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12화 ‘세 단계 승진을?’
[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12화 ‘세 단계 승진을?’
  • 이상우
  • 승인 2019.0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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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사장은 민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당황했다고 할까, 아니면 기습을 당해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고나 할까.

내가 민지 양을 잘 못 보았나?”

그러나 홍 사장은 곧 표정을 바꾸고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표정을 바꿀 수 있을까하고 조민지는 속으로는 놀랐다. 저 변덕스러운 변신이 오늘 이 사람을 사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가야한다고 조민지는 결심했다.

그런데 앞으로 그 사업을 계속 유지하자면 좀 무리한 부탁이 있습니다만...”

얘기 해보아 뭐든지. 돈이 아니라니까 안 될 일이 있겠나?”

화가 났던 조민지도 표정을 풀고 그냥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상대회사의 그룹총수인 백 회장님을 카운터파트로 상대하다 보니까 평사원이라는 게 좀... 이건 어디까지나 비지니스 측면에서...”

그래 알았어. 대리로 승진 발령을 내지 당장.”

홍 사장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면서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나 조민지의 입에선 엉뚱한 말이 나왔다.

사장님. 대리나 평사원이나 별차 없는 것 같은데요. 기왕이면 그 위인 과장, 아니 과장보다는 한 칸 위인 차장이 어떻겠습니까?”

뭐야?”

홍 사장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당돌하고 간 큰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직장생활 30년에 사장 자리까지 오르면서 이런 저런 사람을 겪어 보았지만 이렇게 당돌한 사원은 처음 본 것이다. 입사 일 년도 채 안되었는데, 대리가 된다는 것도 굉장한 파격이다. 대리가 되려면, 대졸공채 사원의 경우 3년 반은 되어야 한다. 어떤 사원은 7년이 되어서야 대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대리로 승진시켜 준다는 것은 이 회사 창사이래의 대박 난 특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대리도 시시하다고, 그 위의 위인 차장 자리를 내 놓으라고 하니 홍사장이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홍 사장은 벌떡 일어서서 사장실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봐 민지!”

제 성은 조입니다.”

그래 조민지. 차장이 되려면 이 회사에 들어와 몇 년을 다녀야 되는지 알아? 십년 가까이 다녀야 차장으로 진급할 수 있어. 그것도 남자 사원의 경우 말이야. 아직 우리 회사에는 여자 차장이 나온 일이 없거든.”

사장님!”

홍 사장이 자리에 앉지 않고 뒷짐을 지고 계속 실내를 걸어 다니자 민지도 함께 일어서서 단호하고 분명하게 사장을 불렀다.

 

그뿐 아니고 말이야, 우리 회사에도 인사 규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규정에 보면...”

사장님. 저도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이상이 되어야 되고 어쩌고 하는 기준 말입니다. 그러나 인사 규정 17조 다 항에 보면 단 사장이 특별히 인정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 규정이 있지 않습니까? 그 점은 염려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사장이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사장님! 이 회사가 생긴 이래 일 년도 안 된 여사원을 차장으로 승진 시킨 전례가 없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 회사가 생긴 이래로 일 년도 안 된 사원이 비누 몇 만 상자를 정기적으로 납품시키는 길을 뚫어온 경우가 있었습니까?”

그건 그래.”

홍 사장은 난감하던 표정에서 조그만 돌파구를 발견한 듯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저를 차장으로 승진 시켜보세요. 사원 때도 이만한 실적을 올리는데 차장이 되면 얼마나 더 큰 실적을 올릴지 알 수 있습니까? 사장님은 저로 인해 그룹 내에서 더욱 유능한 경영인이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큰 회장님한테 절대적 신임을 받을 기회입니다. 뭐 큰 회장님이 저 같은 말단 사원이 한 일을 알기나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그룹 회장들이 그렇듯이 사장이 유능해서 모든 일이 잘 되는 줄만 알지요.”

큰 회장이라고 하는 것은 이 그룹을 창설한 오재명 박사를 말한다. 지금은 회장 자리에만 있지 실제로 회사 경영에 관계하지는 않는다. 다만 최고 경영자인 사장급 인사는 철저히 챙긴다. 이런 내막을 파악한 조민지가 홍 사장이 거절하기 어려운 미끼를 던진 것이다.

뭐라구? 회장님이? 흐흐흐... ”

참으로 맹랑한 조민지의 말을 들으며 홍 사장은 마침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험을 무서워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의 말이야?”

아이아코카의 말이던가요? 아무튼 이 말이 옳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이아코카는 그런 말 한 적이 없어.”

빌게이츠던가요?”

빌게이츠도 그런 말 했다는 말 들은 적 없어.”

아무래도 좋아요. 저를 좀 믿어 보세요. 최선을 다 할게요.”

조민지는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고 몸을 비비꼬면서 말했다. 여성 특유의 애교까지 부린 것이다. 남자들이면 누구나 눈길을 돌릴 수 없는 그의 알맞게 부푼 가슴을 한껏 내밀었다. 필살기를 모두 동원했다.

할 수 없군. 그러면 비상식적인 일을 한번 해 본다? 그 대신 납품을 확인한 뒤에 발령을 내지.”

홍 사장이 마침내 굴복 하는 것 같았다.

사장님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방 회사의 총수를 상대로 계약서를 쓸 사람이 저인데, 차장쯤 되어야 백 회장님도 상대하기 쉬울 것 아닙니까? 그리고 확인한 뒤에 발령을 내신다고 하시는데 인사란 절대 비밀이 필수 조건 아닙니까? 이런 파격적인 일은 소문나기가 쉬운 법이고, 기밀이 새면 성사가 안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실이 상대방 회사에 흘러 들어가면 일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 하긴 그렇군. 그럼 곧 발령을 낼 테니 계약엔 차질 없어야한다.”

사장님 제 말씀을 들어주시는 것이지요? 아이 좋아!”

 

조민지가 이번에는 단발머리 소녀처럼 깡총거렸다.

이렇게 해서 신입사원 조민지가 몇 달 만에 세 칸을 승진해서 영업부 차장으로 발령이 났다.

현관 게시판에 붙은 인사발령을 보는 사원들은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회사가 망하려면 무슨 짓을 못해.”

말세야 말세.”

능력만 있어봐, 차장 아니라 부장도 되지.”

무슨 능력?”

여자만 가진 무기를 사용하는 그런 능력 있잖아.”

ㅋㅋㅋ... 누워서 거시기 흔들기.”

저 정도 일을 저지르자면 김 부사장한테 그거 바치는 정도로는 안 될 텐데.”

부사장한테 준 것 사장한테는 못 주겠어?”

함부로 그런 소리하다가는 조민지한테 모가지 달아나는 수도 있어.”

부랄 찬 놈들 부랄 아깝다.”

해도 너무 했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심드렁한 사원들의 반응에 신경 쓸 조민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조민지를 당혹하게 만든 몇 가지 해프닝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상관으로 모시고 있던 박민수 대리가 갑자기 사표를 내버린 것이었다.

생각해 봐요. 여동생 같은 새카만 후배가 갑자기 한참 올려다봐야 할 상관이 되어 군림 했는데,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그냥 개길 수 있겠어요? 조민지, 아니 조 차장이 박민수 대리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겠어요?”

박민수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나마 들으려고 불러 낸 이규명 자재과 대리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

잘 알겠어요. 제가 드린 말씀을 박 대리에게는 하지 말아 주세요.”

조민지는 우울한 기분으로 걸어 나왔다. 영업부 사무실로 돌아와 새로 마련한 차장자리에 앉았다.

박민수. 내가 언제부터 박민수 입장 생각했나? 박민수와 내가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았으나 우울한 마음이 바뀌지는 않았다.

자기 앞에 과장 세 명, 대리 네 명, 그리고 사원 열일곱 등 스물 한명의 부하가 있다. 이 영업부에서 자기 위의 사람은 오직 이사 겸 팀장 한 사람 뿐이다. 이 얼마나 대견스럽고 뿌듯한 일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조민지는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비어 있는 박민수 대리의 책상을 건너다보았다. 서류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채 주인은 없었다.

피용자씨!”

그는 같은 사원이었지만, 선배인 피용자를 불렀다.

, 차장님 부르셨어요?”

피용자가 긴장한 얼굴로 조민지 앞에 와서 섰다. 참 신기한 일이다. 직장 조직이라는 게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여진단 말인가. 피용자는 어제의 동기생을 잊은 듯 어느새 태도가 싹 변해 있었다.

 

박민수 대리한테서 연락 없었어요?”

?”

전화라든지...”

, . 아침에 이사님께 사표 냈다면서 그냥 나가신 뒤 아무 연락 없었습니다.”

피용자는 또박또박 경어를 쓰면서 말했다.

조민지는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퇴근을 했다.

조민지는 박민수와 자주 만나 말단 사원의 설움을 곧잘 하소연 하던 대학로 카페 이 풍진 세상으로 갔다. 자욱한 연기 속을 휘 둘러 보았다. 혹시나 했으나 박민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 까짓 남자, 내가 왜 이러지...’

조민지는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조민지는 가끔 박민수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구석자리에 가서 앉았다. 맥주 한 병을 청해 마시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사표를 던진 박민수의 얼굴이 머릿속에 어른거려 견딜 수 없었다. 자기의 행동이 남자의 자존심을 그렇게 꺾을 줄은 몰랐다.

이거 조민지씨 아니요?”

그때였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체격이 좋은 남자가 앞에 와서 떡 버티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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