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석기 감독, "한국 영화 100년 기록"
[인터뷰] 이석기 감독, "한국 영화 100년 기록"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4.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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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영화 12편 등 무수한 화제작 찍은 거장, 문화산업 의식 살아나야...“그 나라 문화는 경제”

한국 영화계가 100년을 지나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과 필름은 쌓여왔다. 8천여 편에 달하는 한국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세계 유명 영화제에 숱한 수상 기록이 남았다. 이제는 해외 배급을 통해서도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그 저력의 모태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감독이 있다. 이석기 영화감독(73)은 수많은 영화계 인사의 꿈과 열정이 묻어 있는 ‘한국영화 100년’을 5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

이석기 감독은 지금까지 180여 편을 촬영·제작한 한국 영화계의 ‘큰 산’이다. 이만희 김기덕 김수용 임권택 등의 영화감독들과 수많은 역작을 촬영했고, 직접 연출한 영화도 ‘엄마안녕’ ‘성이수일뎐’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등 10여 편에 이른다. 강우석 감독도 그의 연출팀 출신이다.

1960년 영화계에 첫발을 들여 무수한 화제작을 남긴 이 감독은, “우리 영화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 그 자체가 100년의 역사에 있다”는 말로 작품을 소개했다.

이미 자신의 일생으로 한국 영화를 투영하고 있는 이석기 감독을 만났다.

- 한국 영화 100년을 기록한 최초의 영상입니다.

100년의 역사를 만든 우리 영화인들의 이야기는 지금 영화를 만들고 있는, 또 앞으로 만들 젊은 영화인들에게는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그들이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시절이지요. 그 동안 한국 영화를 짊어져온 거목들이 하나둘 떠났습니다. 신 구 세대 간에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장도 당연히 줄어들고 있고요. 활자를 통해 접하는 한국 영화가 아니라,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소통의 영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한국 영화의 미래를 바꿀 소중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 다큐멘터리의 제작 계기는?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가 많아졌다고 한국 영화가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그 무엇도 넉넉하지 않았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과거 선배들은 질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어요. 그래서 한국 영화를 이끌어온 수많은 영화인 선배들의 생생한 증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전해 듣는 비사와 현장 이야기로 한국영화사를 정리하려고 합니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습니다. 역사의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가 과거를 토대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후배들에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발판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 ‘한국영화 100년’의 제작방식이 궁금합니다.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를 시대별로 5부작으로 나눴습니다. 1부 무성-1960년 초반, 2부-60년대, 3부-70년대, 4부-80년대, 5부-90년대 순입니다. 필요에 따라 더 구분될 수 있어요.

또 자문위원단을 별도로 구성해, 그들의 적극적 참여와 의견을 작품에 반영했습니다. 완벽한 고증을 마친 자료와 영상을 취합하기 위해서지요.

원로 영화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증언도 담았습니다. 우리 영화의 저력은, 주인공보다 엔딩 크레딧에 한 줄로 남아있는 수많은 영화인들에게서 나왔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야 진정한 영화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100년의 기록이라면 방대한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겠네요.

우리 영화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어요. 1910년 미국에서 영화가 처음 상영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도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니까요. 선배 영화인들은 당시 일제의 핍박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만들었습니다. 광복, 6·25전쟁 직후에는 굶어가면서도 영화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이런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 영화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1편은 무성영화의 시기였던 한국영화의 시발 단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영화사를 담았어요. 1편만 제작하는데도 3년이 걸렸습니다. 60년대 영화만 300편이 나왔는데 5부작은 너무 짧다는 생각도 듭니다. 60년대는 그야말로 한국영화 ‘귀로의 시작’입니다.

- 시리즈가 완성 되면 영화학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지금 영화를 배우는 학생들이 프랑스, 미국 영화부터 공부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영화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정체성을 정리해놓은 자료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한국영화의 정체성은 ‘역사’에 있습니다. 그 뿌리는 영화예술의 천재들인 선배 영화인들의 헝그리 정신이 쌓아올린 예술혼입니다. 그것이 시발점이 돼 계속 뛰어난 예술영화가 나오고 천만, 이천만 드는 영화가 쏟아지는 겁니다.

- 그 뿌리를 이어갈 영화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축구만 봐도, 우리가 예전엔 유럽인들 사이에서 겁먹었지만 이제는 용감하게 뛰지 않나요. 이젠 젊은 영화인들이 ‘한국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세계적 인재들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서부터 그러한 맥을 갖고 왔고, 후배들이 그 힘을 이어받아 좋은 영화를 만들며 세계적 경쟁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큰 무대라도 우리는 장악할 수 있어요. 이러한 시기에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꼭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됩니다.

- 먼저 1편을 만드는데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대부분 제 개인돈을 썼습니다.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에 지원을 부탁했는데 돈 1천만원을 주면서 만들라고 하더군요. 선배들은 내게 “힘들어도 절대 포기해선 안된다, 나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여력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모두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할 사람이 없는 거에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제가 시작했습니다. 현실이 이렇지만, 작업은 꼭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선 이런 작업을 20년 전부터 하고 있는데 우린 너무 늦었습니다. 또 영상자료원 같은 경우도 예산이 적어 정부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 한국 영화가 더 발전하려면 또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전반적으로 문화산업 의식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 나라 문화는 경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도 한국 경제와 연결돼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경쟁력이 없었지만 지금은 스포츠, 문화 등이 자랑스러울 만큼 세계인들 속에 우뚝 섰어요. 한류 열풍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즉, 문화와 경제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우리나라 산업은 훨씬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었어요. 문화와 경제가 동시에 발전되어야 진정한 국익이 나옵니다.

 

이석기 감독 약력

●<보경 아가씨>로 촬영감독 데뷔.
<귀로> <군번없는 용사> <만추> <옥례기> <족보> <깃발 없는 기수> <진짜진짜 좋아해> <은마는 오지 않는다> <애마부인> <청춘스케치> <5인의 해병> <낙따는 따로 울지 않는다> 등 총 108편. (10여 편 연출감독)

이력

●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장,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 現 사단법인 미래영상테크위원회 이사장.

수상

● 대종상 촬영상(창공에 산다·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대종상 특별상(깃발 없는 기수),
● 대종상 공헌상, 황금촬영상 등 주요 영화상 수상.
● 올림픽 문화훈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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