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깬 금호家 형제의 난, 막전막후
예상 깬 금호家 형제의 난, 막전막후
  • 박종준 기자
  • 승인 2014.0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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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꺼질 것 같았던 금호가(家) 형제의 난(亂)이 최근 다시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일부에서 화해가 점쳐졌던 고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과 넷째 아들인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사이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  

그 단초는 다소 엉뚱한 곳에서 촉발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3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운전기사인 부장 A씨와 보안용역직원 B씨에 대한 고소장을 종로경찰서에 접수시키고 수사를 의뢰한 것이 자칫 금호가 '형제의 난'의 도화선이 될 조짐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회장 비서실 자료가 외부에 유출된 정황을 확인하고 자체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룹 회장실 보안용역직원인 B씨가 금호석유화학 부장 A씨의 사주를 받아 비서실 자료를 몰래 빼냈고, 불법적으로 유출된 자료들이 누군가에 의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공격하는 데 활용돼 온 것으로 보고, 보안용역직원 B씨와 이를 사주한 금호석유화학 부장 A씨를 ‘방실침입 및 배임수·증재죄’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보안용역직원이 비서실에 잠입하여 박삼구 회장 개인비서가 관리하는 문서를 무단으로 사진 촬영하는 모습을 CCTV(첨부자료)를 통해 적발하고 그로부터 위와 같은 사실들을 확인하게 됐다”고 설명하기까지 했다.

보안용역직원 B씨의 자술서에 따르면, 이 같은 범법행위를 사주한 사람은 현재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운전기사로 재직하고 있는 부장 A씨로, A씨는 보안용역직원 B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포섭하고, 박삼구 회장의 개인일정 등 비서실에서 관리하는 문건 등을 빼내 오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게 금호아시아 측의 주장이다.

2011년 11월경부터 최근까지 모두 80여 회에 걸쳐 비서실에 잠입하여 문서를 사진 촬영한 B씨는 이를 문서와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금호석유화학 부장 A씨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했다고 자술서에서 밝혔다는 것.

또한 B씨는 금호석유화학 부장인 A씨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향응을 제공 받았다고 진술하였으며, 추가적인 금품수수 여부는 경찰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금호아시아나측은 고소장에서 ▲ 얼마나 많은 문건들을 빼돌렸는지 ▲ 범행을 사주한 배후는 누구인지 ▲ 이 과정에서 금품수수 등 금전거래가 있었는지를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금호석유화학 쪽은 현재까지 조심스런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사주한 적은 없다”며 이번 사건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측이 일단 원론적으로 경찰에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달라 요청하기는 했지만, 궁극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사람은 바로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 쪽이다.

A씨가 그동안 박찬구 회장의 업무용 차량의 운전을  20여 년간 도맡아 해왔고, 현재도 운전기사로 재직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다.

또한 A씨가 지난해 8월, "박찬구 회장을 배신했다"며 박삼구 회장 쪽 인사인 기옥 사장에게 폭언을 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던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라 금호아시아 쪽은 더 의심을 하고 있는 눈치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돌발 사건이기는 하지만 금호가 형제 간 뿌리 깊은 앙금과 연결돼 있어 더욱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1997년, 고 박정구 회장 생일 당시 박삼구 회장(왼쪽), 고 박정구 회장, 고 박성용 명예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 참석 모습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6일 박찬구 회장이 지난 2009년 대우건설 재매각 당시 내부정보를 이용해 회사 자금을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집행유예가 선고되면서 재계 일부에서는 금호가 형제의 화해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 것.

하지만 이번 일로 형제 간 묵은 감정이 수면 위로 드러날 게 뻔한 상황에서 양측 간 사이는 더 멀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이렇게 박삼구, 찬구 형제가 반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2006년 금호그룹이 대우건설 등을 인수했던 시점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바로 금호가 형제 경영이 그것. 금호그룹은 이전까지 암묵적인 형제공동경영원칙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박정구 회장 때까지만 해도 65세 경영권 이전 및 금호산업 등 계열사 동일 지분 보유 등이 엄존했다.

이러한 원칙은 그룹을 도맡아 경영해오던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 박성용 회장이 65세되던 1996년 동생들인 박정구, 박삼구, 박찬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면서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이때 박정구 회장은 금호산업, 박삼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을 나눠 가졌지만 이후 지난 2002년 박정구 회장이 사망하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이 경영을 책임지게 되면서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형제 간 갈등은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와 대한통운 인수에서 표면화됐다. 박찬구 전 회장은 박삼구 회장이 주도한 대우건설 및 대한통운 인수에 반대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박삼구 회장도 동생인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화 계열분리에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것.

이와 관련 두 형제는 4년 전 경영권 분쟁을 겪은 후에도 최근까지 소송전을 거듭해왔다. 이 과정에서 생긴 형제 간 묵은 감정은 결국 이번 돌발 사건으로 재점화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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