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비평] 저성장‧저물가…‘마른수건 짜듯’나선 정부
[이원두 경제비평] 저성장‧저물가…‘마른수건 짜듯’나선 정부
  • 이원두 고문
  • 승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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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수건도 짜서’쓰자는 것은 도요타 자동차의 경영 슬로건이다. 70년대 중반 안팎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선 도요타가 내건 이 슬로건은 재고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모든 외주 부품을 ‘적시 투입(Just in time)’을 뜻하는 간판 시스템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런 도요타의 경영 슬로건을 홍남기 부통령이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것도 한일관계가 아주 나쁜 이 시점에서 인용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경제부총리 입에서 ‘마른 수건을 짜서 쓰듯’ 각오를 다지고 나선 것은 우리 경제상황이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뜻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지난 4월 이후 6개월 째 ‘경기 부진’판정을 내린 자체보다 더 주목할 것은 8월 소비자 물가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 섰다는 점일 것이다. 경기 부진 또는 침체 속에서 저물가마저 겹친 것은 결국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든다는 경고음이다.

저성장은 이미 예고 된지 오래다. 정부도 성장률을 2%대 초반으로 수정한바 있으나 민간 연구기관은 이 보다 더 박한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경제연구원은 ‘최근 경제동향과 경기판단’(2019년 3분기)보고서를 통해 올 경제성장률을 2.1%로 0.4%포인트 낮추었으며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6월 발표한 전망치 2.2%에서 0.3%포인트 낮춘 1.9%를 제시했다. 외국 기관이 1%대 성장률을 제시한 적은 있으나 국내 연구기관으로서는 처음이다. 2.1%든 1.9%든 한국은행의 하반기 전망치 2.5%, 연간 성장률 2.2%임을 감안 할 때 암울한 것임에는 다르지 않다.

성장률을 계속 낮추어 잡을 수밖에 없고 거기다가 물가 상승률도 비록 일시적이나마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심화 시킨다. 성장률이 낮아지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 노릇을 해 온 수출부진에 있다. 또 수출 부진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다고 해외요인에 책임을 돌리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도요타 자동차가 ‘마른 수건도 짜서 쓰는 정신’으로 일어 선 것처럼 우리 역시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을 각오하고 나서야만 비로소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전개 해 온 경제정책의 패러다임부터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본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재정 지출을 대폭 확대했는데도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 선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충격적이다.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쉽게 말해서 소비가 그만큼 침체했다는 뜻이다.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 수익이 악화되고 이는 투자와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면 소비감소로 인한 저물가는 우리 경제의 탄력을 훼손하는 가장 나쁜 현상의 하나다. 물가가 적정선에서 오를 때 비로소 경제성장에 탄력이 붙는다. 최저임금을 그처럼 급격하게 올리고 재정 지출 역시 확대했는데도 이것이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정책의 실패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봐야 한다.

공약을 지키려고 공공요금 인상 억제를 비롯하여 전기요금을 사실상 내리고 의료 지원 확대 등 정책적 요인이 물가의 마이너스 상승률에 차지하는 비중이 0.2%나 된다. 이 모든 것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부담을 누적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한국전력과 건강보험공단을 비롯한 39개 공공기관의 올 경영 실적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3년 이래 처음으로 적자기조로 돌아섰으며 앞으로 5년간 적어도 부채가 1백 5조 늘어난 4백 98조 9천억 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적자 예산으로 인해 발행 되는 국채나 공공기관의 부채는 결국 국민이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국민의 빚’이다. 그것도 지금 이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이른바 ‘마이너스 유산’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자 정부도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경제부총리가 40여 년 전 도요타의 경용 슬로건을 앞세우면서 고용보험 기금 등 14개 기금의 운용 계획을 바꾸어 1조 6천억 원을 마련해서 내수 진작에 쓰기로 한 것이 바로 두 달 만에 또 들고 나온 경기 부양책이다. 그러나 14개 연기금의 운용계획을 바꾸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단기대책에 몰두하기 보다는 과도한 규제, 반 기업 정서확산, 강성노조 등 근본문제를 푸는 장기적인 안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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