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직장의 신-제10화 30년 나이차이가 문제인가?
[기업소설]직장의 신-제10화 30년 나이차이가 문제인가?
  • 이상우
  • 승인 2019.0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렇게 불러 주시니 정말 제가 손녀나 된 것 같네요.”
조민지는 그렇게 말했지만 자기가 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쩐지 백 회장과의 사이가 손녀 같은 가족으로 되는 것은 싫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족이다. 그런데 손녀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싫다면? 그 보다 더 가까운 사이는 무엇인가?
‘나와 백 회장의 나이 차이가 얼만데?’
그렇다. 무려 30여년의 차이가 났다. 조민지는 백 회장과의 사이가 비즈니스를 위한 관계가 되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사귀는 사이가 되는 것은 더욱 겁이 났다. 어쩐지 가까이 할 수 없는 신비속의 남자처럼 느껴졌다.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 가서 먹으면 어떨까?”
백회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서해 주세요. 오늘은 동생과 약속이 있어서요.”
백 회장은 한 번도 집에 데리고 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상해 보였다. 조민지는 어쩐지 백회장의 집에 가서 함께 밥을 먹는 일을 미루어두고 싶었다. 
근 한 달을 백삼식 회장과 새보기를 다닌 조민지는 지금이 그때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백 회장이 가장 기분이 좋은 때는 새를 찾아 시골길을 달릴 때였다. 조민지는 경기도 이동면으로 가는 포장도로 위의 지프차 속에서 입을 열었다.
“회장님, 저 출세 좀 시켜 주시지 않겠어요?”
“응? 출세? 그래 어떻게 하면 되냐? 우리 회사로 올 생각이냐? 말해 보아. 무슨 자리든지 줄 테니. 아니 가만 있어봐. 우리 그룹에 강원재단이라고 연구재단이 있는데 그리로 오는 것이 어때. 연구실장이나 부실장쯤으로 말이야.”
백 회장의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연구실장이 얼마나 높은 거예요?”
“실장? 허허허 별것은 아니지. 다른 기업체로 간다면 부장급 정도 될지 모르지. 왜 맘에 안들어?”
“거기서는 조류에 관한 연구도 하나요?”
“물론이지.... 가만있자, 조류 연구소를 새로 만들어야 되겠구나. 민지를 거기 책임자로 하고...”
백 회장이 갑자기 묘안이라도 떠 오른 양 즐겁게 이야기했다.
“아녜요.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자리에 갈 수 있나요. 그게 아니구요...”
“그럼?”
백 회장은 연인이라도 보듯 느긋하고 정겨운 얼굴로 민지를 내려다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 회사가 비누공장인건 아시지요?”
“음. 영종유지라고 했던가? 영종그룹 중의 하나라고 했지? 제법 단단한 회사지. 거기 김 사장은 꽤 야심에 찬 사나이지. 그런데?”
조민지는 참아 입이 열리지 않아 망설였다. 처음 백 회장에게 접근 할 때는 야심찬 계략을 가지고 냉혹한 작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백 회장과 자주 만나는 동안 이런 사람을 이용해서야 쓰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메우기 시작했다. 내가 출세하는 것도 좋지만 정말 백 회장 같은 사람을....

그러나 조민지는 눈을 딱 감고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 비누 좀 팔아 주세요?”
민지는 한 달이나 별러온 말을 눈 질끈 감고 해버렸다. 낯이 간지럽고 입술까지 떨렸다.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비누를 팔아?”
백 회장은 뜻밖이라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곧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예. 강원물산에서 군부대에 비누 납품하고 있지요. 그거 일부만 우리 회사 것을 사 주시면 안 되나요? 그럼 전 우리 회사에서 대리쯤으로 출세할 수 있는데요...”
“대리? 하하하. 그거 좀 팔아주면 우리 민지 휴가 좀 넉넉히 받을 수 있나?”
백 회장은 정말 유쾌한 듯이 크게 웃었다.
“얘야. 물산 정 사장 전화 좀 넣어라.” .
운전사가 핸드폰을 들고 부지런히 버튼을 눌렀다.
차가 다리위에 들어서자 시원한 강줄기가 눈에 들어 왔다. 계곡 위에는 푸르다 못해 검게까지 보이던 무성한 활엽수는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이 조각품처럼 보였다.
“회장님, 사장님 나왔습니다.”
백회장이 전화를 받아 들자 말자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봐. 우리 군부대에 납품하는 세수 비누 있지. 그거 한 달에 몇 개씩이나 하나? 뭐 2십 만개? 그것뿐이야? 그거 말이야 어디 것 가져다 쓰지? 뭐야? 진선유지? 진선유지 제품 괜찮아? 그거 다음 달부터 당장 끊고 딴 걸로 바꿔. 그래? 내일 내방에 서류 갖고 좀 와봐 "
백 회장은 일방적으로 소리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 조민지의 작은 심장이 콩콩 뛰었다.
“내 곧 조치를 해 줄게. 이제 우리 민지가 조 대리님 되는 건가? 허허허...”
“회장님 고마워요. 근데 20만개나 다 바꿔버리면 안될 것 같아요. 저희 회사 생산능력도 있고, 상대방 회사도 한꺼번에 그렇게 되면 난감할 것이고요...”
“음. 민지가 다른 기업 걱정까지 하다니. 경영인 될 소질이 보이는데 그려...”
백 회장의 이 말은 몇 년 뒤에 실제 상황으로 나타나게 된다. 백회장의 예리한 관찰력이 그를 대그룹의 회장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회장님, 우선 한 달에 5만개씩만 납품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차차 늘려서...”
조민지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어서 한 이야기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자 이제 우리 즐거운 철새 이야기나 하자.”
조민지는 상담이 이렇게 쉽게 끝나는 것이 신기했다. 신기하기보다는 싱겁기까지 했다.
조민지는 뛸듯이 기쁜 마음으로 사장실에 들어섰다. 십장이 콩콩 뛰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