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칼럼] 韓美 정상회담 실리 내주고 명분
[이원두 칼럼] 韓美 정상회담 실리 내주고 명분
  • 이원두 언론인·칼럼리스트
  • 승인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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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4박 5일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에 앞서 한미 백신 협력 행사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코로나19 백신 모더나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정상회담에서 정부가 기대한 이른바 BBC(백신, 배터리, 반도체칩)협력 가운데 가장 실질적인 결실이자 선물이다. 삼성, 현대차, LG, SK등 4대 그룹의 44조 원(3백 94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대미투자에 대한 일종의 답례라고 볼 수 있다. 군사 면에서는 미사일 사정거리 제한을 완전히 푼 것도 한국으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다.

디지털화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두 나라가 우주탐사, 6G, 그린에너지 분야에서 글로벌경쟁력 확보에 협력한다는 포괄적 합의도 성과의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안전조치가 확보된 원자력기술 사용’에 긴밀히 협력한다는 대목이다. 이는 사실상 원전 수출에 양국이 협력한다는 뜻이며 그 전제조건으로 ‘안전이 확보된 기술’을 내어 걸었다. 이 표현을 그대로 해석한다면 현재 가동중단이나 영구 폐기의 운명을 걷고 있는 국내 원전은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기술’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과연 그럴까? 또 하나 짚어 볼 대목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의 대규모 대미투자를 한 배경과 이에 대한 미국 정부(주 정부 포함)의 인센티브이다. 이번 투자로 미국은 적어도 수천 개의 일자리를 확보하게 된다. 같은 업종, 같은 기업의 국내 투자가 각종 규제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비를 낭비하고 있는지 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명분을, 미국은 실리를 챙기면서 한국에 무거운 과제를 떠안겼다고 볼 수 있다.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보면 한국은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대화가 필수적임’을 재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공을 들여온 남북문제 해결의 기본 노선과 한국의 전작권 전환에 바이든 정부의 원칙적인 동의를 얻어낸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원칙에 동의한 미국은 북한 인권문제를 비롯하여 대만 문제, 남 중국해 문제 등 지금까지 정부가 회피해온 민감한 문제에 대한 ‘직설적, 또는 완곡한 표현’을 공동성명에 담았다. 이는 바이든이 한국군 55만 명에 대한 백신 지원이 한미군사 합동훈련 재개를, 미사일 지침 완전해제는 역내의 대중국 대책의 일익을 담당하라는 메시지로 읽어야 하는, 현실적인 과제이자 짐이다.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확보한 명분과 실리보다는

짊어지게 된 과제와 짐의 무게가 더 무거움을 알 수 있다.

 이 과제와 짐은 아무래도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다음 정부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적어도 원전문제를 비롯하여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 귀국을 계기로 정부가 정상회담 성과를 일방적으로 홍보하기에 앞서

미국 외교 군사의 중심축이 아시아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과

한국 역시 여기 맞춰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을

기초작업에 착수해야 할 책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중심축이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뉴시스/AP

현재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중심축은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아시아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초강대국화를 결코 용납할 수없다는 결의가 담겨 있다. 한일간의 알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역내에서의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하면서 한국 미사일의 사거리 규제를 해제한 이유다. 그 의미를 읽을 줄 알아야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북, 대중국, 대일 외교에도 새로운 논리와 자세를 정립해야 함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드처럼 현상 유지에 급급할 경우 한국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질 수밖에 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원전에 대한 외고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한미간의 원전 협력 수출이 정상회담에서 띄워본 외교적 레토릭이 아니라면 적어도 국내 원전의 정상적인 가동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거의 1백 기에 가까운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미국은 최근 그 수명을 80년까지로 연장했다. 월성(고리) 1호기를 무리하게 폐쇄한 것과는 원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대비되는 대목이다. 인식의 차이를 그냥 두고 협력한다는 것은 결국 레토릭으로 끝날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확보한 명분과 실리보다는 짊어지게 된 과제와 짐의 무게가 더 무거움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제와 짐은 아무래도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다음 정부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원전문제를 비롯하여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 귀국을 계기로 정부가 정상회담 성과를 일방적으로 홍보하기에 앞서 미국 외교 군사의 중심축이 아시아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과 한국 역시 여기 맞춰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을 기초작업에 착수해야 할 책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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