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슈타이너의 교육학 ‘교육은 치료다’
[도서] 슈타이너의 교육학 ‘교육은 치료다’
  • 한국증권신문 기자
  • 승인 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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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가 필요한 어린이의 본질 깨닫기

발도르프학교는 독특한 수업방식으로 전세계 70여 개 나라 740여 개의 학교에서 대안교육의 모델이 되고 있는 학교다. 교육은 치료다는 이곳을 창시한 루돌프 슈타이너가 일생에 단 한 번 치료교육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슈타이너는 인간의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이원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인간을 이해할 때에는 전인적 인간관에 기초해야만 올바른 교육의 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교육은 도벽이 있다거나, 산만하다거나, 강박관념에 시달린다거나, 간질이 있다거나 하는 등의 장애가 있는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교육이다. 그러나 슈타이너에 의하면 이러한 약간의 이상성(異狀性)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어린이에게 교육은 치료다

 

이 책은 교육이라는 커다란 담론 아래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안교육은 수업 방식에 형식적인 변화만을 꾀한다. 이에 대해 슈타이너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보다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다루고 있어 형식적인 움직임에 대해 본질적인 대안을 준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신화 속에 빠진 나머지 학교와 교실이 붕괴되고 자녀 교육 때문에 이민을 가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이다. 공장식 컨베이어벨트 교육을 받고 사회로 던져진 아이들은 게임에 중독되고 스마트폰에 집착하고 쉽게 불안함을 느낀다. 우리 주변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균형감각을 잃고 휘청거리는 아이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또한 최근 매스컴이나 주변에서 ADHD에 관한 심각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하나의 증상에만 그치지 않고 학습장애나 집중력 등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조기에, 본질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아이들 생활에 장애 요인이 되는 증상을 불과 10년 전에 비해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슈타이너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균형을 잡아주는 일

 

본래 내인성(內因性)의 병은 모두 영적인 것과 관계가 있다. 결국 어떠한 병이라도 모두 내부의 이상성(異狀性)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골절조차도 내적인 것의 외적인 반응이다. 외과의사도 이러한 관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절실한 방법으로 어린이를 치료할 때 마음과 몸 전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어린이의 마음과 몸은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약을 줄 때 그것이 어린이의 신체에만 작용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약물도 어른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본질적인 작용을 미친다.

즉 아이들은 밖으로만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자신의 모습을 살펴 줄 선생님과 부모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책 교육은 치료다인간 본성의 배후에 내재해 있는 선과 악, 그 둘 중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게 해 주는 교육을 통해 일생 동안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며 아이들을 제대로 보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화를 잘 내고 절제하기 힘들어 하고 혼나기 쉬운 행동을 골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러한 기질을 바꿀 수 없다. 본래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타이너는 계속해서 아이들의 본질을 보기 위한 의식적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교육의 황폐함이 면면이 밝혀진 시대. 슈타이너의 교육사상은 단순한 개별적 교수법이 아닌 가장 본질적인 부분, 즉 인간 존재와 정신의 실존에 대한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깊은 관심이 최고의 교육

 

내면에 가장 깊이 작용하는 무의식은 무서울 정도로 현명하다. 무의식은 마음을 통해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둘러 싼 모든 사항에 대해 개념을 세운다. 그러나 이것은 무의식 속에서만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에 밖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깊은 관심이 없다면 알아차릴 수가 없다. 결국 선생님과 부모님은 아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아이가 어떤 행동을 시작하려고 하거나 골똘히 생각하는 경우에 항상 나타난다. 이러한 순간에 어른이 친절하게 내미는 손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린이가 행하는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함께 해야 한다. 어른은 아이의 움직임에 필요한 도움을 주며 그저 함께할 뿐이다. ‘관심간섭의 의미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결코 완전한 선생님, 완전한 부모님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어떤 아이를 만나더라도 개개인의 아이의 특성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선생님과 부모님 스스로도 아이가 새로운 과제이고 새로운 수수께끼가 된다. 다만 책은 어린이의 본질을 보고 개별적 사항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이해하려는 어른과 그렇지 않은 어른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고 말한다.

<저자 루돌프 슈타이너/ 역자 김성숙/ 출판사 물병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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