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렇게 망했다!
그는 이렇게 망했다!
  • 한국증권신문
  • 승인 200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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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증권회사에 입사한 것이 94년. 종합지수 1,000P를 눈앞에 두고, 호황이니 경제적 안정이니 하는 말들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던 시절이었다. 입사 후 6개월 만에 주가가 200P 치솟아 사상최고치인 1,120P에 다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니 사회초년생인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어느 때 보다 큰 꿈을 꾸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후인 97년 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저 참혹하고 암담하다고 밖에 표현되지 않을 IMF 시기로 들어서게 되고, 끝이 없을 듯한 주가급락은 시작되었다. 그 여세에 일반 투자자들은 물론 시장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도 IMF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때 보다 많은 좌절과 실패가 예고 없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S증권 올림픽지점의 I대리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였다. I대리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아마추어 바둑 4단, 아마 권투 4강 진출, 당구 400 등의 화려한 이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증권사 입사도 ‘바둑특기’라는 비범한 방법으로 이룬 사람이었다. 그의 화려한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잡기에 능하고 활동적이며 사교성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일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주식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여 오전 매매만 10회 이상, 오후 매매도 역시 10회 이상의 성과를 올려 증권사 직원으로서는 약정1)으로 상위권에 랭크 될 정도였다. * 1) 약정 : 매매 회전율을 일컬음. 매매 회전율이 높은 사람일수록 인사고과 및 인센티브에서 유리한 입장을 점할 수 있다 그러한 I대리도 다른 증권사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IMF라는 시대적 상황은 피해 갈 수 없었다. 당시엔 거래량이 100주에서 1,000주 정도로 하한가만 2,30일 지속되는 종목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증권사 직원들은 보통때와 다름없이 약정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답답한 속에 여러가지 위험수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기는 I대리도 마찬가지.. 그도 한가지 승부수를 띄워 볼 모양이었다. I대리 : 임택씨, 혹시 A건설주에 대해 들은 이야기 있나? 필자 : 전혀 없는데요. I대리 : 내가 최근에 선수들을 만났는데, 얘네들이 A종목 때문에 완전히 망가졌더라고 불쌍하더라.. 당시 A건설주는 25일 동안 계속 하락만 하다가 잠시 멈춘 뒤 며칠간 대량거래가 터진 후 횡보를 하고 있던 종목이었다. 필자 : 그래요? 근데 그런게 뭐 이 종목 뿐인가요? 여러 사람 쓰러졌잖아요. 선수들이 자살 안하는게 다행이라 보는데.. I대리 : 그래서 하는 이야기 인데, 이 종목 대주2)를 하면 어떨까? 내 생각에는 꽤 돈이 될 것 같은데.. 필자 : 그래도..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 2) 대주 : 증권회사에서 투자자에게 빌려주는 주식. 향후 주가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에 대해 먼저 회사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주가가 하락했을 때, 싼 가격에 다시 매수하여 상환하는 것으로서 주가하락분에 대해 매매이익을 얻을 수 있음 필자의 우려 섞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I대리는 끝내 그 종목에 대주를 했다. 결과는 우려한 대로였다. 대주한 A건설주는 구입 시점에서 얼마동안 계속 하락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시 급반등을 시작하더니 원래가격으로 되돌아 와 버렸고, 결국 I대리는 쪽박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쪽박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I대리는 회사 동료와 맞보증으로 대출을 받아 주식을 하고 있던 터였다. 문제는 보증이 ‘단순 맞보증’이 아닌 삼중, 사중 혹은 그 이상으로 얽혀진 일명 ‘거미줄 보증’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증권사에서 연쇄보증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만약 보증인 중 한명이라도 쓰러지면 도미노 넘어가듯 모두에게 피해가 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지만, 그 폭탄을 안고도 연쇄보증은 계속되었다. 헌데 그 폭탄이 I대리의 쪽박 시점에서 터지게 된 것이다. I대리가 보증을 서주었던 동료가 행방불명 되고, 예상대로 직원들의 연쇄부도는 시작되고, 이미 본인의 부채에 허덕이고 I대리에게 보증인의 부채까지 떠안겨지면서 상황은 비극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신용불량자’라는 사회적 낙인과 ‘이혼’이라는 커다란 상처 뿐. I대리는 아직도 당시의 부채로 인한 그늘에 살고 있다. 일이 있은 후 행방을 확인 할 수 없게 된 I대리는, 지방 기차역 노숙자 혹은 산사의 스님이 되었다는 소문만 간간히 들려올 뿐이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신용거래의 함정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증권시장 상승기에는 신용거래가 상당히 매력적인 방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더 큰 위험성에 노출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투자자가 가진 돈에 두세 배 정도 주식을 더 매입할 수 있다는 함정에 빠져 훨씬 큰 리스크를 만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보수집과 테크닉 면에서도 문제다. 우리 같은 일반투자자들은 정보나 투자 테크닉 등 여러가지 면에서 전문투자가들인 기관과 외국인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즉, 같은 시장에 참여해도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는 일반투자자들에게 훨씬 잦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용거래는 쪽박의 지름길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점에서 대주거래도 신용거래와 마찬가지이다. 감당할 수 없는 범위에서의 거래는 절대 위험을 동반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채 거래에 뛰어드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단지 돈이 좀 될 것 같다는 ‘단순긍정적’인 믿음에 마음이 기울어 위험성을 좀처럼 느끼지 못할 뿐이다. I대리가 대주 이야기를 꺼낼 때 필자는 분명 위험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거래를 마음먹은 그를 다시 돌릴 수는 없었다. 도박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이와 같다고 한다. 배팅하기 전이나 타인이 배팅하는 것을 지켜 볼 때에는 손해의 위험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지만 배팅방법과 액수를 스스로 마음 먹은 후에는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위험성을 본인만은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대신에 딸 수 있다는 강하고 분명한 믿음만 남게 되는 것이다. 주식투자가 다른 금융재테크에 비해 어느정도 모험가 정신을 필요로 한다고들 말하지만 재테크가 도박과 비교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뭐든 무리한 것은 탈이 나게 되어있다. 능력범위에 있지도 않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식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장기간 성실하게 투자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투자의 룰(Rule)에 충실하자. 그리고 주식이든 보증이든 자신의 능력범위를 과대평가 하지 말자. 특히 보증은 패가망신, 인생쪽박의 확실한 지름길이니 현명하게 피하는 방법을 선택하자.자료제공 : 슈어넷작성자 : 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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