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연출가가 바라본 '춘향'은?
서양 연출가가 바라본 '춘향'은?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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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이 오는 11월 20일(목)부터 12월 6일(토)까지 창극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을 달오름극장에 올린다.

독일의 저명한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2011)에 이은 두 번째 ‘세계거장시리즈’다. 이번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무대에서 활약 중인 루마니아 출신 재미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Andrei Serban, 1943년생)이 연출을 맡았다. 연극과 오페라를 넘나들며 대담하고 혁신적인 연출을 선보여온 그의 눈으로 바라본, 이전에는 없던 색다른 춘향전을 올린다.

서양 연출가는 춘향을 어떻게 바라볼까? 공연의 제목처럼 그가 바라보는 춘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춘향과 ‘다르다’. 그는 기존의 몽룡과 춘향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사랑이라는 이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춘향’이라는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췄다.

춘향은 이상(理想)이 사라져버린 오늘날,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인 사랑을 지키는 영웅이라고 말한다. 몽룡은 고위관직자의 아들로, 클럽에도 즐겨가는 요즘 대학생 캐릭터로 설정했고, 춘향과 몽룡을 이어주는 역할의 향단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가난한 처지의 춘향에게 비서가 있다는 설정이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

전형성을 거부하는 그답게 다양한 춘향을 보여주기 위해 국립창극단의 젊은 주역 민은경, 정은혜, 이소연이 트리플로 춘향을 연기한다. 또한 춘향전의 감초 역할로 국립창극단 대선배 유수정이 여자방자를 연기한다. 이런 인물 설정과 함께 대사, 연기, 의상 또한 완전 현대적이다. 이처럼 주제나 캐릭터의 설정은 아예 새롭지만 판소리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해 춘향가의 눈대목인 ‘사랑가’, ‘쑥대머리’ 등 많은 노래가 그대로 불린다.(단, 극중 고어(古語)투의 판소리들은 자막을 통해 현대어로 소개)

안드레이 서반은 스승 피터 브룩의 권유로, 춘향 연출을 결심할 당시 단 하나의 조건으로 해오름극장(1563석)이 아닌 달오름극장(512석)을 내걸었다. 그가 대극장에 비해 3분의 1밖에 안 되는 크기의 중극장을 선택한 이유는 관객과 무대 사이의 긴밀한 소통을 중시하기 때문. 무대에는 검은 철골 구조 틀을 세워 모래와 물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자연과 인공을 대비시키는 간결하고 현대적인 무대로, 그가 매 작품마다 새로운 공간 활용을 선보여온 만큼 기대되는 부분이다.

안드레이 서반이 콕 집어 선택한 안무가 안은미와의 작업도 주목할 만하다. 틀을 깨는 일, 재미를 찾는 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의 시너지가 어떠할지도 이번 공연의 주요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특히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는 공연 내내 투사되는 영상이다. 그는 영상을 또 하나의 언어로서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예를 들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오늘날의 ‘현실’과 달리 동시에 영상으로는 ‘전통’을 이야기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

또한 이번 공연에서는 안드레이 서반의 협력자이자 부인인 다니엘라 디마(Daniela Dima)가 드라마투르그 및 협력 연출의 역할을 맡았다. 지금 현재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연습실에서 창극에 대해 던지는 질문의 폭은 매우 전방위적이며, 그럼으로써 그동안 창극을 가둬온 틀과 편견에 마주하게 하고 있다. 이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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