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펀홈' 유주혜, "성 정체성? 더 중요한건 가족"
[인터뷰] '펀홈' 유주혜, "성 정체성? 더 중요한건 가족"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0.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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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펀 홈(Fun Home)>의 국내 공연이 확정됐다. 뮤지컬 <펀 홈>은 2015년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제69회 토니상'에서 베스트 뮤지컬상을 비롯해 5관왕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16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국내 라이선스 초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뮤지컬 <펀 홈>은 동명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으로, 미국 작가 앨리슨 벡델의 회고록이다. 동성애자인 아버지의 삶과 작가 자신의 레즈비언의 삶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이 한 캐릭터를 나눠서 연기를 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화자로서 과거를 회상하는 43세의 앨리슨과 보통의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는 9살의 앨리슨, 그리고 성 정체성을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감정을 폭발시키게 되는 19살의 앨리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뮤지컬 배우 유주혜는 이번 작품에서 청소년기, 19살의 앨리슨 벡델 역을 맡았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었어요. 배우라면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 만큼 너무 매력적이었고, 넘버들도 너무 좋았죠. 그래서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많은 자료들을 찾아봤던 것 같아요. 쉽게 생각하고 접근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다음은 진지하게 다가가고 있다고 덤덤하게 말하던 뮤지컬 배우 유주혜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Q. 반갑다. 시작에 앞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11년 차 배우고, 지금 <펀 홈>이라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유주혜라고 합니다.


Q. 지난해부터 쉴 틈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A. 정말 감사하게도 <키다리 아저씨>, <차미>를 만나서 쉴 틈 없이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펀 홈>이라는 작품이 올라간다는 소식에 오디션을 넣었고 합격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Q. 앞서 맡아왔던 캐릭터와는 조금 다른 선상에 서있는 인물을 맡게 된 것 같다.

A. 맞아요. 안 맡아봤던 역할이다 보니 욕심이 생겼어요. 제가 도전의식이 있는 편인데, 너무 매력적인 역할이다 보니까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배우라면 모두가 다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욕심이 생겼고, 도전했고, 정말 감사하게도 함께 할 수 있게 됐습니다.


Q. 토니 어워즈 5관왕에 빛나는 뮤지컬이지만, 국내에선 초연이다.

A. 맞아요. 오디션 공고가 나오고 나서 유튜브를 통해서 한 번 찾아봤거든요. 그런데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원작 그래픽 노블 <펀 홈>도 찾아보고 공연영상도 많이 찾아봤었던 것 같아요.

 


Q. 원작과 뮤지컬,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A. 아무래도 원작은 그래픽 노블, 만화잖아요. 그래서 장면과 이야기들이 컷씬되어 있는데 뮤지컬은 그 사이사이 살이 붙고 넘버들이 채워져 살아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 더 생동감이 있고, 조금 더 통통 튀는 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원작은 뮤지컬보다 조금 더 시크하고 정제된 느낌이거든요. 원작도 매력이 있지만, 뮤지컬도 또 다른 매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Q. 원작에서 조금이라도 챙겨가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면?

A. 아무래도 실존 인물이었던 엘리슨 벡델이라는 실존 인물의 회고록인 만큼, 이 인물이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주제나 정서 등을 챙겨가고 싶었어요. 이런 디테일적인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싶었어요.


Q. 어려웠던 점은?

A. 아무래도 현실 속 제 삶과 작품 속 엘리슨의 삶이 전혀 다르다는 거였어요. 아니 삶이라기보다는 상황이랄까요. 작품 속 엘리슨은 장례식을 운영하고 있고 아버지는 게이죠. 현실 속의 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보니 영화나 미드, 유튜브 등을 많이 찾아봤던 것 같아요. 장례와 장의사와 관련된 자료들도 찾아봤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조금 어렵지 않았나 싶어요.


Q. 맡은 배역에 대해 소개하자면

A. 네, 저는 앨리슨 벡델이라는 역할의 청소년기, 19세 때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열아홉 살의 앨리슨 벡델인거죠. 이 시기에 저는 커밍아웃을 하게 되고, 성 정체성을 깨달아요. 부모님에게도 커밍아웃을 하고, 아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되죠.

사진 = 달컴퍼니
사진 = 달컴퍼니


Q. 작품 속에서 언제 처음 성과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은 겪나

A. 뮤지컬에서 9세의 앨리슨이 나와요. 그때 아빠랑 같이 음식점에 갔는데, 거기에서 어떤 짧은 머리, 워커 부츠, 가죽 옷을 입고 온 여자를 보고 “아, 내가 원하는 게 저런 모습이야!”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때 처음 무언가를 느끼게 되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깨닫고 있지 않았나 싶었어요. 그런데 '무엇이다'라는 확신은 서지 않았었죠. 청소년기에 들어설 때까지 앨리슨은 ‘나는 왜 그렇지?’, ‘어, 나는 왜 이러지?’라는 의문은 계속 가져왔어요.


Q. 그 의문점들의 기폭제가 터지는 사건이 생기는 걸까

A. 맞아요. 여자친구가 생겨요.(웃음)


Q. 작품 속에서처럼 내 삶을 뒤흔든 경험 혹은 사건이 있다면?

A. 제 삶을 뒤흔든 경험이요? 사실 저는 살아오면서 뭔가 큰 사건사고는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을 해보면 어렸을 때 합창단을 하고, 어린이 뮤지컬을 했었는데 이런 경험들이 특별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제가 되지 않았나 싶거든요. 처음엔 부모님이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시작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Q. 노래부르는걸 좋아했다보다.

A. 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친구들보다 흥이 더 많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춤추는 것도 좋아했고요.


Q. 학교는 예술계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했을까

A. 아뇨, 저는 문과생입니다! 일반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했었어요.


Q. 그럼 언제 처음 배우가 되겠다는 결정을 했나

A.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진로에 대해서 결정을 해야 할 시기가 오잖아요. 어떤 일을 하고 싶고 무슨 과를 가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시기에 공부보다는 공연에 더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교를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졸업 이후 데뷔를 하게 됐죠.

 

 


Q. 외국과 국내, 동성애와 관련해 인식이 조금 다르다. 

A. 제가 여중, 여고를 나왔거든요. 사실 어렸을 때는 동성애와 관련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냥 친구들끼리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게 친밀도의 표현 중 하나였다랄까요. 외국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저는 크게 다가왔던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문화와 관련해서 외국에서 반응하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Q. (인터뷰 당시) 첫 런을 돌았다고 들었다. 다양한 감정이 오갔을 것 같은데

A. 우리 가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족이라는 것이 모든 걸 거리낌 없이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여야 되는데, 사실 모든 걸 털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우리 모두가 집이라는 공간, 가족들 간에서도 많은 상황이 생기고 그 속에서 오해가 쌓이기도 하고, 사랑을 느끼고, 화를 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가족들이 많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연습이 끝나고 난 뒤 엄마와 아빠한테 전화를 한 번씩 걸었습니다.(웃음)


Q. 아역 배우들과의 호흡은?

A. 정말 너~무 귀엽고, 너~ 무 잘해요. 정말로 거짓말 하나 없이 저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고 배우고 있어요. 확실히 이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감정들과 집중력이 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치질 않는 에너지가 있어요. 사실 극 중에서 아역 배우들과 같이 무대에 올라가는 장면은 없는데 너무 잘하다 보니까 저도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있지 않나 싶어요.

사진 = 달컴퍼니
사진 = 달 컴퍼니

 

Q. 좋아하는 곡 혹은 작품을 관통하는 곡이 있다면?

A. 정말 모든 곡들이 다 너무 좋아요. 그래서 매일 바뀌지 않나 싶어요. 그중에서 꼽아보자면 일단 'Come To The Fun Home'이라는 곡이 제일 처음에 있지 않나 싶어요. 이게 어린 엘리슨이 우리 장례식장을 광고하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멜로디도 좋고 아역 배우들 모두 너무 잘해서 손뼉 치면서 보고 있어요.

그리고 작품을 관통하는 내용이 담긴 곡은 'Telephone Wire'라는 곡이 아닌가 싶어요. 아빠와 딸이 드라이브를 하면서 대화하는 게 담긴 곡인데, 딸은 아빠에게 아빠는 딸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해요.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부녀의 모습이 담기는데, 뭔가 아빠와 딸을 넘어서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Q. <펀 홈>, 제목처럼 가족 간의 이야기가 주 메시지처럼 느껴지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A. 이 작품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있는 것 같고, 느꼈어요.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한데, 그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있거든요. 부모님, 나의 엄마와 나의 아빠이기 이전에 이들도 하나의 인격체고 사람인 거잖아요. 우리들은 엄마와 아빠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엄마와 아빠로 묶어버리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고, 캐릭터가 있고 아빠도 그렇고요. 이 작품을 하면서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가, 아빠가 기뻐하는 게 뭘까라는 생각들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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