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현 문화비평] 1950년대 명동의 주인들에게 2020년대의 길을 묻다, 뮤지컬 '명동로망스'
[윤진현 문화비평] 1950년대 명동의 주인들에게 2020년대의 길을 묻다, 뮤지컬 '명동로망스'
  • 윤진현 연극평론가 칼럼리스트
  • 승인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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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인엔터테인먼트
사진 ⓒ 장인엔터테인먼트

‘Romance’를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프랑스식으로 ‘로망스’라고 읽으면 본래의 달콤함에 장미향이 더해지는 듯하다. 당연하다. 영어권의 ‘로맨스’를 번역하면 대체로 장편소설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도달할 수 없는 진리와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근대 장편소설과 달리 프랑스의 ‘로망스’는 천년을 이어온 사랑과 꿈에 관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로망스’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사람 사는 곳이면 당연히 ‘로망스’가 있기에 ‘로망스’에 지명을 붙여 특정지역의 서사를 만드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렇지만 ‘로망스’란 단어가 최적이라면 어디일까?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도 ‘명동’은 앞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것도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동방살롱, 갈채다방, 서라벌다방, 돌체다방. 세느다방 …. 문인, 화가, 음악가, 배우, 감독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수많은 예술가를 낳고 키운 곳, 명동이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왜 명동이었을까? 종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시전거리였고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인의 정통성을 회복하려 했다면 다시 이 거리 어디쯤에서 낭만이 꽃 피고 문화예술이 융성했을 법도 한데, 왜 명동이었을까?

흔히 ‘침략’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때는 원래 살던 사람들을 모두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근대 제국주의의 침략은 상황이 다르다. 자본주의는 보통은 봉건제 사회였던 정복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와 완전히 다른 체제였고 따라서 기존 중심지를 점령하기보다는 새로운 체재에 걸맞은 다른 중심을 만드는 방식으로 식민지의 도시를 재편하였다. 

일제는 왕궁과 전통적인 상업지구였던 종로가 아니라 진고개 너머 충무로와 명동 일대에 새로운 도심을 건설하였다. 본정(本町), 혼마치는 일본식 도시경관에서 가장 번화하고 중심이 되는 거리를 의미하니 당시에는 충무로에서 명동에 걸친 일대였다. 진고개는 예전 중국대사관에서 세종호텔 뒷길에 이르는 고개였다. 비만 오면 질어서 진창이 되므로 진고개라고 불렸다. 일제는 합병 이전부터 이곳에 하수공사를 대대적으로 하고 자신들의 본정으로 삼았다. 일제강점기 내내 이곳은 선진문물이 모이는 집산지였다. 새로운 것을 배워야만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던 조선인들에게는 도외시할 수는 없으나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해방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모두 물러갔다지만 그렇다고 도시가 빈 곳이 되지는 않는다. 일제의 빈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당연하지만 대체로 친일파였다. 그런데 전쟁이 나고 상황은 또 바뀌었다. 

1950년대, 명동은 드디어 진짜 주인을 갖게 되었다. 시대를 숨쉬었던 뜨거운 청년들과 수많은 예술가들은 명동을 살아있는 전설로 만들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이 명동을 전유해가는 과정은 때로는 치기어린 편협함이기도 했고 때로는 맹목적인 서구취향에 불과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과장되고 허세스러운 포즈에 그치기도 했지만 그 모든 혈기와 광기의 나날은 그 땅에 스민 일제의 장소성을 일소하고 명실상부 명동의 새 주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대작(大作)이나 걸작(傑作)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첫 걸음은 신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현재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상연되고 있는 장인엔터테인먼트의 <명동로망스>는 그 시절의 ‘명동’의 에너지에 주목한 작품이다. 최근 창작극에서 적이 안도하게 되는 것은 어떤 작품이나 최소한 그 시작에는 나름의 특별한 장점이 있다는 점이다. 그냥 ‘1950년대’라고 하면 해방은 되었으나 바로 서지 못한 자유당정권 시기, 새로운 나라를 위해 건국의 초석을 닦기는커녕 종신집권을 획책하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시대, 일제 때만큼이나 암울한 시대이다. 그러나 ‘1950년대의 명동’이라고 하면 다르다. 꿈과 낭만과 새로운 흐름과 사람이 커가던 곳이었다. 암중모색, 꿈을 찾기 위해서라면 응당 떠올려봄직하지 않은가.

갓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청년 선호는 명동주민센터에 근무한다. 선호는 개발을 위해 주민설득작업에 투입되어 철거해야 할 오래된 로망스 다방을 방문한다. 여기에서 선호는 타임슬립(Time slip), 1956년의 로망스 다방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박인환, 이중섭, 전혜린과 젊은 로망스 다방의 마담을 만난다. 이 예술가들은 곤궁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스러워 하지만 예술을 저버리지 못한다. 이들의 예술은 지금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극적으로 ‘갈등’ 또는 ‘충돌’이란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이다. 이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변화를 겪었던가? 1956년으로 간 선호는 정권 앞잡이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종신집권은 실패할 것이며 그들은 몰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설파하지만 그렇다고 선호가 당대인의 구원자인 것은 아니다. 명동 예술가들의 삶은 그들의 힘으로 달려가는 것이었고 오히려 아무 의욕 없이 무기력하던 선호가 이들을 만나고 삶의 기쁨과 열정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이 2020년대로 돌아온 선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굳이 짚어보자면 2020년대 현실에 지쳐있던 선호가 1950년대의 예술가들로부터 열정과 낭만을 느끼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약간의 위로를 느끼는 것이 전부라고 할까? 위로는 언제나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시작이란 두 번째 걸음이 있어야 비로소 시작인 줄 알게 되는 법이다. 위로가 틀렸다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로되 다만 위로에 뜻을 두고 이에 그치는 것은 갈 길도 멀고, 갈 힘도 있고, 가야 할 목표도 있는 이들에게는 오로지 안이할 뿐이다. 

사실 이러한 안이함은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드러난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전혜린은 1955년에 독일로 유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 전혜린을 명동의 청년, 예술가의 일원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굳이 1956년이란 시점을 특정할 바에야 좀더 그럴 듯하게 개연성을 갖추는 성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교유(交遊) 내용이 추상적인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확실한 사건이 없이 언술로 성격을 표현하는 데서 더욱 증폭된다. 

물론 가장 심각한 것은 주인공 ‘선호’라는 캐릭터이다. 요령부득, 솔직히 공감되지 않는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도전한다. 급수고하, 급여고하를 막론하고 시험에 합격하여 어엿한 공무원이 된 선호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무기력한 것일까? 민간인으로서 일선에서 만나는 수많은 공무원들이 판에 박힌 뻔한 친절로 응대할 때는 좀 밉살스럽기도 하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은 자긍심도 높고 성실하고 열정적이다. 더구나 ‘합격’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한동안은 기운찬 에너지원이 되어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선호는 자기 집 속에만 웅크리고 있는 달팽이 꼴이다. 끝내 이유를 알 수 없다. 

또 하나 극적 장치다. 1950년대를 만난다면 수없이 많은 방법이 있을 터, 하필 타임슬립이다. 목표를 갖고 선택된 시간으로 이동하는 타임머신과는 달리 ‘타임슬립’은 불가지의 영역이다. 주인공은 왜 시간이동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제어능력도 없다. 이 가운데 발생한 사건에 주인공이 주도적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선호가 1950년대를 다녀와도 우리의 현실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선호의 역사는 바뀔까? 선호는 ‘로망스 다방’의 철거를 막을 수 있을까? 로망스 다방의 철거를 막는 것이 1950년대를 지키는 것일까? 1950년대 명동을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차라리 ‘명동로망스’가 ‘로망스’의 본령대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뜨거운 사랑이야기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변죽만 울리다 마는 흉내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는 생의 환희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역시 시작의 한 걸음은 떼었으니 두 번째 걸음을 기다려야 할까? 1950년대 명동의 주인들에게 2020년대의 우리는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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