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비평]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가 시장 신뢰를 얻으려면
[이원두 경제비평]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가 시장 신뢰를 얻으려면
  • 최남일
  • 승인 2019.0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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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총 시즌의 최대 관심사와 화제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 행사에 나섰다는 점, 그 결과 대한항공의 오너 2세인 조양호 회장이 사내 이사 선임에서 패배, 경영권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것은 작년 7월 스튜어드 십 도입 때부터 예상 된 일이며 지난 1월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언급으로 가속이 붙었다. 비록 재무적 투자자인 국민연금이기는 하지만 보유지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기업 경영에 일부 개입하는 것(주총 의결권 적극행사)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CalPERS)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특히 대한항공 조회장 가족들이 각종 스캔들로 그 동안 국민의 지탄을 받아 온 점을 생각할 때 이번 ‘경영일선퇴진’은 속 시원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보다 냉정히 생각할 때 대한항공의 경영실적이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물을 정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전해 보다 7% 늘어난 작년 매출 12조 6천 5백억 원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며 유가 상승 속에서도 6천 9백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실적이 묻혀버린 것은 물론 조 회장 가족의 일탈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주도로 조 회장의 사내 이사 선임을 막은 것이 국민 정서에는 부응하는 일임에 틀림이 없으나 경제문제를, 기업 경영 문제를 여론이나 정서문제로 재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기업 외적인 일탈이 있다면 그것은 법에 따라 책임을 물으면 된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린 최고경영자를 물러나게 하는 것은 ‘정치적 판단’일 뿐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지만 경제가 시장을 떠나 정치의 장으로 들어 설 때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다고 해서 경제를 그런 식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의 자금 운용을 기업에 비유하면 경영에 해당된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2018년도 운용실적은 마이너스 0.92%이며 금액으로 5조 8천억 원이 넘는다. 그 만큼 손실을 봤다는 뜻이다. 이런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훼손 운운하면서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남는다. 특히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경우 가족들의 일탈행동 이외에도 2백 70억 원 규모에 이르는 기업 이익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재판에 계류되어 있다.

국민연금은 이런 일들이 ‘기업가치 훼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친 인척에게 ‘일감 몰아주기’로 20억 원의 과징금을 문 데다가 배임혐의로 고소당한 또 다른 기업 주총에서는 기권을 함으로서 그 기업 최고경영자를 신임했다. 기업에 따라 적용하는 잣대가 다른 것은 형평성 문제를 야기한다. 또 하나 국민연금이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6.5%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충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적 중립이 절대적이다.

세계중요 연기금 가운데 우리 국민연금처럼 행정부 관료(보건복지부 장관)가 의사결정 기구의장을 맡고 있는 나라는 없다. 국민의 노후자금 확보를 위해 운용되는 연금이 정부의, 그리고 정치권의 영향 아래에 있다는 것은 결단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조양호 회장의 퇴진을 불러온 주총 결과에 대해 친정부 진보 언론은 ‘주주 힘으로 황제경영 바로 잡았다’고 쾌재를 부른 반면 보수 언론은 ‘국민연금은 정권 연금 아니다’라고 날을 세운 배경 역시 연금의 정치적 중립이나 독립이 확보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 연임을 반대키로 결정하는 과정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 특히 의결권 자문 기구인 ‘수탁자 책임전문 위원회’ 일부 위원 가운데는 대한항공 주식을 보유했거나 위임을 받은 채로 회의에 참석, ‘이해 상충’ 논란을 유발한 것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연금이 앞으로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이면 적극적일수록 시장이 반발 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 그 출발점은 정부로부터 완전 독립하는데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목적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재무적 투자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바람을 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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