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도스또예프스끼의 병과 예술혼 '어리석음의 미학'
[신간] 도스또예프스끼의 병과 예술혼 '어리석음의 미학'
  • 한국증권신문 기자
  • 승인 2017.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스또예프스끼로 근대를 읽다

시대와 사회가 병들면 그 누구도 건강하기 어렵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소설 죄와 벌에 등장하는 라스꼴리니꼬프는 신분 상승을 꿈꾸며 도시로 오지만 관 속 같은 방에 틀어박힌 외톨이로 살아간다. 골방에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키워가던 그는 결국 전당포 노파와 그 여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것이 소설 속 19세기 러시아의 모습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누울 자리만 겨우 보전되는 고시원에 틀어박혀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은둔형 외톨이나 좌절과 분노로 약자에 대한 혐오를 키워가는 요즘 사람들은 라스꼴리니꼬프의 모습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온갖 갑질로 제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까라마조프형 아재들 역시 정치계, 법조계 등 오늘날 한국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군상들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 속 인물들이 거울처럼 비추는 현대인의 정신적 병리 현상은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던 러시아와 한국을 데칼코마니처럼 보이게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병든 시대와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건강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리석음의 미학의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가 본 문명사회의 모순이 병든 인간을 만드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시민사회의 자유는 돈 있는 사람들만 누린다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지적은 대한민국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격언으로 반복된다. 관료주의와 법치주의는 공무원들을 영혼 없는 행정 기계로 만들었고 과학과 이성은 공동체와 개인을 해체시킨다. 문명의 발전이 오히려 개인을 피폐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도스또예프스끼가 보여준 사회의 병든 민낯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행복하냐고.

 

건강한 사람이 볼 수 없는 일상의 신성함

 

도스또예프스끼는 지독한 간질병을 겪었다. 예기치 못한 발작은 그를 수없이 죽음의 문턱에 세웠다. 하지만 발작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보통의 간질병 환자와는 달리, 그는 발작이 시작되는 0.5초의 순간까지 또렷이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대문호는 건강한 사람이 볼 수 없는 일상의 신성함을 깨닫는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강아지와 싸움박질 하는 아이들. 발작의 순간 눈앞에 보인 일상의 모습은 보통 사람에겐 지루하지만, 도스또예프스끼에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증거였다. 결국 도스또예프스끼는 일상의 힘을 통해 자신과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이 인간에게 축복이 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리석음의 미학역시 독자들에게 말한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찾는 행복이 병든 시대를 헤쳐 나가는 열쇠일지 모른다고.

 

<저자 김진국/ 츌판사 시간여행>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