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비평] 예산안 ‧ 연금개혁에 비친 ‘책임의 가벼움’
[이원두 경제비평] 예산안 ‧ 연금개혁에 비친 ‘책임의 가벼움’
  • 이원두 고문
  • 승인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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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예산안이 5백 13조 5천억 원에 이르는 ‘초 슈퍼 급’으로 편성된 것이나 지난 8개월간에 걸친 진통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국민연금 개혁안 합의에 실패한 것은 국민의 우려와 의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 두 가지 사안은 겉으로는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동전의 앞 뒤 면과 같은 뿌리―경제성장에 바탕을 둔 소득문제와 연결된 동일한 문제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새해 예산안은 사상 처음으로 5백조 원을 돌파한 규모이지만 세수 여건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따라서 빚(국채발행)으로 메워야 하는 부정적 요인을 안고 있으며 국민연금은 현행대로라면 30년 뒤인 2057년에는 바닥을 들어낼 위기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새해 예산을 빚을 내가면서도 5백 13조 5천억 원이나 되는 대규모로 편성한 배경에는 현재 겪고 있는 경제 불안(시각에 따라서는 위기)을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급박한 사정이 자리 잡고 있으며 국민연금 또한 현행대로라면 앞으로 30년을 버티지 못할 ‘위기 상황’이다. 그런데도 근본적인 대책이 겉돌고 있는 것은 내년 총선과 그 2년 뒤의 대선을 염두에 두고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데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데 있다고 봐야 한다.

우선 새해 예산안에서 재정의 역할을 올 보다 더 확대하려는 것은 민간 부문의 탄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정책적 판단이다. 실물경제가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세수, 특히 법인세 수입이 올 보다 14조 8천 3백 9억 원이나 줄어 들 전망이며 이로 인해 전체 국세 소입 또한 2조 8천억 원이 줄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세수 감소분과 전년 대비 9%나 늘어난 세출 부문은 빚으로 메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른바 ‘수입 안에서의 지출’원칙이 깨어진 것이다. 세금 수입이 줄어 든 것은 납세자의 수입 감소를 반영한 것이며 이는 곧 바로 국가 경제 성장률의 둔화를 의미한다. 정책당국은 그 배경과 요인으로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임박한 영국의 브렉시트 등 해외여건을 꼽고 있다. 수출이 연속 3개월이나 두 자리 수로 감소하고 있어 해외요인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대내 요인에 있음은 정책 당국도 잘 알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내년 예산안이 역대 최대 규모로 커진 것은 ‘경제 활력 회복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의 반영’이라고 역설하면서 경제 활력이 털어진 요인으로 성장률 둔화, 경기 부진, 고용의 질과 분배 악화, 수출 감소를 꼽았다. 이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위기’가 해외 요인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님을 완곡하게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그 동안 추진 해 온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따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노동시간을 주 562시간으로 단축한 것 등 하나 같이 기업의 짐을 무겁게 한 것에서 근본적인 원인과 처방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정은 재정대로 건전성을 잃고 국가부채는 부채대로 급증하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 연금이 곧 바닥을 들어 낼 위기에 몰린 것은 당초부터 연급제도 도입 자체에 의미를 둔 졸속 추진에 따른 태생적인 요인도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진보성향 정당이 집권하면서부터 개혁에 착수했으나 보험료 인상은 최대한 억제하는 시각에서 방안을 찾으려니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것이다. 경사노위가 제시한 세 방안 가운데 어느 하나로 결정이 난다 하더라도 이르면 2057년, 늦어도2064년이면 연금이 바닥을 들어낸다. 따라서 세 방안 모두 개혁이라고 볼 수 없는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이 1백년을 내다보면서 후생연금과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하여 경제성장률, 기금운용 수익률, 임금 상승률 등 6개 항목을 분석하여 여섯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가 되는 대목이다.

경제의 탄력 상실을 정책적 시행착오에서 찾지 않고 해외요인만 강조하는 것이나 연금은 개혁하되 보험료율 인상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가능한 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리민복’ 실현이며 여기에는 다음세대에 부채를 떠넘기지 않는 것도 포함 된다. 그러나 정부여당을 포함한 정치권이 과연 이러한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데 얼마나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는가? 정치권, 특히 정부와 집권여당이 보여주는 ‘책임의 가벼움’은 하루라도 빨리 청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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