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칼럼] 민심도 시장도 못 읽고 칼만 휘두른 가상화폐 대책
[이원두 칼럼] 민심도 시장도 못 읽고 칼만 휘두른 가상화폐 대책
  • 이원두 언론인·칼럼리스트
  • 승인 202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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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우리 경제정책은 시장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거나 읽지 않음으로써 후유증과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무려 스물네 번에 걸쳐 숨 가쁘게 전개한 부동산 정책이 꼽힌다. 그 결과는 민십 이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원인은 단 한 가지, 경제정책에서는 시장을 무시했고 정치에서는 민심 동향을 무시한 데 있다. 그렇게 홍역을 치렀으면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가상화폐 대책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여전히 시장과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거나 읽으려 하지 않는다.

투기 수준의 투자에 열광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정상적인 방법, 사회 규범에 따른 자산방어와 투자 수단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경우, 다시 말하면 신분 상승의 정상적인 사다리가 실종된 상황에서만 ‘건곤일척’(乾坤一擲:운명을 건 최후의 한 판 승부)에 나서게 된다. 지금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상화폐 사태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만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뜻이다.

가상화폐가 문제가 된 것은 적어도 3년 전부터이다. 그러나 당시 법무장관의 ‘거래소 폐쇄검토’ 상황에서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한 채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 정부가 한 일을 꼽자면 ‘특별금융정보법’을 제정, 9월부터 시행한다는 것 정도다.

이번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시장을 향해 쏘아 올린 ‘가상화폐 거래소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폭탄’도 이 법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국제 자금세탁 방지 기구(FATF)지침에 따른 것일 뿐 가상화폐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전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간에서도 가상화폐에 대한 인식의 통일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금융위가 자산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투자자를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수위를 높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세 당국은 수익에 대한 과세를, 지방자치체는 체납 지방세 회 수단으로 이를 압류하고 있다. 이러고도 같은 정부 당국자라고 국민 앞에 얼굴을 버젓이 들 수 있다면 그 배짱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마디로 가상 화폐라고 하지만 그 종류는 다양하다. 이미 일부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결제 수단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한 편에서는 문자 그대로 ‘실체가 없어 자산이라고 보기 어려운’, 오로지 투기 도구인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가상화폐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따른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읽어야 한다. 아직은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과도기적인 화폐‘이기 때문에 정부는 시장이나 투자자를 엄격하게 보호할 의무가 있다. 적어도 지금 시장에 나도는 상품권이나 마일리지 정도의 대접은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 당국은 엄포만 놓았을 뿐, 제대로 된 안전판 하나 마련하지 않고 있다.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거나 이것이 투자와 투기 대상이 된 시장 상황을 읽지 못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감독 규제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만 앞서 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미 일본은 승인제를 도입, 미승인 가상화폐는 거래소 상장을 금지하고 있고 미국은 미래 주력산업으로 육성을 시도하면서도 연준(FRB)과 재무부가 투자자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U와 영국 역시 나름대로 시장을 주시할 대책을 가동하고 있다.

민심과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반영하지 못한 청구서가 지금 정책당국 앞에 쌓이고 있다. 정부 출범과 함께 힘을 기울여온 최저임금의 지속적 인상으로 미지급 분쟁이 심화 되어 사상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임금을 주고받는 업주와 근로자 어느 한쪽도 반기지 않는 정책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또 다주택 소유자에게 매도를 유도한다는 정책은 ’증여‘로 흐름이 바뀌어 서울 강남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일종의 트렌드로 정착할 낌새를 보이고 있다. 또 조세저항에 놀라 종부세 기준을 공시가격 12억 원으로 높여야 한다면서도 집권 여당은 목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정부 여당이 시종이 여일하게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없다. 정상적인 방법, 사회 규범에 따라 재산을 늘이거나 지켜나갈 수 없게 된 ‘락 거지’ 이어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인 포모(Fear Of Missing Out) 현상이 확산, 이것이 투기로 이어지고 있음을 어째서 정부 여당은 이해하지 못하는가? ‘사다리 복원’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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