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직장의 신-제8화 무릎 꿇은 회장님
[기업소설]직장의 신-제8화 무릎 꿇은 회장님
  • 악녀공작소
  • 승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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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공작소

강원그룹 회장 백삼식. 나이 63. 영월군 주천면 농민 아들로 출생. 동경 유학. 해방직후 탄광업을 하면서 일어선 재벌. 동경 유학 때는 생물학과에 다녔으며 조류관찰이 유일한 취미. 특히 이 분야에는 전문가적 소양을 가지고 있으며 박제품 수집에 심취.

은퇴할 생각은 전혀 없고 건강이 좋아 휴일에는 산과 강으로 다니며 자연을 즐긴다.

대강 이런 정도의 신상 파악을 한 뒤 백삼식 회장 공략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조민지는 우선 백회장이 조류에 관해서 광적인 취미와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데 착안, 조류에 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두 달쯤 지난 뒤 마침내 결전의 날을 정하고 백회장실로 쳐들어갔다.

조민지는 천신만고 끝에 희귀조 박제를 하나 구할 수 있었다. 거의 반 년 월급에 가까운 거금을 주고 학()의 박제를 구했다. 학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되어있기 때문에 함부로 잡을 수 없다. 따라서 박제란 거의 구할 수 없는 희귀품이었다.

미리 약속이 되지 않았으면 절대로 회장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비서실에서는 학의 박제품을 싸들고 간 조민지의 앞길을 막았다. 조민지는 물론 이런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다.

회장님께 희귀조의 박제품을 가져왔다고 하세요. 우리나라에서 하나 밖에 없는...”

비서도 들은풍월이 있는지라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회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모시고 오시랍니다.”

그렇게 해서 조민지는 회장실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회장실에 들어선 조민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벽 사방이 새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회장 책상 뒤에는 수십 마리의 박제가 있었다. 마치 그가 새에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조민지라고 합니다. 회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민지는 공손하게 인사했다. 백 회장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흰머리를 짧게 깍아 스포츠맨처럼 보였다. 키가 작고 목도 짧아 볼품없는 체격이었다. 그러나 눈에서는 범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었다. 아니 위엄보다는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도는 매력이 있었다.

어서 와요. 희귀한 새 박제를 가져왔다고? 어디 봐요.”

조민지가 보자기를 풀었다. 백설처럼 흰 날개와 윤기 흐르는 검정 꼬리가 인상적이었다. 머리 위의 붉은 벼슬은 학을 살아있는 새처럼 보이게 했다.

으흠! 정말 단정(丹頂)학이로구나! 진짜야.”

회장은 신음하듯이 말을 토하며 학 앞에 꿇어앉았다. 너무나 진지하게 감격하는 백회장의 얼굴을 보자 조민지도 근엄해졌다.

정말 훌륭해! 정말...”

백회장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런데 천연기념물을 어떤 몰상식한 사람이 이렇게 만들었나.”

백회장은 학에 미쳐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한참만에야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아가씨 이리 앉아요.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더라...”

회장의 태도는 조금 전과 전혀 달랐다.

조민지라고 합니다. 영종유지에 말단 사원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새에 관해 조금 취미가 있습니다. 회장 님 같은 대가를 모시고 배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서 찾아뵈었습니다. 이 학은 회장 님 같은 훌륭한 조류 학자에게 어울리는 것이라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이거 정말 반갑군요.”

말씀 낮추어 주세요.”

그래, 그래. 이거 좋은 동지를 만난 셈이야. 그래 이 귀한 학은 어디서 구했나?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천5백 마리 정도 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제 천 4백 마흔 아홉 마리만 살아 있겠군요. 이건 중국에서 온 것인데 그 쪽에서는 짜룽이라고 부르더군요”.

아하, 짜룽이라...”

백 회장은 감탄하는 표정으로 조민지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저 그림은 아무래도 어색하군요. 학은 절대 소나무 위에 앉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화가들이 많은 것 같아요.”

조민지가 벽에 걸린 캘린더의 그림을 가리켰다. 무성한 소나무 위에 두 마리의 학이 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백 회장은 조민지의 비범한 지식에 더욱 감탄했다.

저어새나 백로를 학으로 잘못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조민지라. 이거 정말 귀한 동지를 만났군. 얼굴도 예쁘고 새에 대한 지식도 상당한 것 같아. 내가 한 수 배워야겠어. 자 이리 앉아요. 편안하게.”

백 회장은 인터폰을 눌러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뒤 새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백 회장은 점점 조민지에게 빠져 들어갔다. 조민지의 깊은 지식에 몇 번이나 무릎을 쳤다.

맞았어. 하하하. 따오기란 놈은 새 중에 가장 정력이 세지. 사랑하는 횟수가 민지 말대로 시도 때도 없이 많거든 하하하... 그런데 처녀가 그런 새들의 비밀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허허허.”

조민지의 조류에 관한 지식은 백삼식 회장을 여러 번 감탄시키고도 남았다.

학이 소나무 위에는 절대 앉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잘 없지. 조양은 아직 젊은이인데 그렇게 깊은 진리까지 도달한 것에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네.”

아이 회장님도. 그까짓 게 무슨 진리 축에나 드나요. 저는 회장님의 진짜 심오한 조류학문에 비하면 아직 문턱에도 이르지 못했어요.”

조민지는 할 수 있는 아부는 모두 했다.

허허 겸손도 단수가 높군 그래. 대학에서는 무엇을 전공했나?”

백 회장은 귀여워 죽겠다는 듯 민지를 만족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동물학과나 생물학과가 아니구요...”

화학과를 나왔걸랑요.”

화학과? 거기도 학이 들어가기는 들어가는군. 그래 화학과를 나온 처녀가 새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조예가 깊은가?”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 신세가 얼마나 좋아요. 새는 자유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옳거니!”

이렇게 해서 조민지와 백 회장은 단번에 백년지기가 되었다.

두 번 세 번 만나는 동안 부녀 사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변해갔다.

조민지는 처음에는 주말을 이용해 백 회장을 따라 조류 관찰을 나갔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주중에도 철새 관찰을 위해 휴전선 부근까지 갔다.

뭐야? 조민지가 새보기 하러 휴전선에 가면서 결근을 했다고? 미쳤군 미쳤어. 당장 시말서 쓰라고 해!”

최경식 인사과장이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조민지는 생글 생글 웃기만 했다.

과장님! 너무 그러시지 마세요. 새도 자주 보면 중독이 된다구요.”

뭐야? 새 중독?”

과장님도 한번 같이 가시지 않겠어요?”

버렸군 버렸어. 여병추가 따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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