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 강우석 기자
  • 승인 2012.06.12
  • 호수 8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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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중독 한국사회에 던지는 유쾌한 성찰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
낡아빠진 아이디어가 창조한 성과들

이 책은 무의미한 경쟁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허튼짓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이자 환상만 좇고 있는 죽은 경제학자의 위험한 아이디어에 날리는 통쾌한 반격이다.

‘키가 클수록 임금이 높다’, ‘과도한 국영수 과외가 자녀의 공격성을 키운다’ 등 하루에도 수십 개씩 그럴싸한 연구결과들이 언론과 학술지를 통해 발표되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다. 꽤나 흥미로운 주제로 보이지만 그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수식과 용어로 우리 눈을 현혹하는 쓸데없는 성과들일 뿐이다. 내일 당장 키높이 구두를 신고 나간다고 내 임금이 높아질 리도 없으며, 아이들의 공격성을 키우는 것은 과외보다 오히려 게임이나 다른 것들의 영향이 더 크다. 심지어 연구결과 자체도 수치를 왜곡해 해석한 것이다. 인류가 무엇을 찾는데 쓰는 시간이 얼마인지는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으며, 그 논문이 인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이 같이 쓸모없는 성과들은 어떻게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되었을까. 스위스 북서스위스응용과학대학 교수이자 경제학자인 마티아스 빈스방거는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에서 세계 곳곳에서 ‘허튼짓’만 양산하는 이유를 죽은 경제학자의 불편한 아이디어,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무의미한 무한경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 넘쳐나는 쓸모없는 연구결과들은 출간된 논문의 개수와 복잡한 수식, 난해한 논리로 교수들을 경쟁시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계와 의료계, 교육계뿐만 아니라 경제 전 분야에 걸친 폭넓은 사례와 풍부한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죽은 경제학자의 허상만 강요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유머러스하고 통쾌한 반격을 날린다.

경쟁과 효율성의 덫

1992년 빌 클린턴은 경쟁이 ‘좋은 임금에 좋은 일자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때부터 미국의 경쟁력은 극적으로 개선됐다. 수출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이윤이 급등했다. 일본에 빼앗겼던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의 위치도 되찾았으며 유럽 전체보다 더 많은 수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러한 새 직장의 절반 정도만이 ‘좋다’는 의미로 표현될 수 있다. 경쟁으로 인해 미국은 점점 부강해졌지만,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가난해지고 있다.

21세기 초반 영국 또한 경쟁과 효율성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블레어 총리 재임 시절 공공업무의 아웃소싱을 통해 효율성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중에는 불법주차 단속 업무도 포함돼 있었는데, 단속 업무를 맡은 민간업체는 담당직원의 동기부여를 위해 경쟁을 조장했다. 그러자 주차 단속원들은 대단히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직원으로 변모했고, 나아가 진정한 ‘골칫거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직원들은 곳곳에 잠복해 있다가 주차 시간이 만료되기 무섭게 딱지를 끊거나 심지어 요금 지불하기 직전에도 딱지를 끊었다. 정류장에 서있는 버스에 범칙금 통지서가 날아들기도 했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시장과 경쟁의 관계, 인위적인 경쟁이 불러일으키는 환상을 다루고, 2부에서는 사회 곳곳에서 생산되는 허튼짓을 소개하고 이런 허튼짓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은 논문이 발표될수록, 더 많은 개혁이 단행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에 진학할수록 잘 사는 나라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경쟁이 필요 없는 곳에서 인위적으로 경쟁을 유도할수록 무의미가 의미를 구축하고, 질 대신 양이 득세하며, 일하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당근과 채찍이 우리를 지배한다.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의 진행자이자 ‘문제는 경제다’의 저자 선대인은 감수의 글을 통해 입시경쟁, 스펙경쟁, 입사시험경쟁, 승진경쟁, 성과급경쟁, 아파트 평수 경쟁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해야 하는 한국의 건전성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 문제의 근원인 무자비하고 무의미한 경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약자에 한없이 가혹한 경쟁의 이중구조를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의 당부와 더불어 저자가 이 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무의미한 경쟁을 저지하기 위한 7가지 원칙을 귀담아 듣는다면, 폭주하고 있는 죽은 경제학자의 망령과 유쾌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속으로

"우리는 이러한 발전이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복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더 많은 논문이 발표될수록, 더 많은 개혁이 단행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에 진학할수록, 더 많은 건강검진을 받을수록, 더 많은 품질보증서가 발행될수록 잘 사는 나라라고 들어왔다. 안됐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쓸모없는 제품의 생산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는 있겠으나, 동시에 꼭 필요한 좋은 제품의 생산을 저해한다. 무의미가 의미를 구축하고, 질 대신 양이 득세하며, 일하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당근과 채찍이 일터를 지배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공급자들이 가격비교를 어렵게 만들기 위해 정보의 투명성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나선다. 이동통신시장은 이에 대한 좋은 예를 제공한다. 소수의 독과점업체들이 이른바 이동무선통화라는 동일한 상품을 제공하지만, 가격비교를 어렵게 하기 위해 무료통화, 할인 또는 정기권 등으로 포장된 복잡한 요금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기존의 요금제를 끊임없이 변경하고 있다.

시장 밖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일반적으로 공익증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변태적인 충동을 불러일으켜 마찬가지로 변태적인 행동을 낳을 뿐이다. 노동자들에게 가급적이면 많은 재료를 소비하라고 충동질을 하면 노동자들은 그렇게 한다. 가능하면 많은 딱지를 떼게 만드는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 결과 일처리는 사람들의 욕구와는 무관하게 진행된다. 사람들은 극도로 무거운 신발을 원하지도 않고, 많은 범칙금 통지서를 발부하는 주차장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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