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터뷰] '더픽션' 주민진, "내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내려온다면..."
[더인터뷰] '더픽션' 주민진, "내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내려온다면..."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1.0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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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면 재밌고, 두 번 봐도 만족할 공연 만들고파"

창작 뮤지컬 <더 픽션>이 마지막을 향해 스퍼트를 시작했다.

뮤지컬 <더 픽션>은 윤상원 연출, 성재현 작가의 작품으로 2016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작지원 프로젝트 ‘데뷔를 대비하라’로 작품 개발을 시작한 작품이다 이후 DIMF(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KT&G 상상마당 ‘상상 스테이지 챌린지’ 등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다.

작품은 1932년 뉴욕을 배경으로 연재소설 작가 그레이 헌트와 그를 찾은 신문사 기자 와이트 히스만 그리고 의문의 사건을 쫓는 형사 휴 대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거짓과 진실 그리고 선과 악, 픽션과 논픽션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지는 초연과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까지 합류한 배우 주민진을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은 현실이까 가상일까. 상상 속 허구의 야기와 실제 이야기, 그 간극을 들여다보았다. 

중독성 있는 음악과 치열한 대사들 속에서 숨 가쁘게 몰아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싶다면, 오는 30일까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에서 진행하는 뮤지컬 <더 픽션>을 보길 바란다.

다음은 그와 진행한 일문일답이다. 어둠 속을 헤매는 당신에게 한 줄기 빛이 비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를 바라며.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어떻게 지냈나

주민진  사실 계획이 되게 많았어요. 많았고, 2021년 버킷리스트를 써두고 준비를 하나씩 해왔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해 다쳐서 입원도 하고 공연에 문제가 생겨서 한 달 정도 구멍이 생겼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다친 건 아쉽지만 덕분에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기도 해요. 물론 관객분들에게는 너무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요. 이건 추후에라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제가 너무 무리하게 계획을 세워둔 게 아닌가, 많이 쌓아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던 올해 상반기였던 것 같습니다. 다시 공연에 들어와서 남은 기간 또 열심히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Q.  지금은 괜찮은 걸까

주민진  예, 몸은 많이 좋아졌어요. 공연이나 생활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Q.  열심히 공연을 했던 게 아닐까

주민진  열심히 했었고, 그만큼 부주의를 한 게 아닐까 싶어요. 관객 여러분들도 항상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Q.  버킷리스트, 어떻게 진척률은?

주민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운동량이나 피부관리, 읽고 싶은 책의 양, 올해 저축하고 싶은 돈 같은 걸 정해놨는데, 돈 빼고는 어느 정도 잘 이뤄나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웃음) 나머지는 제가 잘 하면 할 수 있는 것들인데 돈은 아니더라고요. 돈 빼고는 무리 없이 가고 있습니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이 작품, 벌써 세 번째 시즌. 저번 인터뷰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여러 시즌을 거치는 작품일수록 기대감과 부담감이 나란히 작용한다고 했는데 어떤가

주민진  <더 픽션>같은 경우에는 좋은 의미로 낯설어요. 그래서 정말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고, <베니싱>이라는 작품을 할 때에는 여기서 이렇게 하면 되겠다, 저기선 저렇게 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들어온다면 <더 픽션>은 정말 아예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왜냐하면 베니싱 '케이'같은 경우에 표면상 어린 나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더 픽션 같은 경우에는 제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작품 속 인물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더 이해를 하게 되는 부분들도 생겼어요. 이게 굉장히 장기적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두려움도 있어요. 내가 요샛말로 꼰대라는 틀에 갇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거든요. 내가 가진 틀에 갇혀버리는 상황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 반복되는 작품 속에 내가 내 스스로 틀을 가져버리면 여기에 안주하거나 갇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이게 계속 저한테 오는 가장 큰 숙제이지 않나 싶어요. 어떻게든 새로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새로운 공간에 가서 대본을 읽는 등의 변화를 주지 않으면 뇌가 조금 깨어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과 느낌이 들어서 억지로라도 시간이 나면 이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저 스스로에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본을 처음 받거나 다시 받았을 때 되도록이면 원래 있었던 친숙했던 공간이 아니라 다른 곳을 찾아가서 읽어보려고 노력해요. 예전이면 어디 멀리 나가서 여행을 하면서 읽었을 텐데 요즘엔 그럴 수는 없으니까, 그냥 공간을 바꾸고 낯선 곳에 가서 대본을 읽고 있습니다.

Q.  대본은 계속 봐야 되는 것 같다

주민진  배우들마다 차이가 조금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글자가, 예를 들어 작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을 때 그 책이 시집이면 더 좋고, 다시 읽었을 때 정말 다르게 다가오거든요. 대본도 저번 주에 읽었을 때랑 이번 주에 읽었을 때랑 제가 생각이 바뀌어있으면 또 다른 것들이 보이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싶어요. 놓쳐버리고 싶지 않달까요. 앞서 말을 했던 것처럼 적응이 되면 그 글자 그대로를 외우듯이 넘어가버리거든요. 배우가 그런 것에 쉽게 넘어가거나 갇혀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새 화두를 대본 원래 설정과 연출의 의도에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보자는 것 그리고 공연을 처음 보셔도 만족할 수 있고, 두 번을 보셔도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 그렇게 다가갔을 때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내가 관객들에게 이런 내용 그리고 공연을 전달할 수 있을까. 이게 올해 저의 큰 숙제 중에 하나거든요. 

Q.  글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친숙해지면 그 시각적인 느낌에만 반응을 하다 보니, 글 자체에 대한 오탈자를 찾기 힘들어진다.

주민진  맞아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글자를 볼 때 단어로 외운다고 하더라고요. 그림식으로 인식을 해버리기 때문에 중간에 글가자 조금씩 바뀌어도 인식을 못 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이걸 깨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된다고 들었어요. 이걸 새롭게, 처음 보는 것처럼 어떤 태도를 취하고 바라보지 않으면 계속 갇히게 된다고 들었고, 저도 어느 순간 그런 경험들을 했었기 때문에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의심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Q.  그레이 헌트 역으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했는데, 어떤 인물인 것 같나. 초연-재연 비교했을때 달라진점이 있을까

주민진  이분을 사실 초연 때까지만 해도 이해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저한테는 비슷한 경험이 전혀 없었고 그리고 일단 결말 자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결말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요. 그가 무얼 위해, 누구를 위해 그리고 인생 자체의 목적이 무엇이길래 계속 고민을 할까. 지금도 계속 고민을 해 나가는 중이에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멋있다는 생각도 있었죠. 이 시대에 없는 어른 같은 모습이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상상할 수 없었던 어른의 모습을 이 극에서 보여줬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제가 그린 헌트는 어른 같은 어른이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었죠. 사실 어른이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사람마다 규정하기에 따라 다르거든요. 제가 생각한 그레이 헌트, 그의 어른스러움은 태도 그리고 순수함이었어요. 어른으로서, 더 큰 사람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나 싶었거든요.

Q.  비슷한 나이대로 가고 있다고 했는데, 나이는 몇 살 정도로 설정했나.

주민진  일단 나이대는 초연할 때는 50대였었고, 재연 때는 60대로 설정했어요. 재밌는 게 저도 나이를 먹고 있잖아요. 삼십 대 후반의 민진이와 이십 대 후반의 민진이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태도가 다르지 않다는 게 오히려 세 번째 시즌에 들어갈 때 많이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지금은 나이대의 설정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조금 무의미해졌다랄까요. 그레이 헌트라는 사람이 와이트를 대하는 태도와 그의 행동들이 과거의 저보다 더 성장한 지금의 제가 바라봤을 때 더 유연하게 대하고 답할 수 있겠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게 인생이라는 경력이 묻어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나이에 대한 부분은 지금의 저에겐 무의미해졌습니다.

Q.  그레이 헌트에게 있어서 소설은 어떤 의미일까

주민진  소설은 사람이라는 게 사실 목적을 이루면 인생이 허망해진다고 하잖아요. 그에게 소설을 그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요. 저도 배우로서 한 작품이 없어진다면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몸을 트레이닝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고 조금 위험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게 죽음이라는 것과 크게 맞닿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에게 소설이란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목표점이자 인생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Q.  글을 쓴다는 게 쉬우면서도 정말 어려운 일이지 않나. 배우 주민진으로서 작품 속 인물로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하다

주민진  맞아요. 글을 쓴다는 것,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일이고 그냥 글자를 채워 넣는 일인 건데, 그런데 글자가 글자로 보이지 않고 그림으로 보이거나, 어떤 느낌과 의지로 바뀌고 그거를 누군가에 입맛에 맞게 하거나 내 입맛에 맞게 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서 가끔은 너무 어마어마한 생각이 들어요. 저도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글을 좋아하고, 작품도 써봤지만 어떻게 보면 또 다른 하나의 지구를 만든다고 해야 할까요. 내 머릿속에서 모든 게 완벽해야 하잖아요.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똑같은 현상이 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져야 하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쉬워 보이지만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그렇게 완벽한 또 하나의 세계관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 중에 몇몇 사람들만 할 수 있겠지만요. 저도 글을 쓰고 있지만 너무 부족함을 느끼곤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열심히 계속 글을 쓸 예정이고, 우리 작품 속 글에서 조차도 그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끝까지 자신을 낮출 수 있었던 사람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본지는 활자 중독이다. 예전에는 책을 들고 다녔다면 요즘엔 핸드폰만 보고 다닌다. 글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한 번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쾌감보다는 글을 보는 데 있어서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주민진  저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책을 음식 먹듯이 읽거든요. 그래서 하루에 보는 책이 인문학 책을 읽게 되면, 반대로 시집을 한 편 읽는다든지 조금 섞어가면서 읽거든요. 거기서 주는 식사만큼의 채워짐이 있어요. 그걸 다시 제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고, 다시 내뱉는 과정들이 제 인생에서 또 다른 경험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여과가 되면서 또 다른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봤을 때 여러 글들을 읽고 이게 쏟아져 나오는 과정에서 하나로 정리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참 그 자체가 기적이지 않나 싶어요. 예를 들자면 장미를 모았은데 그게 어느 순간 꽃다발이 됐다고 해야 할까요. 어떤 틀이 잡힌다는 게 기적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Q.  그럼 최근 읽었던 책들 중에 감명 깊다거나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을까

주민진  요즘 시집을 많이 읽고 있는데, 폴란드의 시인 중 한 명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책들에 빠졌어요. 이분 시집이 너무 좋더라고요. 최근에 읽었던 책인데 '충분하다'라는 제목을 가진 시집인데, 읽고 나서 너무 좋았어요. "아니 이런 일상적인 글자들로 이런 그림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 "너무 멋있다" "너무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여기에 푹 빠져서 이분의 시집을 더 시켜서 읽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소설도 인문학 책도 너무 좋지만 단지 몇 가지 글자를 섞어서, 그 글자로서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시집이 약간 최고점에 있지 않나 싶어요. 심보르스카 시인의 시집 이외에도 시인들이 쓴 몇 가지 글자들에서 그 시인이 어떤 시대에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그 글자들 속에 숨겨둔 혹은 그대로 남겨둔 상황과 시선들을 제가 상상해볼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감정들이 많아서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부분들은 제가 배우로서 더 좋게 다가오지 않나 싶어요. 사실 모든 배우들은 일상 자체가 대본을 읽고 분석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시집을 보면서 오는 쾌감이 너무 많아요.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와 의지, 목표, 표현 등을 생각해내는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도 성장하고 배우고 펼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외국에서 치즈를 다양하게 제조를 하잖아요. 우리는 그냥 치즈는 치즈지라고 하지만 치즈를 알고 즐기는 사람은 그냥 하나의 치즈만으로 다양한 맛을 느끼고 상상하고 즐기는 것처럼 저에게 시집은 최고의 재미이지 않나 싶어요. 시집에 푹 빠져있습니다.(웃음)

Q.  그게 문학의 힘이 아닐까.

주민진  기자님도 활자 중독이라고 할 정도니 비슷한 접점을 많이 느끼고 계실 것 같아요. 아마 일반 독자분들도 그리고 관객분들도 좋은 시집, 글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시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 이야기를 했었지만 글자가 익숙해지더라고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경험을 하고 나서 다시 그 글자를 보면 또 다른 방향으로 보는 것처럼, 공연도 이 느낌과 연결이 되지 않나 싶어요. 똑같은 대본이라도 어느 순간 다르게 보이고,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민진이의 그레이는 전과 같은 장면이라도 성장을 했기 때문에 조금 다르게 표현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전보다 더 깊게 빠져들어갈 수도 있지 않나 싶어요. 이런 접점들이 모인 게 예술이 아닌가. 예전에는 예술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지금은 이런 모든 것들이 예술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 같아요.

Q.  '예술'이라는 정의는 정의일 뿐, 똑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다 다른 느낌을 받는 것처럼 본인이 느끼는 게 답이 아닐까

주민진  아마 '아름다움'이랑 비슷한 게 아닐까 싶어요.

사진 ⓒ 조나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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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레이에게 와이트라는 인물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주민진  와이트,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글자는, 그레이 초반에 있는 대사인데 "한 줄기 빛이 찾아왔다"가 있어요. 여기에 대해서 이제 고민을 하는데, 굉장히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겠죠. 그레이는 그게 어두운지도 몰랐을 거예요. 사실은. 그레이는 자신이 쓴 소설이 망했잖아요. 그런데 그에게 남은 건 글을 쓰는 거였어요. 그를 먹여 살리고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연명하게 할 수 있는 건 글쓰기밖에 없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다른 공간에서 다른 꿈을 키워나간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 와이트가 나를 찾아왔죠. 둘이 만나는 순간에 어떤 빛이랄 수도 있고, 스파크랄 수도 있고 그런 게 서로에게 비쳤을 것 같아요. 그레이는 그를 통해서 단순하게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와이트는 말 그대로 한줄기 빛이 아니었을까.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는, 어두움 안에서 이 회색빛이 감도는 도시 안에서 화이트, 와이트가 찾아왔다. 이게 우리 작품에서 가장 큰 모티브이자 메타포가 아닐까.

Q.  작품 속에서 와이트가 변해가는 걸 그레이도 느꼈을 것 같은데

주민진  네, 확실히 보여요. 그레이한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만, 그 친구의 인생이니까 많은 터지를 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그가 하고 싶은걸 다 할 수 있게 그냥 두죠. 그리고 일단 이 친구 때문에 제가 느끼는 행복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더 그를 건들 수 없었지 않나 싶어요. 대사 안에도 있거든요. 그 친구가 나를 만나는 순간 '내 글 자체가 위로'라고 말했었어요. 항상 사람들에게 안 좋은 말만 들었던 그레이에게는 이 친구가 내 글이 힘이 된다는 말을 했다는 것에 다름을 느낀 거죠. 저보다 어린 친구가 아니라 저를 밝혀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제가 감히 그 친구의 인생에 대해서 터치할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느 순간 눈을 떴을 때 상황이 안 좋아졌고, 그레이로서, 그보다 더 큰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태도는 뭐였을까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면 그런 선택까지 도달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것 같았고, 그래서 그레이가 어두웠던 시절에 그 스스로를 좀먹는 어떤 목소리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공연 내에서 귀를 막는 제스처를 실제로 많이 사용을 하고 있어요. 그레이는 극에서 계속해서 자기를 욕하는 사람들과 기자들의 기사에 쫓기고 있었을 것 같았었거든요. 그래서 그 끝이 다가왔을 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Q.  사실 처음 봤을 때 다들 죽이겠구나 하면서 봤는데 전혀 아니었다

주민진  회사 취향이 담긴 게 아닐까 싶어요. 네오에서 만들었으면 빨간 불빛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HJ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조금 더 밝은, 인간의 따뜻함 그리고 희망 등이 발견되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그래서 사실 작업을 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 열전이나 네오에서 만들어졌다면 어떤 이야기로 갔을까, 인물들은 어떤 이야기로 얽혀있을까 하고요.(웃음)

Q.  요즘 꽂힌 대사가 있을까

주민진  마지막에 제가 선택을 하기 전에 "그래 어차피 다 끝이니까"이게 요즘 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이게 글자로만 보면 모든 걸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그레이는 그걸 다 이해했다고 생각을 해보니까 또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 어쩔 수 없지"가 아니라 "어차피 다 끝은 있는 거니까"라는 거죠. 그가 그 선택을 한다는 것이 그레이에 유일한 자유의지가 아니었을까. 절벽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게 아닌 '어차피 끝은 올 거니까'라는 동사가 담긴 게 아닐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좀 다가왔고 더 희망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사진 ⓒ 조나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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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우리가 항상 하던 인물과 캐릭터 이미지화를 해보자

주민진  일단 정원 배우 같은 경우에는 약간 좀 오래된 극세사 핑크빛 수건 같아요.(웃음) 이게 멀리서 보면 되게 뽀얗고 귀여운 느낌의 핑크빛 수건인데, 막상 다가가면 이미 많은 삶을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계속 이어가고 있거든요. 그런 담요? 일 수도 있고요. 담요, 담요의 포근함, 따뜻함도 가지고 있거든요. 온기를 나눠줄 수 있는 그런 배우입니다.

그리고 민수 배우는 아주 현대적인 전기차 같은 느낌에요. 아주 실용적이고 무언가에 어떤 부분부분마다 최적화돼있고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거든요. 최신식 전기차, 파란색의 그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승현 배우는 도깨비 같아요. 약간 현대판 도깨비? 어두운데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보는 그대로 여러 가지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어두움이 있거든요. 빈 공간을 응시했을 때 뭔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승현 배우가 한자리에 서 있으면, 제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반응이 와요. 그렇기 때문에 아주 뭐랄까 형형한 눈빛을 가진 멋진 도깨비? 나쁜 뜻은 아니고 아주 재주가 많은 한국판 도깨비 같은 느낌이에요.

사진 ⓒ 조나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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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휴 대커는 저랑 거의 못 만나거든요. 그냥 생각을 했을 때, 우선 준영 배우 같은 경우에는 아주 세련된 만년필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주 세련되고 긁는 그대로 예쁘게 글자를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만년필요. 좋은 만년필을 쓰는 이유가 글을 쓰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만년필 자체에서 주는 매력이 있거든요. 준영 배우도 이런 만년필처럼 노래나 연기도 당연히 훌륭하게 잘 하고 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만족감이 들거든요. 그래서 아주 고가의 비싸고 세련된 만년필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건이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오래된 30년쯤 사용한 총집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주아주 오래되고 가죽도 약간 너덜너덜하지만 본인의 역할을 아주 잘 해내고 있고 능숙하죠. 오래된 가죽 제품들을 보면 보기에는 오래되고 너덜너덜해 보이는데 그 가죽은 어떤 작업이나 용도에 있어서 그 어떤 비슷한 제품들보다 자연스럽고 능숙하거든요. 말 그대로 최적화되어있고 진한 가죽 냄새를 풍기는 총집 같은 배우입니다. 그런 배우는 정말 흔치 않아요.(웃음)

우리 방언 배우는 뭔가 붓 같아요. 아주 붓 같은 배우. 저는 방언 배우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어서 정말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왔거든요. 붓을 잘못 잡으면 글자가 정말 많이 삐둘어지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방언이는 아주 잘 잡혀가고 있는, 아주 멋진 글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붓이지 않나 싶어요. 오래 잘 갈린 먹물에 푹 찍어서 힘 있는 글자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개인적으로 방언 배우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Q.  마지막으로 지난번 인터뷰를 하면서 택배 배송하는 케이를 그려줬으면 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혹시 봤을까

주민진  있었어요?? 아, 못 봤어요. 

Q.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다. 다 찾아보지는 못했는데 쿠팡인가 당근 마켓? 거래를 하는 케이의 그림을 본 것 같다.

주민진  되게 보고 싶어서 이야기를 했었던 건데, 정작 저는 못 봤네요. 트위터일까요? 너무 보고 싶어요. 꼭 찾아보겠습니다.(웃음)

Q.  그럼 그레이 헌트로서 어떤 그림이 있길 바라나

주민진  혹시나... 혹시나 팬분들께서 보신다면. 일단 본인이 너무 심심하고 할 일을 다 하셨을 경우에 우유 농장에 앉아서 와이트랑 술을 한 잔 마시면서 떠들고 있는 그레이 헌트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웃음) 아주 따뜻한 초원 위에서 소들이 뛰어다니고 있는 뭔가 평범한 시골 풍경 속에서 웃고 떠드는 두 사람의 모습이요.

Q.  디테일하다

주민진  이런 행복한 일상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거든요.(웃음)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주민진 배우가 기대하는 그림을 볼 수 있길 바라며 이번 인터뷰를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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