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9화 - “나를 사랑하는 자신을 거부하죠”
[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9화 - “나를 사랑하는 자신을 거부하죠”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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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립 바이오 연구실의 휴게실에서 권익선 연구원을 만났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감색 양복과 분홍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피부가 희고 얼굴이 갸름해 부자 집 귀공자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남자답게 생긴 오민준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바쁜데 시간 내주어 고맙습니다. 나는 추리 작가입니다.”
“반갑습니다. 작가를 만난 것은 제 평생 처음입니다. 나오기 전에 선생님 작품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제가 읽은 책도 있더군요,”
“그렇습니까? 제 책을 읽었다니 영광입이다.”
나는 이 사람은 용의주도하고 철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날 사람에 대해 미리 알아보는 준비성이 있는 사람이다.
과학자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저한테서 알고 싶은 것은 바이오 기술과 범죄의 관련성 같은 것입니까?”
“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냥 만나자고 하면 거절 할까봐 일부러 소설 소재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실은 어떤 사람에 대해 물어보려고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권익선은 약간 실망한 얼굴이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시군요. 어떤 사람인지 말씀해 보세요.”
그는 미리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커피를 마시는 모양도 아주 조심스럽고 얌전하게 마셨다.
“한수지라는 여자를 아시지요? 유전자 공학 전문가 말입니다.”
내 말을 듣자 그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마음에 파란이 인 것이다.
이름만으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한국 바이오 컴퍼니의 한수지 박사를 말씀하시는 거죠? 며칠 전에 돌아가셨죠.”
“돌아가신 것을 알고 계셨군요.”
“온 매스컴이 마치 경사 난 것처럼 떠들고 들쑤셨는데 모르겠습니까?”
그는 매스컴의 보도에 크게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한수지는 저하고 미국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 동창입니다.”
“요즘 자주 만났습니까?”
“물론입니다. 서울에 있는 동기 동창은 몇 사람 없거든요. 선배는 몇 사람 있었지만...”
“사귀는 사이는 아니고요?”
내가 핵심적인 질문을 했다. 
그는 마음이 여리고 거짓말을 절대 못할 사람 같았다.
“사귄다고 하기보다, 그런 평범한 말로 우리 사이를 정의 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 이상이란 뜻인가, 아니란 뜻인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수지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은 많습니다. 차지하지 못 하면 죽이기라도 할 것 같은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게 누굽니까?”
“오민준이라고 그 회사에 있는 직원입니다. 비굴하고 치사한 인물의 표본이지요.”
“그럼 오민준이 한수지를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모르셨어요? 선생님은 추리 작가신데 그런 정도도 추리를 못 하셨어요?”
내가 오히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오민준 팀장이 한수지를 죽였다고 단정 할 수 있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증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오민준을 재판에 넘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나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증거도 없이 그런 주장을 하면 무고죄로 당할 수도 있어요.”
“무고죄란 당사자가 고소를 해야 성립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오민준은 그걸 부인하고 나를 고소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합니까?”
권익선은 엄청난 주장을 하면서도 얼굴하나 변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런 주장을 해도 아무것도 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주장을 믿고 수사를 해서 범행을 밝히면 좋고, 설사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자기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왜 그런 극단적인 말을 하는 것일까?
한수지를 둘러싸고 오민준과 권익선은 라이벌 관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권익선씨는 한수지와 어떤 관계였는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 여자는 분명히 나를 좋아합니다. 나하고 결혼 하고 싶었겠지요. 그런데 시침을 딱 떼고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자존심이죠. 나를 사랑하는 자신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나한테 고백 하는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두려워요? 왜요?”
“그런 게 그 여자다운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한수지를 만난 것은 언제였습니까?”
“나는 한수지가 살해 되던 날 여기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초보 형사 같은 질문은 하지 마세요.”
“전화로 통화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밤이면 가끔 전화를 합니다.”
“심야에도?”
“물론입니다. 줄기세포에 관한 의견이 맞서면 밤을 새워 논쟁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혹시 블루투스 앱을 다운 받아서 씁니까?”
“예. 그게 문제입니까?”
“아, 아닙니다.”
그가 블루투스를 쓴다고 해서 특별히 주시 할 것은 못된다. 과학도니까 남보다 더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심야 통화는 좀 다르다. 
18일 저녁의 핸드폰 대화도 그런 토론을 하는 전화였을까?
“한수지는 혹시 오민준을 좋아하진 않았습니까? 권익선씨 보다도...”
“그건 복잡한 문제입니다. 자, 오늘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죠. 나는 들어가 봐야 하거든요. 커피 값은 선생님이 내세요.”
권익선은 일어서 찬바람을 날리며 가버렸다. 나는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런 논리의 비약이 심한 말을 했을까?
한수지를 짝사랑하다가 상대가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니까 중심을 잡지 못한 것 아닐까. 
대신 그 책임을 라이벌이라고 스스로 정해 놓은 상대인 오민준에게로 돌리는 것 같았다.
나는 도곡동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에 곽정 형사의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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