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추리 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7화- 두 여자와 여러 남자
[과학 추리 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7화- 두 여자와 여러 남자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0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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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권익선이라는 사람과 밤 11시 부터 1시 34분까지 통화를 했다.
상대는 국립 바이오 연구소에 있는 권익선이라는 남자였다.
또 한사람은 뜻밖에도 오민준이었다. 
19일.
그러니까 피살되기 5일 전이었다.
한수지가 건 전화였다.
12시 5분부터 2시 10분까지 그러니까 2시간 5분이나 통화를 했다.
미혼의 여자가 밤을 새워가며 남자와 통화를 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특별한 관계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통화 내용을 좀 알아 볼 수 있을까?”
곽정 형사한테 물어 보았다.
“그게 말이야, 통신 비밀 보호법인가 뭔가 때문에 마음대로 알 수가 없어. 통신사에서 함부로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판사의 영장이 필요하거든.”
“그럼 영장 받아서 입수 해야지.”
내가 어이없어하면서 곽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게 말이야... ”
곽정 형사는 머리를 긁적긁적하다가 말을 계속했다.
“수사과장이 그러지 말래. 괜히 검사한테 한소리 듣게 된다는 거야. 뭐 특별한 용의점도 없는데 함부로 남의 통신을 보자고 하는 것은 과잉 수사로 찍힐 가능성이 있다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인권단체나 국회 같은 데서 개인 통신의 비밀을 함부로 수사 자료로 뒤져 본다고 비난을 하지 않는가.
“그럼 그 권익선이라는 남자에 대해서는 진술 같은 것을 받아 보았나?”
“응. 전화 통화한 일이 있지. 참고인 진술을 좀 받으려고 했는데 거절하더군.”
“통화 사실은 이정하나?”
“그것도 아니야. 말 할 수 없다는 거야. 참고인으로 좀 나와 달라고 했더니 자기는 공무원이라 윗사람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거야.”
“와! 골 때리네. 그래가지고 무슨 수사를 하나?”
“하지만 한수지가 타살이라는 아무 증거도 없고, 참고인이나 피의자 진술을 받으려 해도 소환하거나 압수 수색 영장 받을 건더기가 없단 말이야.”
나는 경찰 수사, 아니 공권력의 무력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내가 직접 나사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꼭 써주어야 할 소설 원고가 많이 있지만 모두 미루고 이 사건의 진상을 캐는데 전력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오민준과 심야에 2시간 이상이나 통화를 했다는 것은 사귀는 사이거나, 사귀다가 금이 간 것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바이오 연구소의 권익선이라는 남자도 심야에 한 시간 이상 통화를 했다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닌가.
그러나 통화를 했다고 해서 혐의점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압수 수색 영장을 신청해도 판사가 허가하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차라리 공무원이 아닌 내가 나서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카드 사용 명세는 조사해 보았나?”
“지금도 대조를 하고 있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거액을 주고받은 기록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든.”
“액수가 문제가 아니고 거래를 한 사람이 누구냐가 문제일 텐데...”
“좀 수상한 금전 수수가 있기는 있는데 더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아.”

곽정은 구체적인 것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의심스러운 것은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다음에 다시 밝히기로 하고 나는 국립 바이오 연구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서 조직이나 업무 등을 살펴보았다.
줄기세포 연구를 위주로 해외에 흩어져 있는 두뇌를 유치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문제의 권익선은 유전자 복제 연구팀의 연구위원이었다.
학력이나 나이 등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우선 이 사람에 대해서는 오민준이 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남자는 한수지를 둘러싼 삼각관계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민준씨, 오늘 어때? 기러기 백숙을 잘하는 집을 아는데 함께 소주나 한잔 할까?”
내가 퇴근 무렵이 되어 전화를 걸자 오민준은 반가워했다.
나는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 뒷골목의 기러기 백숙 집으로 갔다.
값은 좀 비싸지만 기러기 고기 맛도 아주 괜찮았다.
“한수지에 대한 수사는 진도가 좀 나갔습니까?”
소주를 두어 잔 마시고나자 오민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권익선이라는 사람을 모르나?”
“권익선이라고요? 권익선?”
“유전자 공학 연구소에 있는...”
내가 말을 하면서 오 팀장의 표정을 살폈다.
오 팀장이 잠깐 생각하다가 미소를 머금었다.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국립 바이오 연구소에 있는 권익선씨 말씀이지요.”
“맞아.”
“그 사람은 왜요?”
“그 사람은 나이가 얼마나 되나?”
나는 변죽부터 울리기 시작했다.
“한수지와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 동기니까 잘해야 서른 정도?”
“그래? 그 유명한 수재들이 다니는 토머스 제퍼슨, 한수지 팀장과 동창이야?”
“그래서 한두 번 자리를 함께 한 일이 있어요. 수지는 걔와 동생 영지를 좀 엮어줄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나한테 잘 안되니까 그쪽으로 눈을 돌렸어요.”
“음. 그랬구나.”
“그런데 왜 걔 이야기가 갑자기 나오나요?”
“한수지와 혹시 사귀는 사이 아니었나?”
“예? 나도 그 점이 궁금했어요. 그러나 아닐 거예요. 권익선도 수지보다는 영지를 더 좋아했거든요.”
“인물은 영지가 더 예뻤다니까 그럴 수도 있겠는데.”
“영지는 인물값 하느라고 사귀다가 버린 남자도 많아요.”
나는 그날도 오민준과 2차까지 술을 마시러 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오 팀장이 한수지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증의 세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증오로 변하고 증오는 복수로 이어진다고 한다.
혹시 오민준이 범인은 아닐까?

그러나 오 팀장과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오면서 그럴만한 단서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는데 의심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여보, 출판사에서 원고 어떻게 되었느냐고 전화가 빗발쳤어요. 왜 핸드폰은 두고 다니세요?”
집에 들어오자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한수지 사건에 흥미를 느껴 그것 캐러 다니느라고 원고 쓰는 일을 미루어 두었는데 아내가 독촉을 받은 모양이다.
“당분간 쓰기 힘들겠는데...”
“그거 인터넷으로 연재하는 것 아니예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러 다니기에 밤마다 이렇게 술에 떡이 되어 다녀요? 출판사를 어렵게 만들지 마세요.”
“내일은 좀 써야겠는데...”
나는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이튿날.
소설 1회분을 써서 e메일로 보내고 오후 늦게 곽정 형사의 사무실로 갔다.
“가장 핵심적인 수사의 단서는 그 문제의 블루투스에 있는 것 같은데...”
“나는 24일 15시 이후에 죽는다고 한 그 메시지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생뚱맞은 메시지야.”
“문자의 문맥은 ‘나는...’ 이라고 했으니 자신이 쓴 것으로 보이도록 한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없으니 무슨 의도로 그런 걸 남겼을까?”
“문제는 본인이 하지 않았으면 누가 왜 그런 이상한 방법으로 다잉 메시지를 남겼느냐 하는 것이지.”
“아마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그런 유치한 장난을 했는지도 모르지.”
“IoT와 블루투스의 BLE를 설치해서 그런 문자를 나오게 하자면 상당한 기술이 있는 사람의 짓이라고 봐야지.”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주 엉뚱한 짓을 함으로서 이 사건이 화제가 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엽기적인 사건으로 보임으로서 한수지의 죽음이 세상의 화제가 되게 하려는 범인의 속셈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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