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 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56화 - 전문가 솜씨
[과학추리 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56화 - 전문가 솜씨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1.0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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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 칩이나 자동차에서는 수상한 DNA나 지문 같은 것을 발견하지 못 했나?”

나는 다시 기본적인 수사 자료부터 물어보았다.

“자동차 안에서 머리카락 몇 올과 지문, DNA 흔적 몇 개를 발견하기는 했어. 지문은 이정근 이사 자신 것과 아내, 아이들, 그리고 현유빈의 것으로 밝혀졌어. 하지만 DNA는 국과수에서 아직 통지가 오지 않았어.”

“BLE에서는?”

“거긴 지문도 DNA도 없어. 깨끗해.”

“음- 역시 전문가의 깔끔한 솜씨야.”

나는 일이 점점 어렵게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방범죄.

이정근을 제거해야 하는데 사건을 미궁으로 빠트리기 위해서는

한수지 사건의 흉내를 내서 동일범인인 것처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추리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트릭이다.

혹시 변 사장과의 사이에 서로 제거해야

할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사이 자꾸 현유빈이 변 사장과

이정근 사이의 여인이란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수사 자문회의장에서 많은 숙제를 가지고 나와

지하철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이정근 이사는 변 사장이 창업 때부터 같이 일한 사람이니까 회사의 모든 역사와 비밀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회계를 담당했으니 회사의 내막을 사장 못지않게 알고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가해자가 한수지나 장주석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방범죄.

이정근을 제거해야 하는데 사건을 미궁으로 빠트리기 위해서는 한수지 사건의 흉내를 내서 동일범인인 것처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추리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트릭이다.

혹시 변 사장과의 사이에 서로 제거해야 할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사이 자꾸 현유빈이 변 사장과 이정근 사이의 여인이란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수사 자문회의장에서 많은 숙제를 가지고 나와 지하철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단축 번호 1번이었다.

“영지야. 나야, 소설가...”

나는 반가워서 얼른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지금 어디 계세요?”

언제나 명랑하고 반가운 한영지의 목소리였다.

“강남에 있는데.”

“그럼 집에 좀 오실 수 있어요? 지금 4시인데 6시 이전에 오시면 좋은데...”

뜻밖의 요청이었다.

왜 집으로 오라는 것일까?

엄마가 없어서 집이 비어 있을까?

“알았어. 시간 지켜 갈게.”

전화를 끊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지를 며칠 동안 보지 못했다.

오늘은 집안에서 느긋하고 아기자기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약간 긴장해서 손에 땀이 촉촉이 배어 나왔다.

아내인 엄정현을 여친으로 사귀던 때, 결혼 전에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서 밤을 새우던 때도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그날 밤 여자라는 것을 처음 알면서 무척 가슴이 뛰기는 했다.

그러나 한영지의 집에 들어서서는 몹시 실망했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문을 열어준 사람은 한영지가 아니고 어머니 강혜림 여사였다.

“안녕 하세요.”

강혜림은 내가 낙담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영지야, 소설가 선생님 오셨다. 나와서 인사하고 들어가렴.”

인사하고 들어가라고?

그럼 지금 나를 부른 사람은 한영지가 아니고 강혜림이라는 말인가?

“선생님 어서 오세요.”

어디선가 한영지가 불쑥 나타났다.

아마 부엌에 있었던 것 같았다.

보라색 원피스에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화장도 하지 않은 민낯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더 순수하고 멋있어 보였다.

“엄마가 수제비를 잘 만들거든요. 그래서 선생님 한가하시면 초청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어머니가 좋아 하셨어요. 선생님 수제비 좋아 하시잖아요.”

아, 그렇게 된 거 구나.

그렇다면 나를 초청한 것은 한영지가 맞는다는 말 아닌가.

나는 기분이 확 풀어졌다.

“저 수제비 좋아 하는 줄 어떻게 아셨어요? 기대하겠습니다.”

나는 강혜림을 보고 웃으며 다시 인사를 하고 소파에 앉았다.

“회사에 또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면서요? 이정근 그 사람 참 고생 많이 한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우리 그이가 하는 회사에 견습 사원으로 들어왔다가 변 과장, 아니 변 사장과 단짝이 되었지요. 변 사장이 회사를 일으킬 수 있었던 데는 이정근씨의 힘이 컸습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최근 이상한 소문이 좀 돌더군요.”

“예? 이상한 소문요?”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강혜림 여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소문이라니요?”

식탁에 앉아 수제비를 먹으며 내가 강혜림에게 물었다.

“이정근 이사 말이에요. 현 과장하고 연애했다면서요?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해서 안 됐지만 그거 사실이에요?”

강혜림은 서슴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참. 그 아저씨 얼마나 착한데. 아줌마 없으면 살 수도 없는 착실한 남편이야.”

한영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한영지는 어릴 적부터 이정근을 봐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보는 눈이 있어서 하는 얘기였다.

“아니야. 이 이사가 죽기 며칠 전에 이 이사 부인이 나한테 와서 눈물을 흘리며 한 이야기가 있어.”

“아줌마가 왔었어요?”

한영지가 뜻밖이라는 듯이 물었다.

이정근 이사의 부인은 강혜림이 옛 사장님의 부인이라고 어려워했다.

“응,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하기를 이 이사와 대판 싸웠대.”

“어머. 부부싸움 안하기로 이름 난 집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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