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펀홈' 이아름솔 "어려울 것 없는 가족희비극"
[인터뷰] '펀홈' 이아름솔 "어려울 것 없는 가족희비극"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0.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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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펀홈', 앨리슨 벡댈의 엄마 헨델 벡델 역에 분한 뮤지컬배우 이아름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작품 맡아 가족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돼..."

2015년 '제69회 토니상'에서 베스트 뮤지컬상과 음악상을 비롯해 5관왕을 차지한 뮤지컬 <펀 홈>(FUN HOME)이 브로드웨이 초연 7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국내 라이선스 초연으로 무대에 오른 뮤지컬 <펀 홈>은 미국 작가 앨리슨 벡델이 쓴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뮤지컬화 한 작품으로 앨리슨 벡델이 영어 선생이자 장의사였던 동성애자 아버지 브루스 벡델의 삶과 작가 자신의 레즈비언의 삶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번 작품은 개막전부터 성 정체성 그리고 가족이라는 단어들로 관객들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있는 가족과 그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일상에선 약간 벗어날 수 있는 성적인 정체성에 대해서 솔직하게 풀어나가 관객들에 호흡을 이끌어내고 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됨에 따라오는 10월까지 예정되어 있던 공연을 축소하고 오는 8월 30일까지 축소 공연되게 됐다. 

이번 작품에서 앨리슨의 어머니이자, 브루스 벡델의 아내의 삶을 살고 있는 헬렌 벡델 역을 맡은 이아름솔 배우를 만났다. 얼마 남지 않은 짧은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를 만나 이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 장소제공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반갑다. 본지와 첫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뮤지컬 <펀 홈>에서 헬렌 벡델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이아름솔이라고 합니다. 저는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게 돼서 기쁨과 두려움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웃음) 

Q. 인터뷰에 앞서 공연이 조기에 폐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A. 네, 너무 아쉽죠. 너무 잘 만들어진 작품인데 조기 종영을 하게 됐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아쉬운 것 같아요. 

Q. 뮤지컬 <펀 홈>,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작품일까 

A. 아뇨, 저는 2016년쯤 미국에 여행을 갔을 때 처음 봤어요. 공연은 따로 보지 못했었지만 노란색 배경의 포스터를 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일정상 공연을 보지 못하고 이동하게 됐었던 작품인데 생각보다 빨리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감사하게도 오디션 제의가 들어와서 오디션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운 좋게 합격을 하게 돼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Q. 이번 작품에서 많은 어린 배우들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됐다. 

A. 일단 연습에 있어서 오히려 스펀지같이 흡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랄 때가 많았어요. 연습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부분은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배울게 참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내가 저 나이 때는 뭐 했지"라는 말들을 많이 했어요. 모든 배우들이 자기가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잘 소화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연습 초반에 연출부에서 어린 아역배우들 촬영 수칙이란 걸 공유해 주셨었어요. 동등한 배우로서 대우를 하자는 이야기였죠. 그런 걸 떠나서 정말 모두가 다 너무 열심히 작품에 임하고 캐릭터를 임해줘서 큰 문제 없이 본 공연까지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에너지가 남다를 것 같다. 

A. 맞아요. 일단 쉬는 시간에 쉬지를 않더라고요. 쉬는 시간이라고 하면 자기들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춤이나 노래 연습을 하거나 한참 틱톡에 빠져서 틱톡 동영상 찍기를 했었죠. 그리고 언젠가는 스틱 아이스티에 빠져서 아이스티 만들기 대회를 하기도 했죠. 정말 끊이지 않고 폭발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죠. 

Q. 본인은 지금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가졌을까 

A. 약간 결이 다르지 않나 싶어요. 저도 아직은 선배님들에 비하면 어린 배우라고 생각하거든요. 결이 다를 뿐 비슷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걸 다 떠나서 공연을 생각하는 마음은 모두가 다 똑같지 않나 싶습니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작품 속 배역에 대해서 소개해 보자면 

A. 저는 헬렌 벡델 역을 맡았습니다. 극 중에서 30대 초중반에서 40대 초중반으로 나오고 있고, 브루스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벡델가의 안주인이죠.(웃음) 그리고 작품 속에서 정식적인 가장이 아닐까 싶어요. 연출님이랑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때 헬렌이 멋진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었거든요. 그만큼 책임감도 강하고 끝까지 가족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작품 속에서는 이혼했다는 언급은 안 나오는데 원작에서는 아빠가 죽기 2주 전에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고 나와요. 원작을 떠나서 작품으로만 봤을 때 헬렌은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어떻게 보면 책임감도 책임감이지만 자기의 고집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Q. 원작과 뮤지컬 속 헬렌은 비슷하면서 다른 것 같았다 

A. 원작 속 헬렌은 집안일을 쉬지 않고 있어요. 잠시 담배를 피우면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있지만, 대부분의 헬렌은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죠. 설거지를 하고 있거나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브루스 옆에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한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모습을 작품 속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겉으로는 강인하지만 브루스와의 결혼생활, 그리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속은 썩어가고 있죠. 그 부분들을 조율하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Q. 헬렌이 멘탈이 좋다기보다는 뭐라도 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A. 맞아요. 우선 제 자신만 봐도 힘든 상황이 다가올 때 살기 위해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하거든요. 헬렌도 똑같아요.  나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가족, 가정을 붙잡고 있죠. 그래서 집안일도 열심히 하면서 피아노도 치고, 연극 연습에 몰두하기도 해요. 나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 장소제공 커피그라인더 전시관 '말베르크'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류수화 배우와 같은 역을 맡고 있는데, 보고 배울 점이 많았을 것 같다 

A. 맞아요. 정말 너무 많았죠. 일단 사실 저는 선배님한테 감사한 게 너무 많아요. 배려를 많이 해주셨었거든요. 일단 제가 할 수 있을걸 다 해보고 나면 말씀을 해주세요. 연습 때도 옆에서 한두 마디 던저주시고 연습 막바지에 되게 조심스럽게 저한테 부족한 부분들 혹은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말해주시면서 어떤 부분은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 선배님이 정말 많이 나를 배려해 주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연기는 뭐 비교할 수도 없죠. 정말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Q. 헬렌이 브루스가 게이라는 사실은 언제 처음 알게 됐을까. 보통 클로짓 게이의 경우 결혼을 해도 아이는 안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브루스의 경우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습에 게이보다 양성애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A. 이 부분은 연출님과 가장 많이 이야기를 했던 부분이에요. 그 결과 우리는 브루스가 클로짓 게이란 걸 감추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죠. 브루스와 헬렌은 한때 정말 뜨겁게 사랑을 했을 거라고 봤어요. 브루스도 아이들을 낳을 때까지 나름대로 노력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야 이들이 뜨겁게 사랑을 했고 아이를 가졌을 거라고 봤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브루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오게 된 거죠. 어떤 특별한 사건이 없었더라도 그는 스스로 자신의 본능 혹은 성 정체성을 깨달았을 거예요. 정체성을 외면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본능에 더욱더 가까워진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사실 헬렌은 결혼한 이후로 계속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았어요. 저는 작품 속에서 헬렌은 로이라는 인물이 집에 왔을 때를 첫 시작점으로 잡고 있어요. 헬렌은 그때 로이라는 인물을 처음 보는데,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로이와 인사를 하고 장난을 치고 있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없는 사이에 몇 번 우리 집을 방문했구나'라는 걸 알게 되죠. 그때부터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어요.  

Q. 확신은 들었지만 마지막까지 믿음을 놓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A. 맞아요. 브루스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직선적으로 다가가더나 파헤치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았어요. 헬렌은 모른척하면서 브루스에게 누구냐고 이야기해요. 확신이 들었어도 대놓고 손가락질하지는 않았죠. 브루스와의 삶을 이어가면서 그 스스로 화가 나도 참고 억누르는 게 습관이 됐죠. 그런데 이게 아버지 브루스에 이어서 19살의 앨리슨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처음으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일단 이런 부분들은 류수화선배님과 다른 방향성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Q. 작품 속에서 19세의 앨리슨이 보낸 편지에 대꾸를 안 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A. 아무래도 그때 당시 사회적인 모습이 동성애라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로 보수적인 시대였었잖아요. 심지어 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는 정말 시골 중에 시골이었기 때문에 보수적인 게 극에 달했던 동네였어요. 헬렌에겐 남편에 이어 딸까지 커밍아웃을 했던 게 크게 다가왔을 거예요. 화도 났을 것 같고, 원작 속에서는 앨리슨에게 답장을 하거든요. 물론 답장을 하고 나서 앨리슨과 전화 통화에서 그가 '엄마, 답장 잘 받았어요'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에게 내가 쓴 그 답장 불에 태워버리라고 말하긴 하지만요. 헬렌에게 있어서 앨리슨의 커밍아웃은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원작과 대본 그대로 화가 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서브텍스트가 약간은 '너까지 왜 그러니? 너마저도?'라는 심정이 담기지 않았나 싶어요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 장소제공 커피그라인더 전시관 '말베르크'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헬렌은 앨리슨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성애를 하길 바랐던 걸까 

A. 되게 복잡한 감정이 오갔을 것 같아요. 극 중 '데이즈 앤 데이즈'라는 노래가 있는데, 끝말에 "너는 그러면 안 돼, 소중한 네 삶을 살아봐"라고 말해요. 부정적이었어도 결국에는 그 삶을 그대로 인정을 하니까 그렇게 노래를 마무리 짓지 않았나 싶어요.  

Q. 브루스의 죽음으로 작품이 끝난다. 작품 속에서 헬렌은 그 이후의 어떤 삶을 살아갈까 

A. 그런 말이 있잖아요.. 원 없이 사랑하고 표현했으면 미련이 안 남는다고요. 그것처럼 원작에서의 헬렌은 브루스가 죽고 나서 장례식을 치른 후에 2주 동안 모든 브루스의 흔적을 정리한다고 나와있어요. 그걸 보면서 헬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결정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애증이었을까요? 헬렌은 헬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던 것 같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펀 홈 다음에 엄마에 대한 회고록으로 나와있는데 거기서 은퇴한 정신과 의사와 연애를 또 시작하죠. 그런 모습을 다 보니 모든 게 다 헬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선택과 상황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연출님이 말씀하셨던 정말 멋진 인물의 표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 장소제공 커피그라인더 전시관 '말베르크'
사진 ⓒ 이미지훈스튜디오

 

Q.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다면? 

A. 저는 아무래도 제가 부르는 솔로곡 '데이즈 앤 데이즈'라는 곡이 아닐까 싶은데요?(웃음)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헬렌이라는 인물과 저의 실제 어머니와 공통점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엄마도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시거든요. 워낙 맞벌이하시느라 바쁘셨었고, 최근에나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고 기억도 안 나는데, 이 작품에서 '데이즈 앤 데이즈'를 부를 때 어머니가 겹쳐지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어머니가 갱년기를 겪고 계시는데 헬렌은 갱년기를 겪는 시기가 아니지만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헬렌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와 고통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죠. 그래서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어머니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배님들과 연출님이 해주시는 도움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지금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도움도 꽤 있지 않았나 싶어요. 참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지 않나 싶습니다. 

Q. 지금은 독립해서 살고 있을까 

A. 아뇨 같이 살고 있어요. 가족이 참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잖아요. 되게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세대 간의 갈등은 언제나 있었잖아요. 

Q. 뮤지컬 <펀 홈>, 다섯 글자로 말해보자면? 

A. 너무 뻔한 것 같지만, '가족희비극'이요. 이게 모든 걸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펀 홈 속에서든 실제 우리의 삶에서든 희극과 비극을 경험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생각을 해봐도 '가족희비극'이 제일 적절한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올 관객들이 어떤 이야기를 가져가고, 혹은 받아들였으면 좋을까 

A. 저는 이 작품을 첫 리딩 할 때부터 알 수 없는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우리의 삶은 다 똑같아, 너라고 다를 것 없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가족이라는 건 내가 선택해서 되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준 운명인 거잖아요. 그래서 그거에 더해서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모습들을 통해서 인간사 라는 게 다 똑같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 작품을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보고 들으시고 마지막으로 위로를 받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힘든 삶에서도 우리는 이 길을 헤쳐나가고 있다고, 우리는 다 똑같은 인간이고 사람이라고 말이죠. 모두가 잔잔한 위로를 받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촬영 장소제공 커피·그라인더 전시관 '말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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