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투혼'인데...아시안컵 뭐가 다른가
같은 '투혼'인데...아시안컵 뭐가 다른가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5.0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리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한국은 2015 호주 아시안컵 본선에 참가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4개월 여의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룬 쾌거다. 대표팀은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았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대표팀은 꽃을 받았다. 반년 전 월드컵에서는 이들에게 엿을 던진 팬들이 있었다. 태극전사들은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운좋은 무실점 전승

슈틸리케 효과는 어느 정도였을까? 냉정하게 말하면 대표팀의 전력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여전히 수비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공격진의 창조성과 결정력은 충분하지 못했다. 오만과의 첫 경기에서는 무승부가 될 수 있었던 위기에서 골대의 행운이 있었다. 핵심 선수들의 감기와 부상을 감안하더라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보인 경기력은 팬들의 공분을 샀다.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90분 이전에 패할 수 있는 위기가 있었다. 이라크와의 준결승전에서도 적지 않은 실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결승전까지 한국은 무실점 전승을 기록했다.

감독도‘보완 필요’인정

슈틸리케 감독 역시 준우승 이후 쏟아지는 찬사에 대해 경기력 측면에서는 보완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그가 힘겹게 한국말로 읽어 내리며“대표팀을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고 말한 부분은 한국 대표팀이 마지막까지 정신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였던 점이다. 하나로 단단히 뭉쳐 모든 것을 쏟아낸 대표팀의 모습은 우승컵을 들지 못했음에도 국민적 지지를 끌어냈다. 국민들은 우승컵이 아닌‘투혼’에 감동했다.

브리질 투혼‘유명무실’

그렇다면 2014 브라질월드컵에 나섰던 선수들은 국민들이 바라는‘투혼’을 보이지 못했을까? 벨기에전을 마친 뒤 탈진해 눈물을 흘리던 선수들. 격한 몸싸움을 치르고 온 몸에 상처를 입은 김영권의 모습에서‘불성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러시아와의 1차전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이후 여론은 투혼의 부활을 말했다. 편애 논란과 별개로 선수단의 훈련 분위기도 좋았다. 알제리와의 2차전에 당한 무기력한 패배 이후 비난이 시작됐고 벨기에전 패배로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대표팀은‘대역죄인’이 되었다.

브라질‘아쉬운 한골’

진정성은 측량하기 어렵다. 브라질 현지에서 취재했던 대표팀 선수들은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에 모든 것을 쏟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버겁고 힘겨운 미션이었다.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이루어 지지 못한 과정에는 단 한 골의 아쉬움이 남았다.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내주지 않았다면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전반전 연속 실점을 두 번째 골에서 멈출 수 있었다면, 벨기에를 상대로 0-0 무승부를 지켜냈다면, 1승 1무 1패의 한국의 16강 진출의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가정법이 월드컵에서는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좋지 않은 쪽으로만 흘러갔다.

홍명보 전 국가대표 감독과 손흥민

 

 

 

 

 

 

 

 

 

 

 

 

 

패하면 선수 선발 문제

홍명보 감독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당시의 주축 선수들이 대부분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했다. 월드컵 예선을 거치지 못한 홍 감독은 1년 이라는 제한된 준비 기간 동안 이미 자신의 전술에 익숙한 올림픽이라는 국제 대회경험을 함께한 선수들을 대표팀에 다수 정착 시켰다. 이를 두고 여론은 홍명보 감독이 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편애한다는 지적이 따랐다.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본선 세 경기에서 중용한 선수들 중에는 손흥민, 이청용, 이근호, 김신욱,이용 등 유럽 무대와 K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들의 자리가 분명히 있었다.

이기면 파격 인사

2015 호주 아시안컵에 나선 슈틸리케호는 이정협 발탁이라는 파격 인사를 중심으로 대대적 쇄신이 이루어졌다고 평가 받았다. 그러나 23명의 최종 엔트리 중 12명은 홍명보 감독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선발한 선수들이었다. 김진수는 홍 감독이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해 꾸준히 주전 레프트백으로 기용하며 성장시켰다. 불운한 부상으로 월드컵에 가지 못했다. 김민우, 조영철, 남태희, 이명주, 장현수, 김진현 등 6명도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전 평가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소집해 테스트한 바 있다. 마지막까지 이어진 고민 속에 낙마했다. 차두리의 경우 그리스와의 친선전을 앞두고 소집했으나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해 점검 시간을 갖지 못했다. 다시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정해야 하는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홍 감독의 선택지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 점검해보고 검증하지 못한 선수, 감독이 확신을 갖지 못한 선수를 선발하는 일은 도박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슈틸리케호에 승선한 선수 가운데 홍명보호가 불러서 보지 않은 선수는 이정협과 한교원 정도뿐이다.

‘그라운드 리더’부재

홍명보호의 가장 큰 문제는 베테랑의 부재였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차두리와 곽태휘 등 베테랑
선수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선수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것이 주효했다. 차두리가 2014브라질월드컵에 해설위원으로 참여하며 눈물을 보인 것은 후배
선수들이 어려운 순간 함께 해주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알제리전에서 쉽게 허물어진 것은 선수들의 열의가 부족했다기 보다 급격하게 허물어지는 선수들의 정신력을 잡아줄 그라운드 안의 리더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홍명보 감독 역시 베테랑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박지성을 선발하기 위해 네덜란드 현지로 날아갔으나 무산되었고 차두리와 이동국은 대표팀에 소집해서 점검하려는 순간 부상을 당해합을 맞춰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곽태휘를 선발했으나 가나와의 대회전 마지막 친선 경기에서 실수를 범한 뒤 기용하지 않았다.

박주영 카드 실패

홍명보 감독은 위험을 감수하고 박주영을 선발했다. 원톱으로서 그의 기량과 더불어 2012 런던올림픽에서 맏형 역할을 했던 박주영의 리더십이 대표팀에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박주영의 컨디션은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긴 경기 공백을 극복하지 못한 채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했다. 박주영 스스로 대회 기간동료 선수들과 모인 자리에서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 홍명보 감독에겐 패착이 있었다. 감독 홍명보 역시 경험이 부족했다.

슈틸리케 효과

과찬은 슈틸리케에게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들이 아시안컵에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팀의 중심기둥 역할을 했다. 주장을 맡은 기성용은 한층 더 성숙한 기량으로 아시안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다. 월드컵에 나섰던 다른 선수들 모두 기량뿐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 더욱 강해졌다.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졌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됐다. 그러나 쓰라린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은 홍명보 감독은 만회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부임이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정협 발탁이라는 파격, 세트피스 전면 지역 방어와 같이 국내 지도자들이 과감하게 적용하지 못했던 방식을 도입 한 전술적 변화,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국 축구를 진단할 수 있는 입장, 선진 축구의 감각 인식 등의 강점은 호주 아시안컵 대회를 치르며 드러난 슈틸리케 효과다.

국내 감독 희생양

그런 이유에서 홍 감독이 부임하던 당시에도 최강희 감독이 물러나면서 이야기 한 것처럼 외국인 지도자가 좀 더 대표팀을 이끌며 국내 지도자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슈틸리케 감독과 같은 인물은 오히려 더 빠른 시기에 한국에 왔어야 했다. 조광래와 최강희, 홍명보라는 유능한 국내 지도자를 차례로 잃기 전에 필요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잘못된 선택에 홍명보감독이 독이 든 성배를 들이켰다. 우리는 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했을 뿐 아니라 축구 영웅 한 명을 잃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아시안컵 준우승이라는 결과 자체에 취해있다면 강적을 만나 처참한 패배를 당한 뒤에는“슈틸리케도 별 수 없다”는 비난 여론이 쏟아질 수 있다. 이미 한국은 움베르투 코엘류, 요하네스 본프레레, 핌 베어벡 등의 외국인 지도자들을‘악화된 여론’을 이유로 무례하게 떠나 보낸 바 있다. 성급한 비난 여론의‘철퇴’는 국내외 감독을 가리지 않는다.

슈틸리케 본선까지 믿어야

승패는 병가의 상사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 결과와 관계없이 2018 러시아월드컵 예선까지 임기를 보장 받았다. 본선에 진출 시킬 경우 계약은 유지된다. 그러나 축구계에서 계약은 무의미한 편이다. 월드컵까지 3년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고 슈틸리케 감독의 보장된 임기는 지켜져야 한다. 예선 과정에서 어떤 실패와 비난이 있었더라도 본선까지 함께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축구는 더 이상 모든 책임을 감독에게 전가하는 병폐를 버리고 체계적인 선진 시스템을 구축해 국민에게 환영받는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백서원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