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최초 EPL 개막골 터졌다
아시아인 최초 EPL 개막골 터졌다
  • 하상인 기자
  • 승인 2014.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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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아이콘에서 ‘대표팀 중심’ 우뚝...EPL, 1R BEST 11 선정

대한민국 축구가 다시 한번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드필드의 마에스트로 기성용이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개막 골을 터뜨린 것이다. 브라질 월드컵 때 단 한 번의 승리도 하지 못해 큰 실망을 한 축구팬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한국 축구는 손흥민, 기성용 그리고 구자철 등을 중심으로 세대교체 중에 있다. 대한민국축구협회도 이에 발맞춰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 선진축구 시스템을 들여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 속, EPL의 간판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골을 넣은 기성용은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쐈다.

재능넘치는 선수

현재 손흥민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 간판스타 기성용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2002년 차범근 축구대상을 받았고, 이후 광양제철중학교 1학년 때 호주로 ‘축구 유학’을 갔다. 4년간 호주에서 축구를 배웠고, 이후 귀국해 금호고 졸업 후 2006년 FC 서울로 입단한다. 금호고는 기성용의 아버지 기영옥이 감독했던 곳이기도 하다.

FC서울에서 그는 2007년부터 20009년까지 총 92경기에 출전하며 9골을 넣었다. 이때 이청용과 함께 ‘쌍용’으로 불리며 중원을 장악했다. 2009년 여름 이청용이 EPL의 하위권 팀이었던 볼튼 원더러스로 이적했다. 같은 해 겨울 기성용은 스코트랜드의 자존심 ‘셀틱’으로 2009년 이적한다.

기성용은 ‘셀틱’으로 이적 후 첫해는 많은 경기를 출장하지 못해 평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유럽에서 아시아인 축구선수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뤘다고 할 수 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기 때문. 이천수, 이동국 등 현재 한국 축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들조차 유럽리그에서 제대로 출전기회조차 못 잡는 게 현실이다.

높은 유럽의 벽

2010년 1월 17일 폴커크와의 경기로 스코트랜드프리미어리그(SPL)에 데뷔전을 치룬 기성용은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인해 많은 출전을 하지 못했다. 또한 많은 축구선수들처럼 부상 후 경기감각이 떨어져 주전경쟁에서도 밀렸다.

2010년 당시 박지성이 EPL의 간판 팀인 ‘맨유’에서 활약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셀틱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못했다. 실력이나 자금력 모두 EPL이 SPL을 압도하는 것은 현실이다. 또한 SPL의 수준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K리그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SPL 팀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셀틱’은 항상 스코트랜드의 강호라고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는 팀이었다.

시야와 킬 패스, 유럽 매료

기성용은 두 번째 시즌부터 자신의 진가를 보였다. 첫 시즌 부상으로 인해 ‘K리그로 다시 복귀설’이 무성했었다. 그럼에도 피지컬을 키워 유럽에 남았던 게 기성용이다.

기성용은 2010년 8월 22일 세인트마렌과의 경기에서 교체 10분 만에 첫 골을 넣으며 부활을 알렸다. 10/11 시즌에 34경기 출전 4골을 넣으며 수비형 미드필더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기성용은 3번째 시즌인 11/12시즌 자신의 기량에 절정을 보여줬다. 2011년 7월 24일 개막전에서 중거리포를 성공시키며 경기 최우수 선수 선정, 이후 연속해서 경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며 지금의 기성용을 만들게 된다.

이때부터 EPL의 리버풀과 같은 팀들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UEFA컵 등에서도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스완셀로나를 만든 기성용

기성용은 12/13시즌부터 덴마크와 바르셀로나 레전드인 미카엘 라우드럽 감독의 부름을 받고 EPL 스완지시티로 이적했다. 스완지시티는 EPL에 있던 팀이 아닌 2부리에 있던 팀이었다. 스완지시티는 EPL에 이제 막 올라온 팀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인 조직력과 특점력을 보여줬다. 특히 숨어있는 스페인 리그의 인재, ‘미추’와 같은 스트라이커와 기성용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첫시즌 준수한 활약을 했다.

그러나 미카엘 라우드럽 감독과 불화설이 돌았고, 결국 선더랜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리버풀에서 기성용의 포지션과 같은 ‘존조 셸비’를 영입하면서 기성용과 결별을 하는 듯 했다.

기성용은 최하위 팀이었던 선더랜드에서도 조차 매 경기 키 플레이어로서 활약하며, 무너진 조직력을 살려내는데 큰 역할을 했고, 결국 선더랜드에서 이적 제안까지 했다. 동시에 스완지시티는 기존의 득점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뉴페이스 셸비 역시 경기에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 등으로 스완지시티 경기력 하락에 일조했다.

14/15시즌 기성용 부활

기성용은 EPL 개막전, ‘맨유’를 상대로 전반 선취골에 성공한다. 이는 박지성도 하지 못한 기록이며, 아시아인 최초기도 하다. 비록 맨유가 지난 시즌을 ‘7위’로 마감했다하더라도 ‘맨유’는 EPL 최다 우승팀이다. 또한 브라질 월드컵에서 용병술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네덜란드의 ‘판 할’ 감독이 부임하면서 경기력 향상에 힘썼다.

시즌 전에 있었던 컵 대회에서도 6전 전승을 하면서 ‘판 할’ 효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경기 내내 스완지 시티의 미드필드라인과 수비라인을 조율하면서 기성용은 팀을 2대1 승리로 이끌었다.

경기 후 기성용은 “돈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겠다”며 기량 향상을 다짐했다. 그가 1989년 1월 생 이고 축구선수의 기량이 30살에 절정이 된다는 점을 볼 때, 기성용은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선수이다. 이와 함께 독일 분데스리가 수비수들이 두려워하는 손흥민 선수를 볼 때 한국축구의 미래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1989년 1월 생이고 축구선수의 기량이 30살에 절정이 된다는 점을 볼 때, 기성용은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선수이다. 이와 함께 독일 분데스리가 수비수들이 두려워하는 손흥민 선수를 볼 때 한국축구의 미래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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