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53화- 정사 영화 찍을 때는
[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53화- 정사 영화 찍을 때는
  • 이상우
  • 승인 2020.0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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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난 박민수는 얼굴이 상기되었다. 밤이라 조민지는 느끼지 못했지만 박민수는 상기되어 술 한 잔 한 사람 같았다.
“타요. 배고프지 않아요?”
박민수가 차 문을 열어주고 돌아가서 운전대에 앉으며 말했다.
“영화 재미있었어요?”
“싸우는 장면이 80프로야. 조폭 영화지 뭐.”
박민수가 시들하게 말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한 섹스 장면은 싹 무시하는 말투였다.
“조폭 영화가 아니라 정사 영화잖아요? 어쩌면 그렇게 진짜처럼 신나게 할까?”
조민지는 정말 그 장면이 신기했다. 남녀가 다 이름 있는 스타들인데 진짜로 삽입을 하고 감정을 느껴가면서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저런 장면도 CG로 만든단 말인가.
“민지씨는 경험 전무, 상상 전무, 포르노 라이브 쇼 관람 전무일 텐데 상상이 안가죠.”
“치이. 박 선배는 뭐 장가갔나? 총각 시절 군 입대하기 전에 친구 따라가 여자 사서 겨우 딱지 뗀 정도 아닌가요?”
“에이, 너무 저질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경험도 없거든요.”
“왜요?”
“혼자 살다가 혼자 입영하러 걸어 들어갔거든.”
“그럼 지금까지 경험 전무겠네.”
“노코멘트. 상상에 맡겨요.”
조민지는 박민수가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 군대 갈 때도 혼자 결정하고 혼자 걸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찍을 때 말이야....”
“말해요. 운전에 지장이 없다면.”
“조감독 한다는 형한테 들었는데...”
“아까 영화에서 본 것 같은 그거 하는 장면 찍을 때는 가끔 사고가 난대요.”
“사고라니요?”
“한참 열 올려 작업 할 때는...”
“열 올리는 척 하는 것 아냐?”
“아니지, 감독이 더 실감, 더 실감 하고 쪼아 대면 진짜처럼 몰입하게 된대요.”
“그래서 무슨 사고? 심장마비? 사정?”
“에이, 그런 게 아니고 남자 거시기가 어느새 여자 거기로 쑥 들어가 버린대. 아무리 연기라도 서로 마찰하면 커지고 흐르고 하지 않겠어요? 잔뜩 부푼 남자 대포가 잘못 들어간 것이지. 오입!”
“ㅋㅋㅋ.”
조민지가 입을 가리고 크게 웃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고 예방 작업을 하고 시작했다.”
“예방 작업? 내시처럼 잘라 버리나?”
“에이 무슨. ㅋㅋㅋ...”
“반창고로 못 들어가게 거기를 꽉 틀어막아 버린대.”
“연기하다가 진짜 연애 하는 사람들도 꽤 있겠어요. 안 그래요?”

조민지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기분이 좀 좋아졌다. 박민수가 부하 직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직장 선배, 아니 오빠 후보생? 잘 하면 진짜 썸 타는 남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 더 그런 걸 느꼈다.
“어디로 가는데요?”
“부드러운 스테이크와 양주 한잔 하러 가요. 서울 야경이 잘 보이는 곳으로.”
“거기가 어딘데요?”
“민지씨가 아마 한 번도 못 가본 곳일 겁니다.”
자동차는 올림픽 도로로 접어들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헤치면서 천천히 잠실 쪽으로 달렸다. 왼쪽에 보이는 한강은 고층 빌딩의 불빛이 파도에 아롱져 요정이 춤추는 것 같았다.
조민지는 회사 일이고 순지 일이고 모두 잠시 잊었다. 연인과 함께 가을밤을 드라이브 하는 분위를 만끽하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잠실 가까이 오자 차가 전용도로를 벗어나 오른쪽을 향했다.
차는 엄청나게 높은 빌딩 앞에 닿았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굉장히 넓어 어디가 어딘지, 여기가 몇 층인지 모를 정도로 한참 내려갔다.
마침내 차를 세우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조민지는 박민수에게 팔짱을 꼈다.
엘리베이터는 한참 동안 올라갔다. 얼마나 높은 건물이기에 이렇게 오래 움직인단 말인가.
조민지는 머리를 박민구의 어깨에 기댔다. 박민수는 키가 큰 편이라 조민지의 머리는 박민수의 어깨까지는 닿지 않아 팔뚝에 기대졌다.
포근했다. 잠들고 싶었다.
고교 시절 동생 순지를 데리고 집을 나온 뒤 민지는 항상 혼자였다. 자기가 가장이라는 중압감을 느끼고 살았다.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늘 온 몸과 신경이 곤두 서 있어야 했다.
이제 모든 것을 누구에게 넘기고 편안하게 잠시나마 잠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다 왔어요.”
엘리베이터가 섰다. 문이 열렸다.
눈앞에 넓고 휘황찬란한 홀이 전개 되었다
“두 분 이리로 오십시오.”
웨이터가 친절하게 안내했다. 두 사람은 많은 테이블을 지나 창가에 가서 앉았다.
“우와!”
“좋지요.”
조민지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탄성을 올렸다. 한강과 함께 별빛 수억 개가 모인 것 같은 서울의 야경이 멀리 펼쳐졌다. 그야 말로 별세계에 온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예요?”
“새로 생긴 재벌 그룹의 건물입니다. 걱정스러운 현실 같은 것은 여기서는 안 보입니다”
“아, 여기가 거기군요.”
조민지는 강원 그룹 박운혁 회장을 따라 점심 먹으러 여기 온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낮이었고 강 쪽 창이 아니었다.
밤과 낮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조민지는 박민수의 얼굴이 오늘 밤처럼 멋있어 보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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