게, 혹은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서의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었고, 하지 못했던 친구였거든요. 이제야 알을 깨고 나와서 날갯짓도 못하고 한 발을 내딛고 걸음을 떼기 시작한 아이였기 때문에 동현의 말은 수아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고, 그래서 수아는 선택을 할 수 있었죠. 그 말을 하기 전까지, 두려움이 있었다면 이제는 정말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였어요.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딛고 그제서야 자신이 했던 고민이 부질없다, 혹은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아요. 그런 깨달음이 어떻게 보면 저에게도 있어서 수아는 봉수를 안쓰러워하고 동정하기보다는 그를 위해 마음속으로, 겉으로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있죠. 

Q.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박란주  어떻게 보면 수아는 깨달았을 거예요. 그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가 너무 오만했다는 것을요. 봉수가 남겠다고 이야기를 한걸 미련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면, 동현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봉수의 선택은 그가 살아가는, 그가 행복을 찾는 하나의 방법이구나라는 걸 깨닫죠. 그래서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 미묘한 차이가요. 

Q.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올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란주  제가 글을 쓰는 블로그가 있거든요. 거기에 작품을 할 때마다 쓰는 말이 있어요.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자면 우리 작품,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를 보러 오셔서 작품 속 청춘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어렸을 적, 혹은 지금도 겪고 있는 그 신간들을 함께 떠올리고, 꺼내보시고, 웃고 울면서 그 안에서 또 다른 위로를 받아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나에게 잘 살고 있다는 위로의 한마디, 지금의 나를 위로해 주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우리의 이야기, 드라마틱 한 인물들이 나오지 않거든요. 많은 관객분들이 이 위로를 전달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