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8화 - 나는 범인을 안다
[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8화 - 나는 범인을 안다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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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권익선에게 관심을 가졌다.
홈페이지를 통해 국립 바이오 연구소의 전화를 알아낸 뒤 권익선과 통화 할 수가 있었다.
일부러 그의 핸드폰 번호를 쓰지 않았다.
“권익선 연구관이십니까?”
내가 목청을 가다듬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들리도록 주의 하면서 말했다.
“예. 권익선입니다. 거긴 어디죠?”
목소리가 가늘고 신경질적이었다.
사투리는 전혀 섞이지 않았다.
“나는 추리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초면에 실례지만 시간을 좀 내 주실 수 있는지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는 중인데 자문을 좀 받았으면 해서 그럽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그러세요.”
권익선은 잠깐 말이 없다가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사무실에 오시면 15분쯤은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권익선은 의외로 쉽게 접촉을 허락했다.
나는 도곡동 국립 바이오 연구소로 권익선 연구원을 만나러 가다가 시간이 남아 한국 바이오 컴퍼니에 들렸다.
마음에 걸리는 몇 가지를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사장실에 들렸을 때 변하진 사장과 이정근 이사, 그리고 장주석 연구원 등 회사 임직원 세 명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작가님 어서 오십시오;”
장주석이 그 육중하고 장대한 체구를 가볍게 일으키며 인사를 했다.
“무슨 중요한 회의를 하십니까?”
내가 주춤하자 사장이 손을 내 저었다.
“아닙니다. 그냥 잡담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쪽으로 좀 앉으십시오.”
변하진 사장이 자리를 권했다.
이정근 이사는 꼼짝하지 않고 눈으로 목례만 했다.
깡마른 체구에 얼른 보면 나한테 무슨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평소 태도라는 것을 뒤에 알았다.
“장 연구원은 힘도 보통이 아니지요? 사내 체육대회 같은 것 열리면 일당백이겠어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체중이라야 겨우 백 킬로그램 좀 넘는 걸요.”
“백 킬로? 적은 체중이야?”
모두 웃었다.                                            
“그런데 범인의 윤곽은 잡으셨나요? 소설로 치면 재미있는 사건이지요?”
변 사장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했다.                                    
“아직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모인 김에 좀 여쭈겠습니다.”                                                                          
내가 말을 꺼내고 세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이정근 이사는 역시 꼼짝 않고 불만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날 마석 연수원에서의 일인데요, 한수지 팀장이 옆방으로 옷을 갈아입으러 간 뒤 회의를 하셨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다른 잡담은 없었나요? 회사 이야기라던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지만 그날은 연구 보고 회의였습니다.”
변 사장이 약간 열을 받는 것 같았다.
“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성과 검토 회의였단 말씀이지요? 시간이 30분쯤 되었나요? 한수지 팀장이 빠진 채 말입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장석주가 대답했다.
“그 중간에 혹시 누가 밖에 나갔다가 온 일은 없나요?”
내가 다시 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놓치지 않고 훑어보았다.
“글쎄요... 아아, 있어요.”
장주석 씨가 생각 난 것 같았다.
“이정근 이사가 잠깐 나갔다가 왔지요. 우리가 꽤 오래 있다가 들어 온 것 같은 데요. 하긴 이 이사는 연구 성과 이야기는 별 상관이 없으니까요.”
장주석이 말을 하면서 이정근의 얼굴을 보았다.
그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앉아 있던 이정근이 입을 열었다.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게 뭐 이상합니까?”
이정근은 몹시 기분이 나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닙니다. 하지만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던데 반시간이나 들어오지 않았다면 너무 긴 시간 아닙니까? 다른 볼 일이라도 있었나요?”
내가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람들, 참. 별걸 다 가지고 따지네. 그럼 내가 한수지 씨 옷 갈아입는 것이나 몰래 훔쳐보고 온 사람 같아요? 소설가 선생. 엉뚱한 상상 마시고 소설이나 잘 쓰세요.”
이정근은 입가에 냉소 가은 것을 띠고 말했다. 
“뭘 따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용서 하세요.”
나는 슬그머니 일어서서 그 자리를 피했다.
더 있다가는 이정근 이사한테 험한 소리를 들을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회사를 나오다가 오민준과 마주쳤다.
“언제 오셨습니까? 지금 가시는 길입니까?”
오 팀장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앞집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하시겠습니까?”
오 팀장은 내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것을 안 것 같았다.
우리는 슈퍼 앞 의자에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았다.
“이정근 이사가 저기압이던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가 물었다.
아직도 새침한 표정으로 도사리고 있던 이정근 모습이 나를 찜찜하게 했다.
“왜요? 기분 나쁜 말이라도 했나요?”
“나한테 무슨 감정이 있는 사람 같았어.”
“오전에 장주석씨와 한바탕 붙었어요.”
“왜?”
“죽은 한수지 팀장 이야기가 나오자 이 이사가 약간 빈정댔거든요,”
“뭐라고 했길래?”
“여자가 얼굴 좀 된다고 코를 세우고 다니면 큰코다친다고 빈정거렸어요.”
“그래서?”
“듣고 있던 장주석씨가 죽은 사람 두고 무슨 험담이냐고 핀잔을 주었지요. 그랬더니 당신 한수지 꽁무니 따라 다니더니 편드는 거냐고 내 뱉었지요.”
“뭐? 장주석씨가 한수지 팀장을 좋아했다는 뜻인가?”
“그냥 좀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30대 초반의 기혼자인데, 별거중이라던가... 한수지 같은 미인한테 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래 다른 사람이 알 정도로 표 나게 여자를 좋아했다면 보통 일이 아니지.”
“그러다가 까칠한 한수지의 가시에 찔리기도 했지요.”
“가시에 찔려?”
“아무도 없는 휴게실 같은 데서 서로 다투는 것을 몇 번 보았어요. 장주석씨도 꼼꼼하고 까칠해서 둘이 부딪치면 싸우게 되지요.”
“둘이 서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고?”
“아이고 선생님도, 한수지가 그 코끼리 같은 사나이를 좋아하겠어요?”
“남녀 관계란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야.”
나는 오민준과 헤어지고 권익선을 만나러 가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다시 되풀이해서 생각해 보았다.
장주석과 이 이사가 껄끄러운 사이인 것은 한수지가 가운데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못 먹는 감이된 한수지를 비아냥거리는 이 이사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은 장주석은 나름대로 한수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이 남몰래 사귀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한수지를 둘러싸고 변하진 사장 이하 네 사나이가 뜨거운 경쟁을 한 것은 짐작이 간다. 
어쩌면 이 네 남자 중에 범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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