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15화 - 장난스러운 살인
[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15화 - 장난스러운 살인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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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IoT가 뭔지도 정말 몰라요. 나는 경리 하는 것 밖에 몰라요.”
 이정근이 계속 아우성을 쳤다.
“블루투스가 그렇게 어려운 것 아닙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독일에서 IT 연구소에 근무한 일이 있는 오민준이 말했다.
“아직은 증거가 없지만 내가 꼭 꼼짝 못할 증거를 찾아 냉 것입니다.”
곽정 형사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당신 가만두지 않을 거요. 여러 사람 앞에서 나를 살인범이라고 떠들었으니까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무고, 모욕죄, 명예훼손 모두 걸어서 혼 내 줄 겁니다. 각오 하세요.”
이정근 이사가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어디 한 번 보시지.”
곽정 형사도 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처음보다는 기가 많이 죽었다.

수사의 초점은 몇 가지로 정리가 되었다.
첫째, 한수지와 장석주의 죽음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둘째, 두 사람은 함께 제거 되어야 할 무슨 비밀스런 관계가 있는 것일까?
셋째, 블루투스와 BLE 장치를 누가 했는가? 같은 방법으로 살인을 예고했는데 목적이 무엇인가? 그냥 죽여도 되는데 그런 기묘한 장난을 왜 쳤는가?
넷째, 범행의 동기나 범위는 개인적인 것인가, 아니면 회사의 조직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여섯째, 한수지와 장석주의 개인 원한에 의한 살인은 아닌가?
대체로 이러한 여섯 가지의 의문이 수사의 초점으로 부각되었다.
수사팀에서 나한테 다시 도움을 청하면서 이와 같은 관점을 제시했다.
수사가 이렇게 어물어물하고 있을 때 제3의 살인 사건이 나지 않는다고 보장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나는 당분간 소설 쓰는 것은 중지하고 이 사건에 매달리기로 했다.
우선 사건의 기본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사건인 한수지의 의문의 죽음부터 캐야 할 것 같았다.
한수지의 사생활과 그 주변을 더 철저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한수지의 가장 가까운 주변은 어머니, 동생, 아버지의 지인이었던 변하진 사장, 그리고 가까이 지낸 오민준, 새벽까지 통화할 정도로 가까운 국립 바이오 연구원의 권익선, 그리고 토마스 제퍼슨 동창 유성우 등이다.
나는 유성우를 만나보기로 했다.
정부의 중요 정보기관에 근무한다는 유성우는 만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곽정 형사를 통해 한수지의 전화 기록 중에 유성우의 전화번호를 알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한수지와 통화한 전화는 대포 핸드폰이었다.
정보기관 근무자들이 자기 명의 전화를 쓸 리가 없다.
곽정이 무척 노력한 끝에 유성우의 핸드폰 전화를 알아가지고 왔다. 그것도 물론 본명을 쓴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핸드폰 번호를 받아 전화를 걸어 보았다. 신호가 끝날 때 까지 받지 않았다.
나는 중요한 일이니 꼭 만나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자 1분도 안되어 전화가 왔다.
“제가 유성우인데요, 누구신지요?”
굵직하고 점잖은 목소리였다.
“저는 추리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첩보전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정보 시스템에 관해 좀 자문을 받으려고 하는데요. 시간을 좀 낼 수 없겠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개인적인 일에 제가 자문을 해 줄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자기는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게 개인적인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번역 출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북쪽으로도 흘러들어 가겠지요. 이럴 때 우리 정부의 정보 역할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공적인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내 설명에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한 시간쯤이면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장소는 그쪽에서 정하시지요.”
“내일 오후는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내일 오후 3시 강남의 도산 공원 동상 앞에서 뵙지요.”
“좋습니다. 오후 3십니다.”
“잠깐 저는 까만 가방을 들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쉽게 약속이 되었다. 
나는 이튿날 2시 50분쯤 도산공원의 도산 선생 동상 앞으로 갔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았다. 
2분 전이었다. 나는 동상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있었다.
3시 정각이 되었다.
동상과 마주 서있는 내 등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내가 돌아서자 앞에는 웃음을 담은 청년이 서있었다. 키가 헌칠하게 크고 얼굴이 작고 목이 길었다.
가슴이 딱 벌어지고 다리가 길게 보였다.
노타이 차림에 검은 바지와 흰색 양복 상의를 입고 있었다. 검정색 티셔츠를 받쳐 입은 흰 상의는 아주 멋있게 보였다. 멋있다고 보기보다 검정과 흑백의 조화가 화려하게 보였다.
“안녕 하세요. 유성우 씨. 나와 주어서 고맙습니다.”
내가 악수를 청하자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저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 할까요?”
유성우는 나를 인도해서 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기념관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비어 있는 관람실의 빈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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