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비평] 집값만 올린 ‘투기대책’…후유증도 고려를
[이원두 경제비평] 집값만 올린 ‘투기대책’…후유증도 고려를
  • 이원두 고문
  • 승인 2020.0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절대로지지 않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면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확대하고 전월세 상한제와 세부담 강화, 규제지역 추가지정 등도 고려할 뜻을 비쳤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2005년 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언급한 데 이어 두 번째이다. 전쟁으로 표현할 정도로 배수진을 친 결의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현 상태에서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는 것은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 놓을 때 마다 집값만 부추기는 결과로 끝났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도심 집값은 최근 3년 동안 무려 44%나 폭등하여 세계 4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도시 통계 비교 사이트인 ‘넘베오’가 분석한 자료다. KB국민은행이 매월 발표하는 ‘월간 주택가격 동향’ 등으로 보아도 서울 집값은 6년째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내 놓을 때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부동산 시장진단이 잘 못된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은 고소득층, 중산층, 서민층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는 이러한 소득별 구분이 없어졌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대 단지 중심의 대량공급이 주류를 이루면서 수요계층의 구별이 자연스럽게 살아진데 데 있다.

보다 깊이 파고들면 마치 백화점에서 쇼핑하듯이 아파트를 사고파는 관행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계약금, 중도금, 잔금 형식의 거래 방식은 신규 분양의 경우는 몇 해 걸리지만 기존 주택의 경우는 대개 한 두 달 만에 매듭지어진다. 또 ‘전세’라는 한국 특유의 제도로 인해 이른바 ‘갭 투자’라는 독특한 거래 방식도 발달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정책적 제도적 배려가 전혀 없는 데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30년 전후의 장기주택자금을 융자해 주는 제도가 발달되어 있다. 민간 은행을 통해 공급하는 이 장기주택할부 자금은 봉급생활자를 비롯하여 안정적 소득이 있는 중산층 서민층이 ‘내 집 마련’의 길이 된다. 일정규모의 내 돈만 있으면 이를 종자돈으로 삼아 대출을 받아 땅을 사 집을 지은 다음 장기에 걸쳐 원금과 이자를 매 월 갚아 나간다. 대개 직장 정년과 주택금융 할부 완제가 거의 때를 같이 한다.

우리나라처럼 갭 투자나 투기가 비집고 들 틈이 그 만큼 줄어 들 수밖에 없다. 우리도 ‘부동산 투기 전쟁’을 벌이기 전에 중산‧ 서민층 상대로 장기 할부주택융자 제도를 도입한다면 집값 안정뿐만 아니라 금융권도 안정적 대출고객 확보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빈부 격차는 단순히 소득과 관련 된 문제가 아니다. 주택도 빈부격차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뉴욕시의 최근 10년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밝혀져 주목을 받고 있다. 시 당국이 보관하고 있는 식비 주택 보조에 관한 기록을 분석, 주택보조는 5‧9포인트, 식비는 3‧2포인트의 비중을 두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7년의 빈곤률이 5년 전에 비해 1.7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뉴욕이나 다른 선진국이 부동산관련 제도나 정책이 우리와 다른 것은 사실이며 이는 일종의 문화의 차이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에 대한 배려 없이 ‘강력한 행정력’을 앞세운 투기와의 전쟁은 잠시 동안 숨을 죽이거나 풍선효과만 확산시켰음을 우리는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또 투기를 잡는다고 은행 대출까지 막는다면 여전히 부동산 담보 대출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 금융권이 겪어야 할 후유증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9억이 넘는 집을 살 때에는 자금조달을 증빙해야 할 서류만 15가지나 제출해야 한다면 이는 사생활 보호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유이할 대목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문제점은 강남 3구에 수요가 몰리는 데 있다. 그러나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에서 교육을 비롯한 이른바 ‘계층 상승의 사다리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곳으로 수요가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주택시장의 특성과 주책거래의 관행 시정 없이 표면에 나타난 현상에만 집중하는 것은 결국 실패의 반복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책의 효과가 안 나타나면 대책의 강도를 높일 것이 아니라 처방을 바꾸는 것이 명의가 할 일임을 알아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