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터뷰] '명동로망스' 김태한-김승용-조윤영, "이 또한 지나가리라"
[더인터뷰] '명동로망스' 김태한-김승용-조윤영,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1.0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힘든 시국, 위로의 한마디 건내고 싶어
뮤지컬 '명동 로망스' 장인을 만나다

타임슬립 힐링 뮤지컬 <명동 로망스>가 돌아왔다.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 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지원 사업에 선정된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꿈도 열정도 없이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2021년의 공무원 '장선호'가 모종의 사건으로 1956년으로 타임 슬립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그린 작품이다.

1956년 명동의 한 로망스 다방에는 영화와 그림, 시와 글을 쓰는 작가들이 모이는 장소다. 그곳에서 가족들과 살기 위해 그림을 그만두려는 화가 이중섭, 당대 엘리트 집안의 자제로 검은 옷과 장식을 즐겨 입었다는 작가 전혜린, 모더니스트 이자 시인 박인환 등을 만나게 되면서 장선호의 일상이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시대를 관통하는 주옥같은 대사들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본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뮤지컬 배우 조윤영과 두 번째 시즌을 함께하고 있는 배우 김태한, 마지막으로 첫 시즌을 시작한 김승용 배우를 만났다. 그들이 그리고 있는 <명동 로망스>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다음은 그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좌측부터 김태한-김승용-조윤영 배우 / 사진 ⓒ 조나단 기자
좌측부터 김태한-김승용-조윤영 배우 / 사진 ⓒ 조나단 기자

 

Q. 반갑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승용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뮤지컬 <명동 로망스>에서 채홍익 역을 맡고 있는 배우 김승용이라고 합니다.

김태한  안녕하세요. 저는 이중섭 역할을 맡은 김태한입니다.

조윤영  저는 전혜린 역을 맡고 있는 조윤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Q. 우선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어떤 작품일까

조윤영  네, 뮤지컬 <명동 로망스>가 어떤 작품이냐 하면, 보시는 관객분들에게 울림과 재미, 행복 에너지 플러스, 눈물, 콧물 쏙 빼는 그런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도 얻어 가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김승용  예, 여기에 덧붙여서 뮤지컬 <명동 로망스>라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를 추가로 말해주세요. 

조윤영  네, 이 작품의 가장 큰 포인트는 주인공 장선호라는 인물 입니다. 일반적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평범한 인물인데 그 장선호가 어떤 사건을 통해서 1950년대 명동으로 타임슬립을 하게 되요. 그곳에서 당시 전쟁통 속에서도 활짝 꽃피웠던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생기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 선호는 버겁게 그저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왔지만, 1956년 명동의 로망스 다방에서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삶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김승용  예. 어떻게 보면 요즘 시대가 굉장히 삭막하고 회색빛이 돌고 있잖아요. 그런데 1956년 그 시절 예술가들과 교감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들을 깨우칠 수 있게 도와주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태한 배우님은 <명동 로망스>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십니까.

김태한  이중섭 역할을 맡았다고 말씀했습니다요.

김승용  네, 맞죠. 그거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이중섭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요.

김태한  예. 제가 맡고 있는 이중섭을 다들 아시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명이자 비운의 화백입니다. 극 중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외로움과 괴로움, 고통 속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나 그만두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고뇌와 갈등 속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되는 비운의 화가입니다.

김승용  네, 그럼 이제 윤영 배우는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조윤영  저도 실존 인물 전혜린 역할을 맡았습니다. 작중 나오는 박인환 시인이나 이중섭 화백님처럼 엄청 유명하신 분은 아니지만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작 중 전혜린은 실존했던 전혜린 작가가 유학을 가기 전 20대 때의 모습을 상상해 그렸습니다. 당시 전혜린은 엘리트 집안의 자제였고, 젊은 나이에 독일로 유학을 갈 정도로 잘 살았고, 유학 뒤에 한국에 돌아와 번역가지가 작가, 교수로 일했던 인물입니다. 

김승용  마지막으로 저는 채홍익이라는 인물을 맡았습니다. 극중에서 경찰이고 다른 두 배우님이 맡은 역할과는 다른, 극을 위해서 창작된 가상의 인물입니다. 이 작품에 참여해서 바라봤던 채홍익은 작품 속 시대상을 반영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대의 예술가들이 있다면, 제가 맡은 채홍익은 그들을 시대적으로 탄압하고 반대하게 되는 인물이었죠. 어떻게 보면 작품 속에서 인물들에 갈등을 유발하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죠.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승용 배우는 이번에 처음 참여했다. 

김승용  맞아요. 저는 사실 2016년도에 동숭아트센터에서 했었던 공연을 봤었거든요. 공연을 보면서 꼭 한번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우연치 않게 기회가 와서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채홍익이라는 인물이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보는 관객분들 입장에서 당시의 예술가들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거든요. 그 부분들에서 제가 취조를 하는 데 악역처럼 느끼시지만, 채홍익의 입장에선 그도 역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물로서 자기의 본분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실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되게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인물들이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제가 맡은 채홍익은 조금 더 흑백처럼 보여야 하지 않을까란 고민으로 계속 이어졌었거든요. 입체적으로 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저는 채홍익을 단순한 악역으로만 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Q. 사실 첫 공연을 보고 이후 여러 번 찾아봤는데 뭔가 더 담백해졌다고 해야 할까. 캐릭터가 점점 더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김승용  사실 초반에는 인간 김승용이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배우 본체로서 채우려고 했던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다들 초연에 이어 재연, 삼연까지 참여했던 공연이고 저는 처음 합류했다보니 뭔가를 자꾸 만들어야 하나라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살을 더 덧붙이려고 했었죠. 그런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에요. 무대에 오르면서 긴장이 풀려서 점점 채홍익이라는 인물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고, 그런 모습을 보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Q. 두 배우는 이번이 재연, 삼연째 참여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뭐였을까

김태한  제가 이야기할게요. 사실 어느 배우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작품은 선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단 할 수 있으면 무조건 해야 하는 너무 좋은 작품이거든요. 이 좋은 작품을 맡는 것과 이를 통해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하고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작품 이외에도 작품에 참여한 모두가 이 작품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을 받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 <명동 로망스>는 선택이라는 단어보다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할 수 있으면 무조건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그래서 그럴까 두 배우를 보고 이중섭 장인, 전혜린 장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김태한  그래서 장인이지 않나.(웃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못 할 것 같아요. 사실 배우들이 자기 캐릭터를 쭉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고, 또 다들 실존 인물들을 연기하다 보니 허투루 할 수 없거든요. 그들의 노력을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저희만큼이나 이 작품을 사랑해 주시는 관객분들이 많으시거든요. 우리가 공부하고 만들고 쌓아간 인물들을, 관객분들 또한 공부하고 오시다 보니 더 재밌게 봐주시지 않나 싶어요. 우리들의 노력을 봐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윤영  사실 저는 처음 참여했을 때 당시 서울 말투는 쓰지 않았었거든요. 재연에 참여했을 때 연출님께서 한번 그렇게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셔서, 당시 1950년대 서울 사람들의 말투를 연구했어요. 그 당시 영화나 영상들을 많이 찾아봤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었던 말투를 창작진과 동료 배우분들이 하나하나 다잡아주셔서 완성시켰죠. 그런 노력들이 보이는 것 같아서 기뻐요. 첫 장면 이후 2장에 넘어가면서 보이는 달라진 모습에 관객분들도 그 시대 다방으로 같이 빨려 들어가지 않나 싶습니다. 연출님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그저 한 걸음 떨어진 전혜린이었지 않나 싶어요. 

김승용  그리고 다른 디테일한 부분들이 더 있습니다. 윤영 배우가 전혜린 역할을 위해서 당시 그가 번역한 책 데미안의 초판본을 사 와서 무대 소품으로 사용했거든요.

조윤영  아, 네. 맞아요 저희가 무대 소품으로 쓰는 책이 있는데 연습할 때, 런스루를 돌면서 책을 읽는 장면들이 있거든요. 무대 위에서 그냥 서있는 한 명의 인물이 아니라 전혜린으로서 소품이 아닌 실제로 그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마침 초판본과 똑같은 디자인의 책이 나왔다고 해서 그 책을 직접 구매해서 가지고 왔어요. 소품 용도로 쓰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그 책을 읽었거든요. 그 책에서 너무나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정말 조그마한 거일 수도 있는데 무대 위에 올라가서 책을 바라볼 때 느낌이 정말 많이 다르더라고요. 사실 무대 위에서는 장면 장면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책을 제대로 볼 수 있지는 않지만, 그냥 내가 그 책을 읽고 있고 실제로 영감을 받았던 책을 무대 위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다가오는 감정이나 영감이 너무 다르고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조윤영  사실 전혜린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초연과 재연 두 번의 무대를 거치면서 이 인물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감정에 잠식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었어요. 이 인물이 가진 감정이 저에게 휘몰아쳐왔던 적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모르시겠지만 실제로 저희 가족들이 제가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이 작품을 다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죠. 그런 부분들이 다시 돌아온 이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저를 힘들게 했었어요. 그런데 이번 시즌에 들어와서 정말 이런 부분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저 스스로 작품과 배역, 인물에 대한 노하루가 쌓이다보니 변화한 부분도 있고, 같이 이 배역을 맡은 배우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이 제가 가진 고민들을 캐치하고 풀어준 덕분에 많은 부분들을 덜어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본 공연에 들어와서 남아있던 감정의 잔재들을 관객분들을 통해서 덜어낼 수 있었어요. 관객분들 덕분에 조금더 성장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지금의 나에게 울림을 주는 대사가 있다면

김승용  일단 저는 우리 작품의 키포인트인 것 같은데, 선호의 노래 중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대사요. 삶은 어찌 되었든 순환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이 사건, 상황들은 어느 순간 지나갈 것이고 또 다른 새로운 어떤 것들을 만나게 되죠. 모든 순간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것에 대해서 공감이 가더라고요. 

조윤영  사실 공연을 하면서 매번 조금씩 다르게 와닿아요. 요새는 '왜 reprise' 중에 "왜 난 나를 불태울 꿈을 꾸나"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이게 엄청 다가오더라고요. 그랬던 적이 없는데 같은 문학작품이나 음식이 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듯이 요새 그게 본능적으로 울컥 다가오더라고요. 혼자 누구나 그럴지 모르겠지만 감정적으로 감정의 폭풍 후에 잠식당하는 게 내가 이런 감정 기복을 가지고 있어 배우로서 좋고 축복받은 것 같지만 사실 그게 너무 버겁고 그만두고 싶어질 정도로 격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에서 그 가사가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김태한  저는 승용 배우가 이야기한 거랑 비슷한 이야긴데요. 저희 작품은 중간중간 촌철살인 같은, 뼈를 때리는 좋은 대사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걸 하나로 관통하고 묶은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대사이자 가사인 것 같아요. 사실 엄청 유명한 말이거든요. 유명한 분들이 다 하는 말이잖아요. 결국 그래서 다 지나가니까 잘 넘기고 아파하지 말라고 쓰였던 말들인데 재밌는게 이게 작품 속에서 의미가 바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의 의미가 '어차피 지나갈 거니까 잘 견뎌내라'는 뜻에서 "너 이거 그냥 그렇게 넘겨버리면 지금 이 귀중한 순간을 무의미하게 지나간다"라는 의미로 바뀌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지금도 그 가사가 귀에 들어오면 소름이 돋아요. 지난 시즌에도 그때 나름대로 이 가사가 저를 후벼팠다면 올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저를 쑤신다고 해야 할까요. 뭔가 마음을 울리는 말이지 않나 싶습니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태한 배우가 연기하는 중섭은 선호를 '아이'라고 말하던데 설정을 했던 걸까

김태한  이건 되게 간단합니다. 사실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연습 때 선호야라고 불러야 되는데 지난 시즌이는 '야, 야'라고 불렀었거든요. 그게 제가 공부하기로는 북한에서 흔히 손 아래에 있는 누군가를 부를 때 그렇게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특별한 건 아니고 그냥 누군가를 부를 때 호칭 같은 거죠. 그런데 그게 제가 말투 때문인가 목소리 때문인가 어쩔 때 굉장히 차갑거나 무섭게 들린다고 연출님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연출님이 '야' 말고 다른게 없을까라고 이야기를 하셔서 '장가', '장가야', '장화백', '선호야'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북한 사람이 아니니까 이걸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겠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쟤를 뭘로 느끼고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었고, '아이 같다'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장선호라는 인물에 대해서요. 물론 저도 아이 같긴 하지만요.

김승용  예?

조윤영  예?

김태한  아, 물론 저 말고 극중 이중섭이요. 물론 저도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지만요.(웃음) 그렇게 일단 생각 없이 '아이'라고 불러볼까 해서 불렀는데, 부르고 나니까 제가 너무 좋더라고요. 뭔가 정말 장선호라는 사람을 따듯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출님도 딱 들으시더니 그거 좋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게 됐습니다. 뭔가 큰 의미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게 됐습니다.

Q. 너무 좋다. 듣고 싶었던 말이다.

조윤영  앗, 갑자기 이 시가 떠올랐어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시요. 내가 그를 부름으로써 그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됐다는 그 시랑 느낌이 확 와닿았어요.(*김춘수 시인 '꽃'의 한 구절)

Q. 평소에 책을 즐겨 읽나. 

조윤영  사실 예전에는 독서에 관심도 없고 취미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전혜린이라는 역할을 맡으면서 전혜린 선생님께서 직접 읽으셨던 책이나 그분이 좋아했던 책, 그리고 그분이 쓰신 책들을 찾아보면서 조금씩 독서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Q. 채홍익 같은 경우 박인환이 떠나고 나서 뒤늦게서야 술잔을 들고 나오는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승용  그 장면 자체로는 사실상 추모를 하고 있는 거죠. 그 추모를 왜 하냐고 물어보신다면 어찌 되었든 홍익이라는 인물도 예술가들과 동화돼서 그들과 가족 아닌 가족이 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업이 있기 때문에 그 시대상을 표현해서 이들을 취조하게 돼요. 그 후에 박인환 선생님은 생명수를 드시고 돌아가시거든요. 그거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박인환 성생을 추모하고 어떤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지 않나 싶습니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극 중 전혜린 같은 경우에 장선호가 미래로 같이 가자고 하는데, 과거에 남겠다고 했는데 본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다른 두 배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태한  대본에 나와있는 것처럼 거절하지 않을까.

김승용  거절하지 않을까요.

조윤영  저도 거기에 있었다면 거절했을 것 같아요. 뭐가 됐든 간에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를 선택했을 것 같아요. 저도 약간 그런 주의거든요. 사실 진짜 전혜린 선생님의 삶과는 다른 언픽션 속의 삶을 살아가는 전혜린이잖아요. 그렇게 바라봤을 때 제가 창조한 전혜린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1차원 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무조건적으로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누구보다도 삶에 대해서, 사는 것에 대해서 엄청 정말 열의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와중에 중섭 선생님이 자기는 가지 않는다는 그 말이 전혜린에게 어떤 자극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이 힘든 상황에서도 이중섭 선생님께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가 저한테 되돌아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이대로는 갈 수 없다. 지금 내가 이 짧은 삶 속에서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글을 써보고 싶다.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의 흐름으로 갔던 것 같거든요. 

김태한  그래서 안 가겠다고?

조윤영  네, 그래서 안 갈 것 같아요.

김태한  저도 비슷해요. 비슷한데 이중섭 화백의 이야기를 살짝 빌리면, 죽기 전에 그 굉장히 큰 자괴감과 자책감에 항상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면 나는 내가 그림을,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면서 제 식구들 하나 먹여살리지 못했다 그게 평생 동안 맴돌았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극 중이나 대본에서 그런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다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죽음이라는 단어와 장면을 통해서  극 중의 이중섭 화백은 갇혀있던 생각의 문이 딱 열리게 되는 거죠. 사실 누구나 저 스스로를 되돌아봤을 때 나는 열심히 살아봤나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 장면이 저한테 그래요.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래 더 열심히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죠. 하는 데까지 해보자. 어떻게 보면 그 순간 정말로 잠깐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Q. 작품 속에서 박인환 선생의 죽음 이후, 이중섭 화백과 전혜린 작가, 홍익은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또 실제로 나라면, 내가 죽을 날을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김승용  저는 사실 마지막 장면에 마담과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선호의 어떤 판타지 상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생각했을 때는 홍익은 분명 마담에게 마음은 있지만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김승용이라는 사람이 죽음을 알고 있다면... 저는 평범한 게 특별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그 평범함이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죽음이라는 걸 안다는 것 자체가, 저도 가족이 돌아가신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한 건 원하지 않으세요. 그냥 평소처럼 대화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정말 평범한 게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한다거나 대단한 업무를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냥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조윤영  저는, 사실은 저 윤영이 본인이라면 그렇게 믿을 것 같지 않아요. 저는 약간 보이는 것만 믿는 편이거든요.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두텁고 이런 거를 떠나서 그 사람이 한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도 그냥 평상시대로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물론 제가 언제 죽는다는 말에 대해서 신경이 쓰이겠으나 그것 때문에 뭔가 더 큰 사건사고를 만들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극중 전혜린이라고 한다면 데미안의 한 구절처럼 이전까지는 알을 깨지 못하고, 금조차도 내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때 죽음을 의식한 이후부터는 세상 밖에 대해서 더 갈망하게 되지 않았을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알의 껍질이 크나큰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그토록 원하는 글을 쓰지 않았을까. 그 갈증을 이루어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그는 이미 그 누구보다 크나큰 열정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는 알에 둘러싸였던 게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극에서 그려진 전혜린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글을 쓰겠죠. 장선호에게 말하기 위해서요. 

Q. 마지막으로 나에게 뮤지컬 <명동 로망스>란

김승용  어떻게 보면 배우들 또한 예술가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제가 '엄청난 예술가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그래서 배우들과 문화인들에게 이 작품은 어떤 지침서 같은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선호와 혜린이 하는 대사 중에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이라고 말했을 때 혜린은 아니라며 "자기가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해야죠"라고 답하거든요. 사실 현대 사회에서 이게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쉽지는 않은데, 우리는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었고 그렇게 위로를 전하고 있는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예술인들의 지침서 같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조윤영  제게 <명동 로망스>는 첫 번째 초연, 재연, 삼연을 겪으면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그 속의 저도 많이 바뀌었거든요. 그래서 저와 함께 커가는 또 다른 저인 것 같아요. 작품 속에 있는 저를 보면서도 그렇게 느끼기도 하고, 정말로 작품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김승용  아, 그러면 <명동 로망스>가 나고, 내가 곧 <명동 로망스>다.

조윤영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진짜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웃음)

김태한  네, 저 같은 경우에는 좀 간단합니다. 저에게 뮤지컬 <명동 로망스>란 생명수다. 부연 설명을 조금 하자면 저희 넘버 중에 생명수라는 넘버가 있어요. 그 가사 중에 '우리에게 생명수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계속 던져요. '이럴 때 생명수' '저럴 때 생명수' '그래서 생명수 줘'라고요. 이 작품이 딱 현실을 살고 있는 저한테 이 작품은 생명수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너무 힘들지만, 탁 생각나는게 바로 이 명동 로망스고, 너무 힘들 때 제게 힘을 주는 단어가 바로 생명수이기 때문에 저에게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곧 생명수입니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