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30화 - 연인 후보 되기
[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30화 - 연인 후보 되기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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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방값이 꽤 비싸지요?”
나는 체면 구길 셈치고 물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아버지가 늘 쓰시던 룸이라서 그냥 씁니다. 중요한 손님 모시는 날에는 제가 잠깐 훔쳐 쓰지요.”
“아, 내가 중요한 사람이군. 고맙습니다.”
“말씀 낮추셔도 좋은데요.”
“내 편한 대로 할게요.”
나는 그때야 방을 둘러보았다.
우선 천장에 매달린 상들리에가 화려하고 웅장했다.
벽에 걸린 그림은 모딜리아니의 그림 같은데, 진짜인지 모조품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식탁 외에 별도로 있는 소파세트와 장식 가구들은 유럽 왕실의 로코코식의 고풍을 품겼다.
“제가 식사를 주문해 놓았는데, 그냥 여기 양식 정식 입니다. 괜찮으신지요.”
“좋아요.”
그때 웨이터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음료수는 어떤 것으로 할까요?”
유성우가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식사에 곁들일 음료수를 말하는 것 같았다.
“오렌지 주스면 되요.”
웨이터가 나가자 유성우가 입을 열었다.
“한수지씨 살인 사건은 단서를 좀 잡았나요?”
“아직... 그 보다 강혜림 여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내가 말끝을 흐리자 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문제는 한수지의 죽음과 무관 한 일이니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강혜림 여사 부부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해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지요?”
“솔직히 그런 예감이 들어서...”
“역시 추리 작가의 예리한 예감은 대단합니다. 네 사람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만 이미 두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설사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다고 한들 이제 캐내서 무엇 하겠습니까? 소설 소재로 쓰시려고 하는 건 아닐 테고요...”
그는 말끝을 흐리면서 웃었다.
“뭔가 잼 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으니까 담에 꼭 좀 들려주시오. 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잠을 못자는 성미라서...”
지금 더 이상 뭣을 캐내려고 해봐야 헛수고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 기회에 듣기로 하고 그들의 자녀대로 화제를 바꾸었다.
“한수지 주변의 세 남자, 유성우, 권익선...”
“오민준 이지요.”
그가 내말을 자르고 말했다.
“사실은 한편의 비극적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요.”
그때 식사가 들어와서 이야기가 중지 되었다.
식사를 시작하자 피아노의 곡 템포가 조금 빨라졌다.
“저 피아니스트는 식사 안 해요?”
내가 엉뚱한 질문을 하자 유성우는 그냥 웃기만 했다. 
내가 대답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모양이다.
“한수지 주위에 세 청년이 있던데 승자는 누구였나요?”
나는 그의 감정 선을 건드려 보았다.
한수지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에 보았기 때문이다.

“한수지는 나를 따랐습니다. 일생을 나와 함께 하기로 결심을 한 여자였습니다. 세 남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나와 귄익선의 게임이었고, 오민준은 국외자였지요.”
그는 한수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식사를 중지하고 창 너머 펼쳐진 한강과 서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조각상이 된 것처럼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얼굴에 비애와 추억의 그림자가 스쳐가는 듯 했다.
그의 눈에서 남자의 슬픔이 어떤 것인가를 보는 것 같았다.
“국외자란 무슨 뜻입니까?”
내가 갑자기 슬픈 추억에 잠긴 듯한 그를 일깨웠다.
“아직 그 부분에서 명쾌한 결말을 내지 못하셨군요. 세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도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누가 먼저 한수지를 왕비로 만드느냐하는 게임이었지요.”
“게임이라고요?”
“게임이죠. 옛날에는 연적, 즉 용서할 수 없는 연적이 생기면 결투로 끝을 냈지요. 상대방이 죽거나 병신이 되어야 사랑을 차지 할 수 있었지요.”
“왕비로 만들다니요?”
“한수지는 별명이 많은데 남자들 사이에서는 백설 공주로 불리었거든요. 공주가 왕자를 만나면 왕비가 되는 것 아닌가요.”
“왕비라... 한지수 처럼 예쁜 왕비는 무슨 왕비일까요?”
“그야, 인형 같은 바비지요.”
“가장 마른 왕비는?”
“갈비.”
“가장 영화를 좋아하는 왕비는?”
“무비.”
“국회의원들이 좋아하는 왕비는?”
“세비.”
“죽은 왕비는 묘비겠네요.”
그는 마침내 웃고 말았다.
우울한 추억에서 내가 그를 구출해 준 것 같았다. 
분위기가 웃음판으로 변하자 더 이상 무엇을 캐물을 수는 없었지만, 다음에 만나기는 쉬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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