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2020년부터 IT기업에 대한 ‘디지털 서비스 세’도입을 결정한 데 이어 EU도 과세 강화를 서둘기 시작하자 미국과 중국이 견제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상황 전개에 따라서 ‘디지털 과세’냉전으로 확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U역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디지털과세가 실현된다면 세율은 3%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세금도 있다’는 만고불변의 이 원칙이 이른바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아마존)로 대표되는 IT기업 과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현재 각국이 채용하고 있는 법인세 시스템 자체가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식민지경제를 핵심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확립되던 19세기에 마련된 현행 법인세 제도로는 IT를 바탕으로 한 사이버 대기업에 대한 과세가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 IT 대기업이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막대한 세금을 탈루(기업 측은 절세라고 부르지만)하자 각국은 서둘러 과세 방법 찾기에 나섰다.
현행 법인세 시스템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다국적 기업이라도 현지 법인 형태의 지사나 지점을 두고 영업활동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마련된 제도. 다시 말하면 ‘사업장이 없는 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과세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사업장이 있더라도 절세(탈세)를 위해 마련한 이른바 페이퍼 컴퍼니 등 위장 사업장일 경우에는 과세가 가능하지만 이 경우 과세 국은 해당 기업과 소송 전까지 각오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때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 스타에 대한 8000억 원에 달하는 과세를 둘러싸고 벌인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 따라서 지금은 글로벌 공룡으로 자란 GAFA과세가 말처럼 간단히 시행할 문제가 못 된다. 그래서 ‘수익 있는 곳에는 세금도’라는 원칙을 살리려면 아날로그 법인세 개편이 필수적 과제로 떠오르게 마련.
이에 따라 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중심이 되어 지난 2012년부터 IT대기업에 대한 국제 과세 통일된 제도 마련에 나서 2015년에는 조세회피지역 악용 방지 등에 대해 120개국이 참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핵심과제인 ‘디지털 과세’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2020년까지 해결한다는 원칙만 정했을 뿐이다. 영국이 2020년부터 디지털과세를 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 ‘합의’에 근거한 것.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뜻밖의 문제가 발목을 잡고 나섰다.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지난 6월 워싱턴에서 열린 OECD국제세제회의에서 영국과 EU의 디지털과세 강행 방침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디지털과세’조기 강행에 반대하고 나선 것은 영국이나 EU와 달리 두 나라 모두 IT대기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 두 나라가 반대하는 한 국제적으로 통일 된 다국적 기업의 절세(탈세)방지 제도 마련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 대해 OECD와 G20은 두 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공통의 룰 마련이 안 되면 독자적인 과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움직임. 이미 영국에 이어 이탈이라도 비슷한 수준의 과세권 강화 검토에 착수했다. 이렇게 되면 나라마다 제 각각의 과세 제도를 도입하게 되며 이는 새로운 국제적 분쟁의 씨앗으로 번질 개연성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지난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OECD와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연석회는 일본에게 중재역을 의뢰하기로 합의했다. 내년 6월 후쿠오카에서 열릴 G20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의 의장국인 일본이 정치력을 발휘,‘특별한 역할’을 해 달라는 뜻이다. 의장국이기 때문에 일단 수락은 했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정부나 게이단렌도 아직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것이 실정. 일본이 떠안기는 했으나 모두를 만족시킬 절묘한 방안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중국보다 미국의 태도. 오바마 정부 때는 ‘과세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제도 개편에 부정적이었으나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IT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을 포괄한)광범한 분야에 걸친 제도 개편’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 개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EU가 중심이 된 ‘IT산업만 대상’으로 한 제도 개편은 안 된다는 뜻이다. 지난 6월 워싱턴서 열린 OECD국제세제회의에서 중국이 잽싸게 미국 방침에 동조하고 나선 것도 ‘겉으로는 제도 개편, 속으로는 현행 유지’라는 트럼프의 속내를 정확히 읽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각국이 IT기업이 자국에서 올린 수익에 대해 과세하겠다는 것이 대세인 이상 내년 후쿠오카 회의에서 완전한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구체적인 윤곽이라도 정해 질 수 있다면 EU와 미‧중간의 ‘디지털가세 냉전’은 조기에 막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