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하늘이 감춘 땅
나의 연인 J에게 - 하늘이 감춘 땅
  • 김충교
  • 승인 2012.05.29
  • 호수 8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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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쓰리고(3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스톱을 떠올리겠지만 화투판과는 무관합니다.

괴로울 고(苦)에 외로울 고(呱), 그리고 영어의 고(Go)를 합쳐 쓰리고 라고 합니다.

선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삶의 고단함을 빗대며 푸념하던 말이지요.

괴롭고 외로워도 가야한다.

일상의 팍팍함에 지치면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인생 뭐 별거 있어’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곤 했습니다.

술기운을 빌려 객기를 부린 것이지만 다소 위안이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파장엔 결국 만취상태가 되어 필름이 끊겨 버리곤 했습니다.

그런 자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현실을 피할 수 없음을 자각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간혹 취중이 아닌 상태에서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수양하는 삶을 살면 고뇌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1번 2번은 작심을 하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범부에겐 가당치 않은 작심임을 깨닫고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싫다고 느끼고 적막 속으로 몸을 던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세상이 그리워서 채 한 달을 견디지 못합니다.

사람이 보고 싶고 자동차 소리가 듣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짜증스럽던 소음이 간절해집니다.

과거 한 때 쳐 박혀 본 적이 있습니다.

결국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습니다.

자신이 범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쓰리고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 범부들의 숙명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해탈을 위해 용맹정진하는 선승(禪僧)들의 모습은 아련한 꿈입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저는 명색이 주일이면 교회에 가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렇지만 평소 개인적으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산사를 찾아다니길 좋아하고 불교관련 서적도 꽤 읽는 편입니다.

금강경이나 화엄경도 얼핏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경전 보다는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산사에 대한 얘기를 좋아합니다.

언젠가는 꼭 찾아가 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거든요.

또 선승(禪僧)들의 삶에 대한 얘기에 끌립니다.

최근 한국불교의 중추인 조계종이 시끄럽습니다.

도박파문으로 시작된 잡음이 추문으로 비화되는 양상입니다.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석가탄신일 전후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현역 기자 시절 종교의 은밀한 내부 일부를 들여다 본 처지라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불교계만의 일이 아닙니다.

돈과 권력이 있는 곳에는 다툼이 있게 마련입니다.

기독교계도 결코 뒤지지 않는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의 문제를 전체로 확대해서는 안 될 겁니다.

종교의 참가치를 실현하려 노력하는 성직자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그런 가치를 구현하려 매진하고 있을 겁니다.

특히 대한민국 불교계의 선승(禪僧)들은 구도에 올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의 선불교(禪佛敎)가 이름을 높이고 있는 이유입니다.

한국 불교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깨달음을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수행하는 선승(禪僧)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실제 심산유곡 오지에서 수행하는 선승(禪僧)들은 부지기수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종교전문기자로 활동한 한겨레신문의 조현 기자가 있습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의 기사를 통해서 구도하는 승려들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직접 출가의 경험도 있는 조 기자는 발품을 팔아 그들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대부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은자들입니다.

설사 불가(佛家)에서 잘 알려진 존재라 해도 존경을 받는 이들입니다.

지금 불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낯부끄러운 일들에 대해 그들은 탄식하고 있을 겁니다.

조 기자의 연재물 중에 <하늘이 감춘 땅>이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물론 단행본으로도 나와 있습니다.

있을 것 같지 않은 장소와 있을 것 같지 않은 승려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어떻게 저런 곳을 찾아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대한민국 땅에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승려들입니다.

정말 신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슴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곳이 하나 있습니다.

장소와 사람 모두가 꼭 한번 찾아가 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리산 상무주암과 그곳에서 20년 넘게 홀로 수행하고 있는 현기 스님입니다.

그 긴 시간동안 스님은 절대고독 속에 묻혀 있었다고 합니다.

1100미터 고지의 외딴 곳에서 먹거리를 손수 가꾸며 살아가는 스님.

그곳은 능선과 하늘과 별과 고요와 고독 뿐 다른 것은 없다고 합니다.

조 기자가 스님에게 묻습니다.

긴긴 밤 외롭지 않으시냐고.

스님은 “그러게 외로워서 어쩌지”라고 대답합니다.

이어지는 스님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스며들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기를 쓰고 돈을 벌려는 것도,
권력과 직위를 얻으려는 것도
그것이 없으면 고독해질까봐 두렵기 때문이야.
나는 이상하지. 이게 좋으니. 이게 이렇게 좋으니.”

세상을 등지고 수행하는 스님이니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짐 지고 살아야 하는 속세인에게는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입니다.

고독도 생활의 짐처럼 지고 가야하지만 좋아해보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벗어던지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가라 하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힘들고 외로워도 가야하는 삶이 지겨워지기도 합니다.

고스톱 판에서 쓰리고를 외치며 신나하는 상대를 보며 힘이 빠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피박을 쓰고 거덜 나는 신세가 되는지 한심해지지요.

석가는 부와 권력을 손에 쥔 한 나라의 왕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출가를 위해 모든 것을 과감히 던져버렸습니다.

불교계가 새삼 석가모니 부처가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되새겼으면 합니다.

세계로 뻗고 있는 대한민국 선불교(禪佛敎)에 먹칠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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